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 InBev가 맥주 공룡이 되기까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맥주 브랜드는 무엇일까요? 바로 버드라이트나 버드와이저가 떠오른다면 상당한 맥주 긱스(Beer Geeks)에 속합니다. 그런데 최근 기사에서 20년간 독주한 버드라이트를 끌어 내리고 새롭게 1위를 차지한 맥주가 나왔다고 합니다(한국경제 2023년 11월 8일 기사). 멕시코의 맥주 모델로가 그 주인공입니다. 버드라이트가 1위를 뺏긴 이유는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를 옹호하는 마케팅을 펼쳤다가 대중의 역풍을 맞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미국인들의 맥주 취향이 변했고 히스패닉 인구가 증가하는 등 복합적인 원인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버드라이트와 모델로가 같은 회사의 제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하는데요, 기사에 의하면, 버드라이트의 AB InBev는 모델로를 소유한 맥주 회사 그루포 모델로를 인수하기는 했지만, 미국의 반독점법에 걸려 미국 사업 전체를 매각하고 미국 외 지역에서의 판권만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AB InBev는 맥주 브랜드 수만 630개가 넘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맥주회사입니다. AB InBev가 이렇게까지 커진 이유는 맥주 회사를 잡아먹는 공룡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잡아먹었단 말인가요? AB InBev에서 그루포 모델로와 같은 인수 합병의 경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맥주 하나 마시는데 그런 거까지 알아야 하나 하겠지만, 우리나라의 맥주라고 알고 있는 카스가 AB InBev의 맥주라고 하면 관심이 생기지 않을까요? AB InBev는 어떻게 맥주 공룡이 되었을까요?
앤호이저-부시 인베브(AB InBev)로 부르는 이 맥주회사의 전체 이름은 ‘Anheuser-Busch InBev SA/NV’입니다. 축약된 이름이지만 더는 줄일 수 없는 사연은 철자 각각에 숨어 있는 굵직굵직한 맥주 회사들이 이 글로벌 기업의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AB InBev를 알기 위해서는 이 회사를 구성하고 있는 굵직한 세 개의 회사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미국의 국민 맥주 버드와이저를 소유한 앤호이저-부시는 철자 AB이고, 스텔라 아르투아를 소유한 벨기에의 인터브루는 In이며,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남아메리카의 국민 맥주 브라만(Brahman)을 소유한 브라질 암베브는 Bev입니다. 이들이 모두 합쳐 AB InBev가 되었습니다.
인터브루는 벨기에 뢰번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맥주 기업입니다. 회사가 생긴 해는 1987년으로 그리 오래된 역사는 아니지만, 이 회사를 구성하는 각각의 양조장을 살펴보면 그 역사는 유구합니다. 인터브루는 스텔라 아르투아를 생산하는 아르투아 양조장(1717년)과 쥬필러를 생산하는 Piedboeuf 양조장(1812년)이 합병하여 생긴 맥주 회사입니다. 아르투아는 뢰번에서 1366년부터 있었던 태번이 기원이고, 태번에서 맥주를 만드는 전통이 계승되어 생긴 양조장입니다. 18세기 초 이 양조장을 인수한 세바스티안 아르투아의 이름을 따서 아르투아 양조장이 되었습니다. 아르투아 양조장이 유명해진 것은 맥주 스텔라 아르투아 때문입니다. 스텔라 아르투아는 원래 1926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 시즌 한정으로 나온 맥주였지만 인기가 좋아 올타임 맥주로 자리 잡고 스테디셀러가 되었습니다.
