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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락울 Oct 12. 2019

돈 좀 작작 쓰려구요

그래도 스크루지는 싫어요

소비는 감정이라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평소엔 비싸다고 생각했던 치킨이나 배달 떡볶이도 지치고 고된 날이면 턱턱 주문하게 되니까요. 먹고 나서 양이 많아 남긴 걸 냉장고에 넣으면서 후회하지만요.


저는 이유 없이 우울하거나 외롭거나 지치면 '내가 돈을 너무 안 썼나?' 생각합니다. 그럴 땐 위장을 채워줍니다. 달달한 아이스티 한잔에 괜찮아지기도 해요. 사실 방금도 얼음을 동동 띄운 아이스티를 만들어 마셨답니다. 기분이 달달해졌어요.






"우리 민족이 어떤 민족이야!" 하고 물으면 십 대 땐 "음... 백의민족?" 이라고 했고 이십 대엔 "흥의 민족!" 이라고 했다면 요즘은 역시 "배달의 민족"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그만큼 배달이 생활 깊숙이 스며든 요즘 휴대폰을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드리기만 하면, 심지어 간편 결제라고 지문 한 번만 대면 결제는 물론 집 앞으로 가져다주는 편리한 시스템을 영위 중입니다. 덕분에 통장은 텅장이 되어가네요.


"명품백 몇 개 있어?" 가끔 솔직함으로 무장한 친구 한둘이 물어봅니다. 인터넷엔 종종 "이 브랜드 20대가 들만 한가요?" "30대분들 명품백 몇 개나 가지고 계신가요?" "명품백 하나쯤은 장만하셔야죠. 친구 결혼식도 많아지는데..." 등등의 이야기가 올라옵니다. 브랜드마다 타겟층이 있긴 하지만 소비자가 자신의 나이대를 고민하며 브랜드를 고르는 세상이 됐군요. 30대라면 저렴한 중고차값인 명품백은 기본, 친구 결혼식엔 필수라네요.


게다가 하늘 아래 같은 색조는 없다. 봄웜 가을웜 여름쿨 겨울쿨을 넘어 여쿨 브라이트 등의 신조어가 넘쳐나는 요즘 자신의 톤에 맞는 색조를 선택하느라 돈은 곱절로 듭니다.  






"뭐 산 것도 없는데 돈이 없어" 정말 그럴까요. 정말 산 게 없을까요. 내 안에 날뛰는 악마를 달래주느라 주변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쓰느라 우리는 너무 많은 돈을 썼습니다. 결국 남는 건 통장 아닌 텅장이네요.


돈을 나무로 비유해봅시다. 잘 뻗은 뿌리에는 이 한 몸 눕혀 쉬게 할 수 있는 안락한 집과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차가 자리합니다. 바람과 흰 천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건 드라마 세상이에요. 현실은 언제든 돌아와 쉴 수 있는 집과 내 다리 대신 움직여줄 차가 필요하죠. 집과 차, 이 뿌리만 튼튼하게 만들면 나무를 크게 키울 수 있어요.


단단한 몸통에는 노후를 위한 자금이 자리합니다. 비혼은 이 몸통을 키우기 쉬워요. 보통 노후자금의 적으로 꼽히는 게 자식이거든요. 불효자는 웁니다  이 몸이 흙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체력이 된다면 상관없지만 세상은 별천지처럼 바뀌고 나이가 들수록 뼈도 약해집니다. 만약을 위해 나무를 지탱해줄 몸통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면 오늘 놀더라도 좀 더 맘 편히 놀 수 있지 않을까요?


푸르른 잎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이 자리합니다. 단단한 몸통이 내일의 소비라면 푸르른 잎은 오늘의 소비인거죠. 이 소비를 채우는 건 각자의 취향에 달려있습니다. 먹을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치킨, 떡볶이가 매달려있을 것이고 경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행이나 레저가 매달려있겠죠. 어떤 사람은 커피가 매달려 있을 수도, 아이돌이 매달려 있을 수도 있어요. 푸르른 잎이 우거질수록 그 사람은 다양하고 풍족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거겠죠.


