EP127.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 버즈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돈을 왜 벌며, 얼마나 벌어야 하는 걸까. 욕심을 내자면 끝이 없는 그 길고 고단한 여행이 하나의 목적 아래 조금은 선명해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찬 생각을 하면서. 그런 생각 끝자락에 나온 하나의 대답이 있었다.
‘나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난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대화 중에 서로 제일 듣기 좋은 말을 골라보기로 했는데, 나는 망설임 없이 가장 듣기 좋았던 문장을 꼽았다. ‘영선스럽다’. 내가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했을 때, 누군가 그거 정말 영선스럽다, 너랑 잘 어울린다.라는 말을 해주는 것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었을 때나, 좋아하는 장소를 추천했을 때, 혹은 내가 가진 가치관을 이야기하는 때에 그런 말을 종종 듣곤 했는데, 나도 아직 나 자신을 정의하기엔 어렵지만, 어떤 모습들은 나를 말해주고 있구나,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만의 무언가’가 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 나에게 왜 돈을 많이 벌고 싶냐고 묻는다면, 사는 동안 나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할머니가 되더라도 나다운 모습을 변치 않고 유지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늙어서도 친구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꺼내면 '영선스럽네'라는 말을 듣고 싶다. 때론 삶에 치여 나를 잃더라도 지금의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나다운 게 뭐지’를 생각한다. 변덕스럽고, 매일이 새롭지만 와중에도 유지되는 나만의 것이 있다. 나도, 내 주변인도 느낌으로는 알지만 선뜻 표현하기 참 어렵다. 그 느낌을 정의해주는 연습이 가끔 필요하다. 나를 이루는 생각이나 여러 특징이 있긴 하지만, 더불어 나를 표현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취향’이다. 한 때는 나만의 뾰족한 취향이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 보면 그 당시 스스로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람의 특징을 잘 파악하는 친구는 나만큼 뚜렷한 취향도 흔치 않다고 느꼈다고 했다. 과연, 이사 후 소소한 생활용품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아 사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오늘은 ‘영선스러움’에 대한,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조각들을 몇 가지 모아 남겨두려 한다. 이리저리 방황하는 나날들이 길었다. 옷 스타일만 해도 그때 유행하는 것들, 친구들이 입었을 때 이쁜 옷들, 그런 옷 사이에서 점차 나의 취향이 견고 해지는 것을 느끼기에 오늘에서야 글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 조각들은 시간에 따라 계속 변할 수도 있다. 아니 변할 것이다. 아무렴 무슨 상관인가. 생각은 어제오늘 달라도 괜찮고 모두가 그럴 것이다. 다만 오늘의 나를 정리해둔다는 것에 의의 두기로.
어떤 게 진짜 나인지 모르겠어
'서울 체크인' 이효리
생각이 바뀌든 저렇든 상관없는 거 아닌가
'상관없는 거 아닌가?' 장기하
서울에 와서 이사를 3번 다녔는데, 다행스럽게도 어디 이사 가든 딱 내 취향의 좋아하는 공간들을 찾을 수 있었다. 마음의 안정을 주는 곳들, 조금의 걸음과 혹은 차비를 들여 그 장소에 도착하기만 해도 행복을 제공받을 수 있는 공간들, 그곳은 자연과 가깝거나 혹은 제멋대로의 색감이 모여 분위기를 만드는 곳이다.
보라매의 보라매 공원 / 신대방 삼거리의 프로스퍼 / 동작대교의 구름 대교 / 왕십리의 너디블루버로우
푸르고 넓은 공원이나 하늘의 뷰는 당연하고, 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공간의 조건은 빈티지한 분위기에 다소 정신없어 보이지만 와중에 자기만의 개성이 확실한, 그런 곳이다.
원래 재즈를 좋아했다. 여전히 재지한 풍의 노래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최근 내 취향에 가까운 것은 얼터너티브 팝 음악. 규칙적이지 않고 실험적인 음악이 좋다. 가사보다는 멜로디나 보이스를 많이 주의 깊게 듣는 편. 특히 남&여 혼성으로 부르는 밴드 음악이 좋아 영국 밴드의 음악을 자주 듣게 된다. 최근에는 직접 반주해보고 싶은 마음에 일렉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화려한 이목구비를 가진 편은 아니다 보니, 옷에서 포인트를 주는 것을 좋아한다. 일단 색감이 남다르면 무조건 마음을 뺏기곤 한다. 단추 모양이나 스티치 컬러 같은 사소한 곳에 변주를 준 디테일도 좋아한다. 포멀 한 재킷이나 옷에 캐주얼한 운동화나 컨버스를 매치한, 센스 있는 믹스매치도 너무 사랑한다. 패션은 돈은 많이 들지언정, 내가 더욱 공부하고 싶은 영역이기도 하다.
오늘은 짧지만 이렇게 공간, 음악, 패션으로 내 취향을 정리해보았다. 이렇게 적다 보니, 공통점도 보인다. 확실히 얌전한 스타일은 아니다. 그리고 뜬금없지만 영국 여행이 너무 가고 싶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 음악과 빈티지, 해리포터의 나라, 예쁜 색감으로 넘쳐나는 곳. 난 영국을 가본 적도 없고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취향을 이어 모으니 '영국'이라는 키워드가 생긴 것도 무척 신기하다. 핀터레스트에 british style을 검색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떠오른다. 이 모든 내 취향은 어디서 탄생해서 발전하게 되는 걸까? 시간이 되면 이또한 다뤄보고 싶은 마음이다.
어쨌거나 앞서 말했든 취향은 또 바뀔 거고, 내가 언제 이 옷을 좋아했었냐는 듯 애정 했던 옷들을 의류 수거함에 버리고 또 새로운 취향을 찾아 나설지도 모른다. 나는 기꺼이 그 변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삶은 여행이라고, 그중 가장 흥미로운 여행 중 하나가 취향을 찾아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노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 버즈' 노래를 가져왔어요.
저는 여행 가서 뚜벅이로 걸어 다닐 때 특히 이 노래가 자주 생각나요. 걸으며 떠오르는 여러 생각에 잘 맞는 노래이기도 하고, 충분한 에너지가 있는 신나는 음악이라 그런가 봐요. 오늘의 주제와 잘 맞을 것 같아,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신나는 노래를 여러분에게 수플레로 소개합니다. 나의 취향에게로 떠나는 여행, 여러분도 꼭 해보시길 바라요 :)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 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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