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원 Jul 17. 2023

기억보다 선명한 기록, 프롤로그

 추석을 앞두고 집에 올라가지 못한다고 하니 엄마가 명절 음식들을 보냈다. 간장게장이 먹고 싶다고 했던 것 까지 기억해서 게장은 큰고모가 잘한다며 큰고모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아빠랑 벌초 하러 가서 만난 큰고모에게서 엄마는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두통이나 받아왔다. 간장게장은 한 마리씩 나눠서 다시 포장하고 갑자기 허리가 아프다며 택배를 부치러 못 간다고 하더니 동태전과 호박전까지 부쳐 함께 보냈다. 이틀 만에 도착한 택배는 두 박스였다. 간장게장, 양념게장, 동태전, 호박전, 알밤, 묵은지, 열무김치, LA갈비까지 우리 집 작은 냉장고가 가득 차서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정리하기도 벅찬 양을 혼자 들고 나르며 우체국에서 40분이나 기다렸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자식이 없는 나는 헤아리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을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에게 명절은 큰 의미가 없다. 20살이 되면서부터 큰집 제사에 가는 것을 거부했고 부모님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명절마다 친척들을 만나고 오면 굳이 그들이 나의 안부를 묻는다는 말을 전하는 엄마의 말에도 시큰둥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친척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삶이 급격한 하향곡선으로 내려갈 때 모진 말들을 하는 것을 직접 들었고 그들이 부모님을 무시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봤기 때문이다. 형제가 없는 나는 가족에 대한 범위가 아주 좁았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우리 강아지들까지가 나의 가족이었다. 형제가 아주 많은 부모님이 본인들의 가족들이 경계 없이 나의 삶을 침범하는 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허용하는 할 때 심한 거부감을 느꼈다. 20살부터는 부모님에게 강하게 거부하는 의사표현을 했고 엄청난 진통이 있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타인보다 더 데면데면한 사이로 친척과의 관계를 만들어 갔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감정의 파동이 생긴다. 명절마다 내가 좋아하는 고기랑 산적꼬치를 가득 담아 보내주던 큰엄마, 그리고 돌아가신 친할머니, 내가 게장이 먹고 싶다고 하니 따로 담아서 챙겨 보내주는 큰고모,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제주도에 보내주라고 엄마 집에 들러서 만들어 주고 가는 이모들, 지리산에서 캔 자연산 송이를 보내준 외삼촌, 고로쇠물 나올 때 박스 채로 보내주던 막내 외삼촌.고깝게 벽을 치던 내가 참 못나게 느껴진다.  


 도망치듯 혼자 제주로 내려오니 그동안 가까운 사람들에게 못해준 것만 생각이 난다. 내 삶이 벅차다는 이유로 쳐냈던 수많은 손길들이 매일 밤 떠오른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갇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고 눈물도 많아졌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글을 쓰고 단단해지는 나를 상상한다.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더 늦기 전에 적어 내려가야겠다.아프지만 꺼내야 하는 나의 이야기를.   

작가의 이전글 다른 사람의 인생을 표절하지 않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