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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락울 Nov 01. 2019

퇴사가 만연한 오늘날 존버를 추천하다.

꼰대력 만렙이 된 비혼주의자

친하게 지내는 비혼 친구가 있다. 그를 A라고 부르자. A는 첫 회사를 꽤 오래 다니다가 3,6,9 주기로 찾아온다는 퇴사병에 걸려 시원하게 사표를 던지고 몇 개월간 여행을 떠났다. 여행비용으로 모아둔 돈을 탕진 후 이직을 준비하는데 쉽게 합격했던 첫 번째 취직과 달리 두 번째 취직은 어려웠다고 한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도 이내 퇴사병이 찾아왔고 그는 요즘 쉴 때마다 '퇴사'를 검색하고 있다. 이제 그의 수중에 남은 돈은 천만원 남짓. 그가 내게 물었다. 언니 퇴사할까 말까?


이번엔 다른 비혼 친구의 이야기다. 그를 B라고 부르자. B는 늦은 졸업 후 20대 후반에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 자연스레 취업이 늦어졌지만 좋은 기회로 스타트업 직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자꾸 발생하는 일련의 이벤트들로 퇴직-취직-퇴직-취직을 반복하게 되었고 연인마저도 그런 B와의 이별을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또한 내게 물었다. 나 다른 회사에서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언니 퇴사할까 말까?






퇴사가 만연한 사회다. 심심치 않게 퇴사라는 글자가 보이고 쉬어가라는 책들이 넘쳐난다. 주위에서도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나도 못해먹겠다는 심정으로 퇴사를 하고 직업을 180도 바꾼 전적이 있기에 그들의 고민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내 조언으로 그들이 결정할 것도 아니고 그저 참고하는 수준이겠지만 고민하게 된다. 예전이라면 별생각 없이 그래 때려쳐 넌 어딜 가도 잘할 수 있을 거야 라고 말했을텐데.


세상에 완벽한 직장은 없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건 감당하며 적당히 타협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회사는 돈을 버는 곳이지 내 취미 생활을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선이라면 버텨야 한다. 회사는 더럽고 치사해도 내 통장에 꼬박꼬박 월급을 넣어준다. 


회사 시스템 그 자체와 맞지 않는 DNA를 가지고 있다면(맞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지만) 사업을 하거나 프리랜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도 안된다면 그냥 버텨야 한다. 버텨서 통장에 꼬박꼬박 넣어주는 월급을 모으고 투자를 해 경제적 자유를 찾자. 


비혼에게 돈은 자유를 보장하고 현재를 지탱해주는 것을 넘어, 더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생존을 틀어쥐고 있는 존재다. 돈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돈 앞에선 낭만보다 현실을 생각해야 한다.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티자. 이러다 죽겠어서, 사는 게 의미가 없어서, 돈을 더 준대도 못해먹을 짓이라면 빨리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자. 즐겁게 버틸 수 있는 직장을 구해야 한다. 






꼰대를 극혐한다. 절대 꼰대는 되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그런데 비혼주의자로 내 정체성을 확립한 후 꼰대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울적하다. 


그래도 나의 꼰대짓은 계속된다. 결국 선택은 당사자의 몫이지만 내 말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물론 상대가 조언을 구하는 경우에만. 


버틸만하면 버텨봐. 적어도 이직할 곳은 찾고 나가는 건 어때? 회사 밖은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라잖아. 참 거지 같다 그치? 지금이라도 짬짬이 기술을 배우는 건 어때? 나 하나 벌어먹고 살 자신 있으면 그때 당당하게 사표 던지자. 


나는 퇴사하고 싶어 지기 전에 미리 즐거움을 만들어둔다. 속 시원하게 얘기할 수 있는 동료들, 내가 시작한 재미있는 프로젝트들, 캐비넷 속 간식과 언제든 포션이 되어줄 커피까지. 이 중에서 내게 제일 힘이 되는 건 동료들이다. 재미있는 프로젝트들이 있어도 맛있는 간식과 시원한 커피가 있어도 동료들이 없었다면 그리 즐겁지 않았을 거다. 워라밸도 사람이 관건이다. 좋은 사람들이 많은 회사는 좋은 회사다. 상사가 좋은 사람이긴 쉽지 않지만.






욜로 하다가 골로 간다는 우스갯소리에 한참 웃다가 서글펐다. 욜로가 낭만은 아니라지만 지극히 현실에 공감하는 나를 보며 어릴 적 낭만은 어디로 갔나 괜히 뒤숭숭하다. 


그만두고 싶다는 비혼 메이트 동생들에게 정말 힘든 거 맞아? 그냥 지루해서, 하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고? 입까지 튀어나오는 말을 억지로 삼켜낸다. 내가 봐도 꼰대 같아서다. 힘들면 때려쳐 지루한걸 어떻게 해 하기 싫은 건 또 어떻게 하냐구. 젊은 날 자신만만했던 나와 오늘날 조금 더 살아본 내가 부딪힌다.


하지만 늘 조금 더 살아본 오늘날의 내가 이긴다. 회사는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니까. 돈은 지극히 현실적인 거니까. 


그래도 위로를 덧붙이자면 돈으로 낭만을 살 수 있다. 회사를 벗어난 모든 순간을 낭만으로 꾸며보자.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내일이 기대되는 일만 하자. 회사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면, 나의 내일모레를 준비할 돈을 벌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퇴사가 만연한 오늘날 존버를 추천한다. 당신의 내일과 내일모레를 위해. 또 낭만 가득할 오늘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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