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맞아 추석 특선영화를 해주는 채널이 많아서 티브이를 보다가 문득 영화관에서 튀겨주는 고소한 팝콘이 먹고 싶어 졌다. 내가 먹어 본 팝콘 중 가장 맛있었던 20대 초반에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먹었던 갓 튀겨져 나온 팝콘 생각이 났다. 그때 내가 일할 매장이 오픈 준비 중이라 다른 지역 매장에서 교육을 받는 도중에 3주도 안되어 추석이 찾아왔다. 추석 당일 나는 매표 파트를 맡았는데 저녁시간이 되기 전에 이미 표가 매진이어서 매표 파트를 찾는 고객들한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목이 쉬도록 내뱉었다. 표가 없다는 말에 화를 내는 사람들이 꽤나 많아 액받이 무녀가 된 기분이었지만 너무 바빠서 기분 나쁠 시간도 없었다. 매진으로 매표창구가 한가해지자 매니저는 나를 매점 파트로 보냈다. 포스에서 주문받은 메뉴를 챙겨주는 서브 역할을 했는데 매점에 비해 매표 파트는 양반이었다. 나는 미끌 거리는 구두를 시고 매점 안을 빠른 걸음으로 거의 뛰듯이 날아다니며 일을 했다. 가장 주문이 많은 것은 달콤한 팝콘이었다. 다른 팝콘과는 다르게 달콤한 팝콘은 설탕을 넣어 튀기는 것이어서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타버리기 때문에 꺼내는 타이밍이 중요했다. 얼음을 채운 음료컵에 음료를 담고 추로스를 구우면서도 달콤한 팝콘이 튀겨져 나오는 소리가 들리면 매점 안의 직원들의 시선은 모두 그곳으로 향했다. 만드는 데 한계가 있어 점점 밀려나는 고객들의 원성을 듣기 전에 달콤한 팝콘을 주어야 한다는 직원들의 간절한 눈빛이 서로 엉켰다. 점점 인상을 찌푸리는 고객들을 보며 나도 발을 동동 거리며 달콤한 팝콘을 퍼 날랐다. 그때 다른 매장 직원이라고 우리에게 텃세를 부리던 직원들과도 그 날따라 손발이 척척 맞아서 나름의 희열도 있었다. 가장 바쁜 날이었지만 실수 없이 음료도 잘 뽑히고 결제도 막힘없었고 팝콘도 타지 않았다. 그런 날 함께 일을 하면 괜히 전우애가 생기곤 한다.
20대부터 줄곧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소위 말하는 빨간 날의 개념은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딱히 주말이 주는 특별함도 없었고 명절은 큰집에 가지 않아도 되는 좋은 핑곗거리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무언가에 의미 부여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살았다.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것에 속박되는 나 자신이 싫었다. 그렇게 직장도, 가족도, 친구도, 연애도, 결혼도 나를 속박하는 것이라 여기고 살아왔다. 가끔 마음이 약해지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원리 원칙을 지키다 한번 ‘융통성’이라는 말을 핑계로 실수 같은 것을 저지르면 그 과오로 만들어진 구속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나에게 스스로 면제부를 주며 합리화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 말이다.
요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다. 미래 라기보다는 현재의 삶을 유지할지, 변화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가볍게 팝콘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결국 또 이 고민에 빠진다. 미래에 보장된 것은 없지만 지금 하고 싶은 것을 도전해야 하는 타이밍임을 인지하면서도 나는 안될 거라 스스로를 짓누르는 바보 같은 행동은 하지 않길 바란다. 내가 나의 가능성을 무시하지 않고 나를 믿어줬으면 좋겠다. 꺼낼 타이밍을 놓친 달콤한 팝콘은 쓰레기통 밖에 갈 곳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