눈치채셨나요? 우리는 모두 푸르른 잎을 키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현재의 소비에 주력하죠. 하지만 잘 뻗은 뿌리가 없다면, 단단한 몸통이 없다면 나무는 제대로 자랄 수 없습니다. 푸르른 잎이 모두 떨어지는 겨울이 되면 가냘픈 몸통과 빈약한 뿌리로 버텨야 해요.


저는 여러분들이 잘 뻗은 뿌리와 단단한 몸통으로 겨울을 버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텅장 아닌 통장을 권합니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 미래를 위해 현재는 귀 막고 눈감고 입 닫고 스크루지가 되어보라고 종용하는 건 아니니까요. 자고로 나무는 튼튼한 뿌리 단단한 몸통에 흐드러지게 멋있는 푸르른 잎이 생명 아니겠습니까? 푸르른 잎을 채우는 것도 중요하죠. 다만 모든 것엔 순서와 중요도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한 때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예금 적금의 수익률로는 만족을 하지 못해 주식을 전전했죠. 그때 느낀 건 돈이 돈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같은 5% 수익률도 백만원이면 오만원이지만 일억이면 오백만원이죠. 결국 가진 파이가 작은 사람은 수익률을 크게 높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높은 수익률을 꾸준히 올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유일하게 성공한 이가 워렌버핏인 것 같네요. 그리고 그는 현인이라고 불리죠. 그를 제외한 대다수의 범인들은 개미가 되어 오늘도 불나방으로 환생 중입니다.


높은 수익률에 집착하다 깨달았습니다. 천만원으로 10% 수익률을 올려 백만원을 버는 것보다 쉬운 길이 있다는 것을요. -10%가 될지도 모르는 변동성 따위 개나 줘버린 안전한 길이요. 바로 절약입니다. 지루하지만 쉽고 안전한 길이죠. 미래를 예측하는 통찰력이나 마이너스 수익률을 버텨낼 깡이 필요없거든요. 한 달 동안 10만원씩 아꼈다면 일 년이면 120만원이 됩니다. 이 돈은 천만원을 12% 수익률로 굴려야 나올 수 있는 금액입니다.


0.x% 금리를 더 주는 적금이나 예금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고 높은 수익률을 꾸준히 올리기 위해 공부하는 것도 좋습니다만 당장 꾸준히 해야 할 일은 수익률을 쌓아두는 것입니다. 이보다 쉽고 안전한 방법이 있을까요.


한 달에 배달음식을 두 번 참고 카페를 줄여보세요. 화장품은 필요하다면 손이 자주 가는 몇 개로만 사용해봅시다. 화장품을 끝까지 사용하고 밑바닥을 보면 바꾸는 거예요. 명품백보다 맘에 드는 질 좋은 중저가 백을 골라봅니다. 눈을 감고 누군가의 결혼식을 떠올려보세요. 아마 친구 누구의 명품백보다 신랑 신부의 얼굴,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 어쩌면 맛있는 뷔페가 떠오를걸요.






스크루지는 저도 싫습니다. 돈 때문에 소중한 걸 놓치긴 싫거든요. 돈을 쌓아놓고 살면서 좁은 방에 몸을 구겨 넣거나 털털 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은 자동차를 타거나 해진 옷을 꿰매 입으며 살고 싶지 않아요.


피곤한 몸을 뉘일 아늑한 집과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차와 내 맘에 쏙 드는 옷과 건강한 식재료를 고를 수 있는 여유와 생각만으로 행복해지는 다양한 경험들로 가득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내일이 기대되고 내일모레는 더 기대되는 일상을 살고 싶어요. 하루하루 행복해서 죽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그러길 바래요. 비혼 여자들끼리 뭉쳐서 잘 먹고 잘 살아봐요. 우리 돈 많고 돈 잘 쓰는 할머니가 됩시다. 내일이 기대되는 할머니가 됩시다.


돈 좀 작작 쓰려구요. 여러분들도 그러길 바랍니다.


우리 인생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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