1152년에 설립된 레페 수도원에서 계승된 맥주 레페도 인터브루의 소유입니다. 레페는 1차 세계대전 중에 모든 양조 시설을 녹여 무기를 만드는 바람에 양조장의 문이 닫혔지만, 1952년에 맥주를 다시 생산하기 시작하였고, 그후에 인터브루에 인수되었습니다. 인터브루의 맥주 중에서 또 하나의 스테디셀러가 있습니다. 전 세계 특히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벨기에 밀맥주 호가든입니다. 호가든은 벨기에 호가든 지역에서 사라져가는 전통적인 맥주 스타일을 호가든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에르 셀리스가 혼자의 힘으로 되살려서 유명해진 맥주입니다. 1985년 호가든 양조장에 큰불이 나면서 양조장 운영에 큰 위기가 찾아옵니다. 화재 보험을 들지 않았던 양조장은 파산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이때 양조장을 재건하는데 큰돈을 빌려준 곳이 인터브루입니다. 하지만 인터브루의 잦은 간섭에 셀리스는 양조장의 남은 지분을 모두 인터브루에 넘기고 미국으로 떠납니다. 이후 호가든 양조장은 사라졌고 맥주 호가든은 인터브루의 다른 양조장에서 계속 생산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한때 오비맥주가 호가든을 생산하여 ‘오가든’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밖에 인터브루는 캐나다의 맥주 라바트와 독일의 맥주 벡스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암베브(Ambev)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본부를 두고 있는 다국적 맥주회사입니다. 브라마(Brahma)라는 브라질의 국민 맥주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사실 브라마는 암베브의 맥주는 아니었고, 브라마 양조장에서 1888년부터 생산된 유서 깊은 맥주였습니다. 브라마를 인수하여 암베브를 세운 기업은 ‘가란치아’라는 브라질의 작은 투자 은행으로, 호르헤 파울로 레만(Jorge Paulo Lemann), 카를로스 알베르토 시쿠피라(Carlos Alberto Sicupira) 그리고 마르셀 텔레스(Marcel Telles) 3인이 공동으로 창업한 회사입니다. 이 3인은 나중에 미국에서 3G Capital이라는 투자 회사를 만들고, 인터브루와 앤호이저-부시의 합병에 주도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겠습니다.
앤호이저-부시(Anheuser-Busch)는 앤호이저와 그의 사위인 부시가 공동으로 세운 양조장입니다. 에버하르트 앤호이저(Eberhard Anheuser)는 독일에서 미주리로 이주한 독일 이민자 1세대로 세인트루이스에서 가장 큰 비누 공장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양조 경험은 없었지만, 세인트루이스의 지역 양조장인 바바리안의 지분을 일부 가지고 있었고, 나중에는 다른 투자자들의 지분을 모두 사들여 앤호이저 브루어리를 설립했습니다. 애돌퍼스 부시(Adolphus Busch) 역시 독일에서 태어나 18세의 나이에 세인트루이스로 이주한 이민자입니다. 부시는 세인트루이스의 양조장에 양조 장비와 재료를 공급하는 도매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고객 중 하나가 앤호이저였습니다. 장비를 납품하러 자주 오가다 보니 앤호이저의 딸인 릴리와 눈이 맞아 결혼하였고, 나중에는 장인과 함께 양조장을 공동으로 경영하면서 1879년에 앤호이저-부시 양조장을 세웁니다. 앤호이저-부시 양조장의 대표 맥주인 버드와이저는 부시가 유럽 여행 중 체코에서 마신 맥주인 ‘부데요비츠키 부드바르’를 토대로 하여 만든 맥주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두 맥주는 상표권 문제로 크게 다투기도 합니다.
앤호이저-부시, 인터브루, 암베브 이 세 맥주회사의 통합은 먼저 암베브가 시작합니다. 브라마를 인수한 브라질 3인의 공동창업자는 브라마 맥주를 정상화하는 일에 착수합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브라질은 거대한 맥주 시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통되는 맥주가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3인의 창업자는 브라마 맥주의 생산 과정을 개선하고 판매 과정을 효율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브라질의 2위 맥주인 안타르치카와 맥주 전쟁을 벌입니다. 그때 브라마가 사용한 맥주 캠페인이 ‘시원한 맥주 한 병 더’였다고 합니다. 이 맥주 전쟁에서 브라마는 안타르치카를 완전히 제쳤고, 결국 두 회사는 하나의 회사로 합병하게 됩니다. 그렇게 탄생한 회사가 아메리칸 베버리지 컴퍼니American Beverage Company) 즉 암베브(AmBev)입니다.
남아메리카를 맥주로 통일한 암베브는 이번에는 인터브루와의 합병을 추진하게 됩니다. 암베브 3인의 창업자는 스텔라 아르투아와 벡스를 담당하는 대표를 만나 두 회사의 합병을 남몰래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인터브루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인터브루는 잦은 맥주 회사의 인수로 전체가 동일한 문화가 없는 그저 회사들의 집합체가 되었고 회사의 대표도 여러 명이었습니다. 훗날 합병 합의서에 서명한 인터브루의 대표만 1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암베브와 인터브루 두 회사의 합병은 조용하고 긴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주주들의 반발, 금융 기관의 규제, 부정적인 여론 등 당시 3위의 맥주 회사와 5위의 맥주 회사가 합병하는 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2004년 3월, 두 회사의 합병이 발표되었을 때, 대부분의 반응은 경악이었다고 합니다. 새롭게 생긴 회사의 명칭을 처음에는 인터브루 암베브로 했다가 며칠이 지난 후 인베브로 변경했습니다. 합병 당시 인베브는 140개국에 맥주를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이 되어 세계 맥주 시장의 14퍼센트를 점유하였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주인은 누구였을까요? 두 회사는 서로의 주식을 매각하고 매입하는 방식으로 주식 스와핑을 하였습니다. 합병을 주도한 것은 암베브였지만, 처음 회사를 경영한 인물은 인터브루를 운영했던 CEO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암베브 출신의 CEO로 변경됩니다. 새 회사의 본사는 인터브루가 있는 뢰번에 두었습니다.
