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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Jul 30. 2022

#04 집/일 구하기②

무식하면 용감하다?


무작정 부딪히기


도무지 인터넷으로는 일을 구할 수 없었다. 일을 구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 아니라 사이트에 들어가 봐도 도무지 뭔 이야기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알바몬 같은 사이트가 대만의 1111사이트(https://www.1111.com.tw/)이다. 찬찬히 살펴보면 될 텐데도 복잡하고 중국어가 가득한 사이트를 보니 중국어 울렁증이 생긴 것처럼 괜스레 거부감이 느껴졌고 이렇게 일을 못 찾으면 6개월 워킹비자도 못 채우고 한국에 돌아갈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돈이라는 것이 참 이상하고 괴상한 것이 분명히 벌긴 벌었고 힘들게 오랜 시간 벌었음에도 눈 깜짝할 새에 없어진다. 워킹홀리데이 오기 전 나름 적금도 들고 있었고 일을 그만두기 3개월 전에는 투잡까지 했는데도 정리할 거 정리하고 살 거 사고 나니 수중에 400만 원뿐이었다. 


 나는 비교적 아날로그(?) 감성이니까 직접 나서보자!


왜인지 근본 없는 용기가 생겼고 진심을 담은 자기소개서를 준비했다. 나름 특별함을 담고 싶어 파스텔톤의 핑크 봉투를 준비해 예쁘게 만든 자기소개서 10장을 들고 호기롭게 문을 나섰다. 학교와 직장은 가까운 것이 최고라는 마인드여서 일단 집 근처부터 돌아다녀보았다. 어라? 생각보다 사람을 모집한다는 가게가 꽤 있는 것이 아닌가? 문 앞에 「招募(사람구함)」혹은「急徵(급구)」라고 적혀있었다.



왼쪽 사진에 써져있는 것은

人才招募 réncái zhāomù 인재 모집

外場服務人員 wàichǎng fúwùrényuán 홀 종업원


오른쪽 사진은

急徵 Jí zhēng 급구

外場人員 wàichǎng rényuán 홀 직원(주방은 內場이라고 한다)


선택지가 많다는 생각이 들자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지나다니면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든다든지 메뉴가 마음에 드는 레스토랑들을 찾아보면서 구인공고가 붙여져 있는 가게만 골라 들어갔다. 세상만사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다고 하지 않나. 심지어 공고가 붙여져 있지 않은 방송국 또는 강남 같은 번화가에 있는 호텔에도 가서 문을 두드려보았다.


실제로 타이페이 시정부(市政府)에 위치한 W호텔에 들어가서 무작정 일하고 싶다고 말한 후 프런트 데스크에 이력서를 주고 왔는데 며칠뒤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 상황은 한국에서 외국인이 신라호텔에 들어가서 다짜고짜 일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그 당시에 나는 용감 게이지가 늘어나다 못해 넘치고 있었다. 



면접을 본 후 한 3~4일 지나서였을까? W호텔에서 합격이라는 전화가 왔는데 이미 집 근처에 위치해있고 인테리어, 메뉴 등 마음에 든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것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올라갔다 내려왔다 반복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 못 한... 복층 구조의 독특한 인테리어의 밝은 분위기에 레스토랑이었는데 이력서를 전달하려고 들어가자마자 나는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부터 관찰했다. 다들 웃으면 신나게 일하는 느낌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그 순간 '아 나 여기서 일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었고 정말 그 곳에서 9개월동안 일을 하게 되었다.


我要應征  이곳에 지원하고 싶습니다

應徵 yìngzhēng 지원하다


잠시 후, 굉장히 밝고 인상 좋은 분이 면접을 보러 오셨고 내게 대만에 왜 왔는지, 중국어는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 열심히 일할 수 있는지, 얼마 동안 일할 수 있는지 등등을 물어보셨다. 정직원과 파트타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정직원은 하루 8시간씩 일을 하고 오픈조(10:00~14:00)와 저녁조(18:00~10:00)로 나눠서 일해야 한다. 한마디로 아침에 4시간 일하고 4시간 쉬었다가 다시 또 저녁에 4시간 일해야 하는 형태인데 근무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루 종일 일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나는 돈이 궁했던지라 냉큼 정직원으로 일할 수 있다고 했고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까지 했다. 그러자 내일모레부터 바로 나오라고 했고 월급으로 26,000 TWD(약 98만 원)을 받기로 했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가게에서 나왔다. 무작정 부딪혀보겠다고 해보긴 했지만 일을 구하기 시작한 지 3일 만에 집에서 가까운 최적의 장소의 일자리를 찾은 것이다. 그땐 정말 따사로운 햇빛에 감싸진 기분이었다.


첫 월급♥ 


대만의 시급, 월급 수준에 관해 이야기해보자면 2013년 기준(최저시급 109TWD, 약 4,200원)으로 서비스직 시급은 보통 120 TWD, 약 4,600원(2021년 기준으로 최저시급이 160TWD정도, 약 6천원), 월급은 2만 4천~3만 TWD 사이, 약 100~120만원 정도였다. 사실 한국에 비해 많이 낮은 편이다.


일반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간 사람들의 월급도 평균 월 100만 원이 조금 넘는 정도의 수준이고 서비스직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인지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만 대학생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회사에 들어가는 것에만 목표를 삼지 않고 서비스직이든 사무직이든 야시장에서 가게를 차리든 본인이 흥미를 갖는 것에 관심을 두고 꿈을 키운다. 대기업이라든지 좋은 회사에 취직하면 좋겠지만 우리나라처럼 꼭 그래야 한다는 관념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와 관련해서 충격을 받았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대만에서 6개월쯤 지났을 때부터 일에 적응도 되고 정직원에서 파트타임으로 변경한 후에는 과외나 통번역 등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과외 학생들을 처음 만나게 되면 어색함을 없애려고 보통 물어보게 되는 질문들이 좀 뻔하다.


한국어를 왜 배우기 시작했어요?
한국어를 배우려는 목적이 있나요?

   


정말 뻔한 질문이지만 내가 예상하는 대답은 '취업'이나 '승진'이었다. 왜냐면 한국에서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려는 주된 목적이 이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만 과외학생들의 대답은 '그냥 좋아서'였다. 한국어가 좋다거나 한국어 발음이 듣기 좋다거나 취미 혹은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고 싶어서였다. 면접에서 자기 포장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취미생활을 위해 배우는 것이었다. 


이 간단하고 단순한 대답들이 난 꽤나 충격이었다. 


과장을 조금 더 보태서 내 인생을 뒤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행동을 할 때 꼭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던 내 모습들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목적 없이 그냥 하면 어떤가. 결과보다 그 과정을 즐기는 것도 좋다. 그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20살이 넘어서부터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내 삶은 목적있는 것들 투성이었다. 


학점을 잘 받아야 한대 - 그래야 취직하기 좋대

편입해서 이름 있는 학교에 가는 게 어때? - 그래야 취직하기 좋대

방학 때 어학연수나 봉사활동 하자 - 그래야 취직하기 좋대

토익은 기본이고 토익스피킹도 따야 돼 - 그래야 취직하기 좋대 


덕분에 내 대학생활에서 기숙사-도서관-영어학원만 다니며 편입, 중국 단기연수 말고 나를 위한 내 인생을 위한 계획은 거의 없었다. 어떤 상황이나 생각에 대해서 '왜?'라고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던 내 모습이 참 부끄럽고 한심스러웠다. 28살의 나이에 나는 비로소 멈춰 서서 나 자신을 마주하고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너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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