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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선 Sunny Jun 07. 2023

나는 왜 글을 쓰기로 했을까

구름처럼 떠다니는 생각을 잡아두기 위해서.

"자, 내가 마법의 가루를 뿌렸어. 이제 하루 중 8~10시간은 회사가 아닌 너만을 위해 쓸 수 있게 되었단다. 뭐 할 거야? 너 가끔 일요일도 심심해서 몸부림칠 때가 있던데 이제 매일매일 뭐 할래?"



요정 할머니가 곧 퇴사를 앞둔 나에게 묻는다. 마치 "너 커서 뭐 될래?"라는 질문을 받은 마냥 얼굴이 벌게진다. 30년, 자그마치 4,380일이나 살아왔는데도 어릴 때나 지금이나 여간 쉬운 물음표는 아니다. "음 잠시만요..... 일단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데요... 여행이나 다녀올까 봐요... 남들 다하는 것 말고 나에게 특별한 그런 일 없을까요?"


그렇다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역사에서 찾아내는 것이 아무래도 나을 테니 곰곰이 지난 시간을 떠올려 본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습관 중 하나는 평소에 어떤 생각이 들면 바로 아이폰 메모를 켜서 기록해 두는 것이다. 아무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희미하고 부서진 조각 같은 생각들이 마구 흩뿌려져 있다. 지하철에서, 혹은 업무를 하다가도 번쩍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면 일단 쓴다. 마케팅 노트/이따금 생각/글감/할 일 목록 등 그때 그때 생각날 때 만들곤 했던, 정제되지 않은 폴더 안에 무려 500여 개의 메모가 있다. 뮤지션들이 작곡을 가르치는 강의를 보면 아티스트들도 매 클래스마다 강조하는 게 "어떤 상황이든 모든 생각을 '메모'로 꼭 남기세요."이다. 그들은 가사에라도 쓰지, 쳇. 나는 이 많은 문장과 단어들을 어디 쓰려고 그렇게 놓치지 않고 남겨왔던 것일까. 습관처럼 써왔지만 사실 다시 되짚어 보는 일은 많지 않다. 그냥 그때의 '남겨야만 해! 안 남기면 잃어버릴 것 같아'라는 강렬한 충동에 가깝다.


마법처럼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겼고(안정과 월급을 포기했지만), 무엇을 할까 생각했을 때. 빠르게 접속하기 위해 늘 나의 아이폰 메인 화면에 위젯으로 등록되어 있는 메모앱이 보였다. 그래, 이것들을 꺼내어 내 이야기로 일단 남겨볼까? 나름 글 쓰는 것 좋아했는데. 그래도 바삐 회사를 다니며 배운 것들과,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깨닫게 되는 혹은 일상을 살아내면서 얻은 나만의 인사이트가 작지 않다. 아니 나에게는 작아 보여도 누군가에게는 적어도 재미는 있지 않을까? 막 유용하진 않더라도. 이 많은 것들을 다듬고, 맛있어 보이게 타인에게 전해본 적이 없기에 그냥 나조차도 '알고 있다' 정도로 인지만 하는 지혜와 지식들이다. 가끔 누군가에게 말해 주고 싶을 때 설명을 하다 보면 뚝, 뚝 말문이 막힐 때가 있다. 말을 하다가 멈추고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맞나?'라는 생각에 눈을 굴린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내 파편의 조각만 쥐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나 자신이 미워진다. 배신당한 기분이다.


자부심이라면 자부심, 주변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일상을 건강하게 사는 것 같아 부럽다고 말해준다. 내면의 단단함이 부럽다고. 에이 아니에요, 하며 부끄러워 하지만 나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의 모든 생각과 목표가 건강하게 사는 것에 집중되어 있으니까! 굉장히 오래된 관심사이며 습관이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불안이 존재하고, 그 불안을 매일 이겨내고 싶을 때마다 써둔 메모와 노력하는 습관이 있다. 이런 것들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


그래서 내 기록에는 2가지 기준을 두기로 했다.

1) 내가 남들에게 자주 이야기 하게 되는 것

2) 다른 사람들이 내게 자주 묻게 되는 것 


일할 때 생산성을 고려해 3번 이상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면 무조건 문서로 남기라는 일잘러의 법칙이 있다. 이번 갭모먼트에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추가하면서 이 법칙을 적용해 볼 생각이다. (작가라고 하기엔 많이 많이 부끄러우니까 아직) 1~2번으로는 금세 휘발될 이야기일 수 있으니 스쳐 지나가게 두고. 3번 정도 내 마음에 머무르는 것들이라면 글로 남겨보자. 쉽지는 않겠지만 이 도전을 누가 봐주든 나만 봐주든 의미는 있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가지 이유를 더 하자면,

지금 시점에 회사 밖의 세상을 보니 더 자세히 관찰하고, 들여다 보고 싶은 것들이 많다. 이전에는 보이는 사실 그대로를 받아들였다면, 자유인의 나에게는 가능성이 확장된 세상이랄까. 시야의 동공이 조금 더 확장된 기분이다. 예를 들어 '김밥을 팔고 있네'라고 받아들여 지던 것이, '김밥을 3,000원에 파네, 이 김밥에는 왜 유부가 들어있을까? 잘 팔릴까? 내가 김밥을 팔아보면 어떨까? 요즘 사람들은 어떤 김밥을 좋아하지?' 김밥가게 하나만으로도 떠들고 싶은 주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번 갭모먼트에 거대하고 멋진 무언가를 하진 않더라도, 마음이 가는 것들을 평소보다 조밀하게 관찰하고 내 언어로, 글로 남기면 그것만으로 이 시간이 의미있고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싶다.


Connecting the dots,

나름 성공이라는 것과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말하더라. 점과 점이 연결되어 선이 만들어지 듯. 언젠가는 작게 보이는 경험과 생각들이 모이는 시간이 온다고. 내가 메모로 남겼던 많은 점들이 글로 모이면 선을 만들게 되지 않을까. 그 선이 그저 나에게만 별똥별 마냥 빛나는 것이여도 아주 괜찮다. 그냥 묵묵히 써보자.




퇴사하고 뭐 할까? 매거진은 스타트업, 마케팅 에이전시 등을 거친 6년 차 마케터 '영선'이 처음으로 갭모먼트를 가지며 하게 되는 생각과 일상을 기록하는 시리즈입니다. 요즘 같은 대퇴사의 시대에 저의 갭모먼트는 남들과 같을까요? 혹은 나만의 풍경을 그려가게 될까요? 일기처럼 하루에 1개씩 쓰는 것이 목표랍니다. 궁금하시다면 구독하고 지켜봐 주세요!

Insta @youngsun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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