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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선 Sunny Jun 04. 2023

그래서, 이제 무엇을 할까?

파워 P이면서, 파워 J이기도 한 나의 퇴사 후 루틴

나는 ENTP다. 가끔 F가 나오기도 하지만 P는 늘 고정인데 몇몇 사람들은 듣고 놀란다. "영선님 J 아니었어요?"


MBTI가 재밌으면서도 위험한 것이, 나를 비롯해서 다들 공감하겠지만 자아가 1개만 존재하지는 않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가족과 함께 있을 때, 직장에서. 우리는 상황에 따라 '어떤 게 진짜 나야?'라고 생각들만큼 다른 성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회사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할 때는 생각나는 대로 하는 것보다 결과를 미리 시뮬레이션해보고, 실행 프로세스를 만들어 순차적으로 대응하려는 편이라 특히 직장 동료들이 느끼기에 보는 나는 '파워 J'에 가까울 것이다.(데이터를 보는 직업의 특성도 있을 듯) 반대로 친구들과 있을 때, 여행 갈 때 촘촘한 계획 없이도 '가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파워 P'이다. 놀 때는 이런저런 실패와 시도를 모두 좋아하지만 내가 책임지는 일할 때만큼은 생산성 위주로 움직이려는 편이어서 그런가 보다.


그런 내가, 퇴사를 결심하고 나니 P가 되어야 할지 J가 되어야 할지 헷갈린다.

P의 나 - '몰라 일단 쉬고 여행 다녀와야지~ 빨리 비행기 표부터 예매하자'

J의 나 - '자, 그럼 나는 어떤 계획 하에 어떤 곳을 여행을 다녀오고 어떤 결괏값을 얻게 될까?'

두 자아의 짧은 논쟁 끝에(?), 나는 적당한 J가 되어보기로 한다. "계획이 꼭 지켜져야 한다는 건 아닌데, 계획이 있어야 불안하지 않아요." 라던 파워 J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안 그래도 회사에서 몰입하던 나의 일이 없어지니 벌써 내가 어떤 강점을 지니고, 어떤 일을 했는지, 그 일을 잘하긴 했는지 흐려지기 시작한다. 마치 주어진 시간표와 부모님의 가이드 아래 꼬박 맞추어 살던 고등학생이 '자유'라는 과제를 처음으로 받은 대학생처럼. 이 마음은 내가 앞으로 잘할 수 있을까? 이 시간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남길 수 있을까라는 불안과 연결된다. 참으로,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홍진경 유튜브 '사람공부:김미경 편'에서. 나는 지금 무서운 걸까?


아마 이르면 다음 주부터 재택을 하게 될 것이다. 사정상 7월 말까지는 회사에 소속되어 있고 조금의 일을 하겠지만, 퇴사와 큰 차이는 없을 예정이다. 출퇴근 시간을 아끼는 만큼 하루는 더더욱 길어질 것이고,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간 내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보다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영선스럽지 않은 잘못된 선택을 할까 두렵기도 하다.


내가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어떤 일을 안 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느껴서이다.



성격상 여기저기 호기심도 많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주말과 퇴근 후 여가 시간을 활용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이것도, 저것도 재밌어 보이고 가능성이 흘러넘쳐 보인다. 내가 모르는 모든 지식과 경험은 모두 흥미롭고 재미있어 보인다. 어떤 것이든 좋은 면을 찾아내는 긍정적인 내 모습을 사랑하지만, 다소 현실 감각이 떨어질 때가 있다.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은 채 즉흥적으로 어떤 일을 시작하게 되면 중도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것 역시도 경험이라 허허 웃어넘기지만, 어쩔 수 없는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무 계획 없이 보낸다면, 습득하는 많은 정보를 제대로 필터링을 하지 못한 채 탐색하다가 하루하루가 끝나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구체적인 계획은 점점 만들어나가겠지만 가벼운 1차 플랜을 세워보았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하루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외부의 요인에 너무 흔들리지는 않도록 도와줄 데일리 루틴이다. 아무 소속 없는 자연인의 나를 단단하게 채워줄. 하루의 시간을 3등분으로 쪼개어 러프한 계획을 만들어 보았다.


[ 새벽 시간 ]

6시 기상을 목표로 한지는 꽤 오래되었다. 나는 이 시간을 활용해 일기도 쓰고 책도 쓰고 사이드 프로젝트도 하곤 했다. 한 겨울에 본가에서 가져온 말린 우엉으로 만든 따뜻한 우엉차와 함께하는 고요한 시간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그 느낌을 잊지 못해 딱히 할 일이 없어도 아침 시간에 매달리게 된다. 새벽을 시작으로 6시 ~ 9시까지는 아래의 일을 챙겨볼 것. 3시간이나 되지만 경험상 무척 빨리 지나가곤 한다.


- 일기 쓰기

- 모닝 독서

- 아침 먹기

- 가벼운 스트레칭





[ 오전 시간 ]

9시부터 오후 1시. 회사에 출근한다면 오전 업무를 하게 되는 시간이다. 이 4시간은 말 그대로 '일'을 할 것이다. 7월 말까지는 회사에 소속되어 잔업도 조금 남아 있는 상태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지난 3개월 나와의 협업을 좋게 봐주셔서 프리랜서로 함께하는 브랜드의 일은 6월부터 더 많은 업무 범위를 수행하기로 계약을 업데이트 한 상황이다. 왜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또 일을 하냐고? 앞서 포스팅에서 말했듯 나의 갭모먼트는 번아웃으로 인한 것이 아니며, 적당한 수입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조금은 안정적으로 내 시간을 가지는 것이 목표이기에. 감사하게도 당장의 하루 4시간을 채워줄 일들은 계획되어 있는 상태다. :-)



[ 오후 시간 ]

이 시간이야 말로 갭모먼트의 하이라이트가 되지 않을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외부 요인에 의해 정해질 일이 하나도 없다! 오롯이 나의 의지와 목표로 채워질 공간이다. 시간이 넉넉해 루즈해지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것과 계획되어 있는 일이 너무나도 많다. 이 많은 계획에 숙성의 시간을 더해,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구분해 낼 것이다.


- 글쓰기 (1일 1개 목표)

- 친구들과 함께하는 밴드, 베이스 연습

- 여행 준비

- 스터디(마케팅, 비즈니스, 영어 등)

- 사람 만나러 다니기 등등...

노션에 쌓여가는 나의 Dreams.,,.


후아,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것을 글로 정리했을 뿐인데 벌써 이 루틴이 몸에 익은 것 마냥 뿌듯하고 설렌다. 당연히 회사를 벗어난 일상이 낯설어 걱정되기도 하지만 너무 늦지 않게, 애정하는 계절을 시작으로 이런 시간을 가지게 되어 감사하다. 이전보다 산책도 더 자주 하고, 바로 실행하기보다 숙성의 시간을 거치며, 내 것을 만들고 꾸준히 인내하는 습관을 만들어 가기를. 잘 지내보아!




퇴사하고 뭐 할까? 매거진은 스타트업, 마케팅 에이전시 등을 거친 6년 차 마케터 '영선'이 처음으로 갭모먼트를 가지며 하게 되는 생각과 일상을 기록하는 시리즈입니다. 요즘 같은 대퇴사의 시대에 저의 갭모먼트는 남들과 같을까요? 혹은 나만의 풍경을 그려가게 될까요? 일기처럼 하루에 1개씩 쓰는 것이 목표랍니다. 궁금하시다면 구독하고 지켜봐 주세요!

Insta @youngsun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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