인터브루와 암베브가 합병되고 회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자 매출이 150퍼센트 증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합병을 주도한 브라질의 투자자 3인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맥주회사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기 위해 할 일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맥주 버드와이저를 가진 앤호이저-부시를 사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앤호이저-부시는 인베브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출현할 때 오로지 미국 사업에만 집중하면서 국제 무대에 진출할 기회를 흘려보냈고, 풍요로운 생활에 익숙해진 상속자들과 경영진들은 회사를 방만하게 운영하여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인터브루가 앤호이저-부시에게 회사를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은 2008년 6월입니다. 그로부터 약 5개월 후 인터브루는 앤호이저-부시의 주식을 주당 70달러, 총 520억 달러에 매입하는 계약서에 서명합니다. 그리고 회사 이름을 AB InBev라고 하였습니다. 세계 최대의 맥주 공룡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회사 이름에 앤호이저-부시를 먼저 쓴 이유는 버드와이저를 미국의 자존심으로 생각했던 미국인들의 반발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맥주 공룡의 먹잇감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2013년에는 멕시코에서 가장 큰 맥주 회사인 그루포 모델로를 인수합니다. 그루포 모델로는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맥주를 수출하는 글로벌 양조장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백 년 전인 1925년에 설립되었습니다. 네그라 모델로라고 1930년부터 생산한 비엔나 라거가 대표 맥주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잠시 수입된 적이 있습니다. 그보다 우리에게 친숙한 맥주는 코로나 시대에 더욱 유명해진 코로나 맥주입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코로나 맥주가 가장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3년의 합병은 미국 법무부에 의해 반독점법으로 제동이 걸립니다. AB InBev가 그루포 모델로를 인수할 경우 미국 내에서 사실상 독점적 맥주 기업이 될 것을 우려하여 미국 법무부가 인수를 막기 위한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이 소송에 의해 미국 내 판매권을 콘스틸레이션 브랜즈에 넘겼고, AB InBev는 미국 외의 판매권만 가지게 되었습니다.
2016년에는 사브밀러(SABMiller)를 인수합니다. 사브밀러는 남아프리카의 다국적 맥주회사로 이 회사의 기원은 1895년에 설립한 사우스 아프리칸 브루어리와 2002년에 합병한 미국의 밀러입니다. 이 회사의 포트폴리오에는 체코의 필스너 우르켈, 영국의 풀러스, 이탈리아의 페로니, 네덜란드의 그롤쉬 등 유럽 맥주와 호주의 포스터까지 매우 다양한 맥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합병은 당시 맥주 회사 1위와 2위의 결합으로 이미 공룡이 된 맥주 기업이 더욱 벌크업(Bulk-up)되었습니다. 참고로 당시 3위와 4위의 맥주 회사는 하이네켄과 칼스버그입니다. 이 합병으로 AB InBev는 미국에서 또다시 독과점 기업이 되어 일부 맥주를 매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필스너 우르켈을 포함한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등의 동유럽 맥주를 아사히 그룹에 78억 달러에 팔았습니다. 일본 맥주 반대 운동이 한창일 때 필스너 우르켈이 일본 맥주라는 논쟁이 생긴 사연입니다.
한편, AB InBev의 인수 합병 스토리에는 우리나라의 맥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AB InBev가 되기 전의 인터브루는 1988년 오비맥주의 지분 50%를 사들입니다. 오비맥주의 모기업인 두산그룹은 사업구조를 소비재 중심에서 중공업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했고, 오비맥주를 매각한 자금을 한국중공업을 인수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나머지 50%의 지분도 결국 2001년에 인터브루에 넘깁니다. 그런데 인터브루는 2004년에 브라질의 암베브와 합병하고 곧이어 앤호이저-부시와 합병하면서 막대한 빚을 지게 됩니다.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맥주를 팔아넘겼습니다. 일종의 맥주 가지치기로 2009년에 오비맥주를 글로벌 사모펀드 그룹인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KKR)에 매각합니다. 2014년 사업이 안정화되고 자금이 확보되면서 다시 사들이는데 오비맥주를 아시아 시장의 공략 거점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오비맥주의 주인은 AB InBev입니다.
이 글은 마시자 매거진과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