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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담 Oct 04. 2022

휴직 2달이 지나고 보니

다시 보이는 나라는 사람


휴직을 하고 2달이 지났다. 휴직을 시작했을 때에는 무더워지기 시작하는 여름이었다. 두달사이 계절이 바뀌고 여느때처럼 분주한 둘째 등원시간이었다. 을 나서기  다섯  둘째 아이는 머리에 왕관 핀을 꽂더니 기껏 아빠가 출근 전에 입혀놓고  티셔츠가 아니라 꽃이 있는 치마를 입겠다 했다. 아이가 가장 아래 서랍에서 찾아서 가져온 꽃무늬 원피스는 민소매에 아주 얇은 여름 원단이었다.


"아니, 그 옷은 너무 얇아서 지금 입을 수가 없어."


그냥 지금 당장 나가자고 눈으로 말해보았지만 아이는 다시 서랍을 열더니 레이스가 있는 핑크색 긴팔 원피스를 찾아서 가져왔다. 작게 접어 제일 아래 서랍, 맨 뒤에 넣고 그 위에 분명 다른 패브릭을 덮어 두었는데 어떻게 그 옷을 찾은 건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옷은 두꺼워서 더워, 더워서 못 입는다니깐."


여러 번 말해보았지만 아이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나 오늘 이 옷 입고 가면 친구들이랑 선생님이 예쁘다고 깜짝 놀라겠지?"


이미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어린이집 친구들을 만날 상상을 하고 있는 해맑은 다섯 살 꼬마의 의지를 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너 이 옷 입으면 덥다. 덥다고 할 거야 분명."


티셔츠는 이미 아이가 벗은 뒤였고 나는 후회할 거라는 말과 함께 옷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하늘색 부채까지 손에 들고 신이 난 아이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결국 두꺼운 원피스를 입고 나선 둘째의 등원 길, 아파트 1층 현관문이 열리자 발에서부터 찬기운이 올라왔다. 나는 여전히 2달 전과 마찬가지로 맨발에 베이지색 핏플랍을 신었고 둘째는 맨발에 핑크색 크록스를 신고 있었다. 아이가 고른 원피스는 두껍지 않았다. 둘 다 맨발인 탓에 오히려 춥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뒤돌아서면서 문득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헐렁한 고무줄 바지에 계절과 따로 노는 맨발에 슬리퍼. 머리를 감고 말리긴 했지만, 부스스함을 감추기 위해 푹 눌러쓴 야구모자에 에코백까지.


누가 봐도 집 앞에 잠깐 나온 사람 모양새였다. 출근할 때도 꾸민다는 것 없이 옷을 입고 걸치고 나서는 사람이었다. 넓은 대로는 출근길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파트 단지 사이의 좁은 길까지 줄이 길게 늘어서서 나는 대로에 끼어들기 위해 대기 중인 차들 사이로 푹신한 슬리퍼를 신고 걸었다. 느린 걸음으로 차 사이를 지나갈 때 멀리서 경적소리가 들렸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도로 위 운전자들의 조급함이 느껴졌다.


길을 걷다가 유리벽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아 나 오늘 너무 집순이네."


길에서 지금 아는 사람을 만나진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 순간의 자유로운 느낌은 충분했다. 편한 옷과 편한 신발. 적당히 헐렁한 티셔츠와 셔츠. 나는 익숙함과 편안함, 꾸미지 않은 그 모습 그대로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일했던 직장은 복장 규제가 전혀 없는 부서라서 짧은 반바지를 입어도, 후드티를 입어도 괜찮은 곳이었다는 것도 떠올랐다. 비즈니스 캐주얼이라는 애매한 기준이 있다가 그 마저도 사라진 지 제법 되었다. 누군가는 뒤꿈치가 보이는 슬리퍼를 절대 신지 않고 단정한 스커트와 팬츠를 입었지만 나는 슬리퍼도 신고 헐렁한 바지도 입었던 일이 생각나기도 했다.


출근을 할 때는 매일 같은 곳을 향하는 아침 시간의 루틴이 내게 묘한 안정감을 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 안정감이 좋다고 느꼈는데, 목적지 없이 잠시 동네 길을 걷고 산책하는 그 순간의 기분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멀리 걸을까 하다가, 가방은 무겁고 바람이 차가워 가까운 스타벅스로 방향을 틀었다. 스타벅스 구석에 앉아 샷 추가한 카푸치노 한잔을 주문하고 첫째가 좋아하는 땅콩샌드를 하교 후 간식으로 줄 생각으로 같이 샀다. 하얀 우유 거품이 가득 올라간 카푸치노에 시나몬과 바닐라 파우더를 뿌리고 자리에 앉았다.



돈을 벌려고 애쓰지도 않고 느릿하게 쉬어가는 일이 전에는 불안했던 시간이었는데.

지금은 어째서인지 다르게 느껴진다.


그전까지 보냈던 시간들과 속도가 확연히 다른 요즘이다.

이전의 모든 것들이 나라는 사람의 속도에 맞았던 것일까? 꾸역꾸역 맞춰왔던 걸까?


물음을 가지며 시나몬 향과 함께 카푸치노를 한 모금 마신다.  느릿한 오전 시간이었지만 새벽에는 사이드 프로젝트 회의가 있어 5시 반부터 7시 전까지 줌 미팅이 있었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한 아침 시간이지 생각했다. 사서 책장에 꽂아두고 1년, 2년 동안 읽히지 않던 책 한 권을 어느새 다 읽었다.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나서 내가 좋아하는 새콤달콤한 양배추 코울슬로를 만들었다. 이번 주는 밖에서 사 먹지 말고 집에서 통밀빵에 넣어서 같이 먹어야지,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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