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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Feb 10. 2024

꽃과 운동

꽃모가지 세 개가 부러져 곱게 놓여 있었다. 옆에 나뭇잎들도 가지런하게 잘려 놓여있다. 어떤 조용하고 세심한 소녀들이 살림놀이를 하다 간 흔적인 걸까. 진한 갈색 벤치 색깔과 고운 꽃의 색, 그리고 그것을 비추고 있는 태양의 빛까지 조화롭다. 세 개의 꽃들은 모두 똑같이 동백꽃이지만 각기 조금씩 다른 크기, 색을 가지고 있다. 만약 천편일률적인 꽃이 놓여있었다면 덜 매력적이었을텐데 이렇게 서로 다른 꽃들이 한 줄로 놓여 있으니 더 아름답게 보였다.




요즘 YMCA에서 운동을 하면서도 비슷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미국에는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살다 보니 그만큼 다양한 체형을 보게 된다. 운동을 하면 대부분 몸에 붙는 옷을 입고 있으니 몸의 형태가 더 도드라져 보이게 되는데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나와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이 나오는 다양한 몸들을 볼 때마다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줌바 수업을 처음으로 들었다. 선생님은 히스패닉계로 열정적으로 수업을 이끄셨다. 하지만 나는 나는 앞에 서 계신 선생님이 아니라 내 바로 앞에 있는 흑인 여성분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분은 선생님보다 반박자 느리게 여유롭게 동작을 따라 했다. 하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바이브가 느껴지는 엉덩이와 손 끝 동작들이 정말 멋졌다. 풍성한 인조 속눈썹이 휘날리도록 턴을 돌 때는 이게 바로 줌바구나 싶었다.


나는 그 순간에도 선생님의 동작을 빨리 캐치하려고 노력했다. 땀이 뻘뻘 나도록 동작을 각 잡고 따라 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줌바가 딱딱하고 격렬한 운동 동작이라면 그 흑인 여성분의 줌바는 즐기는 춤 같이 느껴졌다. 영어를 할 때도 내가 하면 된소리가 많은 한국 발음 잔상 때문에 발음이 딱딱하게 느껴지는 반면, 흑인들은 노래하듯이 리듬감이 느껴진다. 만약 태권도 수업이었다면 내가 태권정신을 담아 제대로 따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꺾인 꽃은 시든다. 그럼에도 피어 있는 동안에는 분명 누군가에게 기쁨을 준다. 나는 꽃이 예쁘지만 금방 시들어버릴 것이라는 이유로 잘 사지 않았다. 유흥이나 술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술에 취하는 것은 잠시이고 다음날 머리가 아플 것이 뻔한데 왜 술을 마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생각이 바뀌었다. 사람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려면 디오니스소의 축제 같은 순간도 필요한 것 같다.


내가 YMCA에서 줌바, 발리우드 댄스, 고강도 인터벌 운동 같은 수업을 듣는 시간은 길게는 1시간, 짧게는 30분 정도이지만 그 순간에는 완전히 무아지경이 되어 몸을 움직인다. 하루는 24시간이지만 내가 진정 제대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은 그 1시간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나는 글을 쓰고 생각을 정돈하면서 나 자신을 찾기도 하지만, 그렇게 광란적으로 운동에 빠져드는 나 자신의 모습 역시 새로운 나이다. 꽃이 결국 시들어 버린 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할 것이 아니라, 피어있는 동안 제대로 그 아름다움을 즐기면 되는 것처럼 나 역시 금요일 밤에는 술도 마시고, 평일 오전에는 몸도 흔들면서 순간의 기쁨을 충만하게 느끼고 싶다.


며칠 전에는 수업 중에 윗옷을 벗어버렸다. 윗옷 아래에는 스포츠 브라만 있었는데 땀이 너무 나서 벗었더니 순간 몸이 시원해지면서 정신도 개운했다. 그동안에는 튀어나온 옆구리 살과 겨드랑이 살이 창피해서 꽁꽁 싸매고 있었지만 갑자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남의 눈치를 살필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즐거우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앞, 옆의 라티노, 흑인, 백인 할 것 없이 다 40-50대 여성들이 자신의 있는 몸 그대로를 드러내고 춤을 추고 있었다.


윗옷을 벗었더니 내 등 뒤에 있는 조그만 제비 문신이 드러났다. 대부분 옷에 가려져서 나 자신도 내가 문신이 있다는 것을 종종 잊는다. 오른쪽 어깨에 세 마리 제비를 달고 격렬하게 팔을 뻗으며 운동을 했더니 마치 그 새들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 새들을 마음껏 드러내면서 나는 그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그렇게 멀리 날아갔다 온 제비들은 땀이 식고 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나는 그렇게 제비들을 날아보내며 한 삶을 살고 나와 다시 내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로 돌아간다. 매일 그것을 반복하면서 나는 비로소 제대로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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