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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Mar 13. 2024

엄마의 식탁 자리는 어딘가요?

12인용 식탁 어디에도 멀쩡한 내 자리가 없다.

작년 겨울, 원래 2년으로 예정되어 있던 미국 주재원 생활이 3년으로 연장되었다. 앞으로 1년 더 미국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제일 먼저 한 일은 큰 식탁을 새로 사는 것이었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산 가구도 식탁이었는데 연장 소식을 알고 산 것도 식탁이라니, 그만큼 식탁이 우리 집 중심에 있다는 뜻일 것이다. 원래 쓰던 6인용 식탁은 우리 가족들만 쓰기에는 크기가 딱 알맞았다. 하지만 미국에 살다 보니 손님 초대할 일이 많아서 그 식탁으로는 항상 자리가 좁게 느껴졌다. 앞으로 남은 미국생활 동안 사람들을 더 많이 초대하자는 다짐을 하며 최대 12명까지 앉을 수 있는 큰 식탁을 새로 샀다.


식탁이 커지니 오히려 내가 앉을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원래 쓰던 식탁은 폭이 좁아서 팔을 뻗으면 맞은편에 앉아있는 아이들 자리까지 손이 닿았다. 그런데 이 큰 식탁에서는 정상적인 자리에 앉으면 맞은편에 손이 닿지 않았다. 7살인 아들은 아직도 엄마 손이 없으면 스스로 냅킨으로 입을 닦지 못하는 털털한 남성이고, 1살인 딸은 엄마가 먹여주는 밥은 절대로 먹지 않는 강인한 여성이다. 아들과 딸 자리를 왔다 갔다 하고, 케첩과 소금을 찾는 아들의 요청에 냉장고와 주방 사이를 다니다 보니 어느 자리에도 엉덩이를 붙이지 못했다.


엄마는 식탁에서도 한 가지 일만 하지 않는다. 엄마는 밥을 만드는 요리사이고, 음식을 가져다주는 서버이자, 다 먹은 자리를 치우는 청소부이다. 그 많은 할 일들 속에서 같이 밥을 먹는 정상적인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되겠다는 것은 내 욕심인 것일까.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은 않은 그 욕심을 채우겠다고 나는 식탁의 이곳저곳 자리를 앉아보며 '내 자리'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어디를 앉아도 계속 불편했다.


결국 내 자리는 식탁 최하단부 모서리였다. 아들과 딸 사이 자리 사이에 있으면서 주방과도 제일 가까운 자리, 이곳에 있을 때 가장 편안했다. 나는 아이들 가운데 앉아서 딸이 던지는 밥알을 줍고, 아들이 떨어뜨리는 부스러기를 치우며 간간히 내 밥도 먹었다. 이 넓은 12인용 식탁에서 내가 앉을 한 자리가 이 구석 된 곳이라니, 나는 그곳에 앉아 편안함을 느낌과 동시에 슬펐다. 이 자리가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이들 자리 앞에는 단정한 식탁 매트를 깔아 둘 자리가 충분하지만 내 후미진 자리에는 식탁 매트를 둘 여유가 없다는 것, 아이들은 식판에 각각 반찬이 예쁘게 자리 잡았는데 정작 내 좁은 자리엔 작은 접시 놓일 자리 밖에 없어서 한 접시에 모든 음식이 들어가 있다는 것, 어느 곳에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아이들 틈에 끼여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 지금 내 상황이다.


절대 모서리에 앉지 말라고 하던 엄마가 생각났다. 그러면서 엄마 자리는 항상 식탁 모서리였다. 친정에 가면 엄마는 식탁 의자가 아니라 꼭 둥근 스툴을 가지고 와서 식탁 모서리에 앉았다. 그것도 엉덩이를 붙인 듯 붙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엄마는 주방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서 어디 반찬 그릇에 음식이 절반쯤 없어진 것 같으면 바로 주방으로 달려가 그 자리를 두 배로 채워놓곤 했다. 엄마는 과일은 무조건 제일 비싼 것을 사고, 맛있는 살만 먹으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은 다 자른 배의 씨 부분을 입으로 베어 무는 사람이다. 나를 식탁 가운데에 앉혀두려고 모서리 자리에 가던 우리 엄마, 나는 이제 엄마와 똑같이 아이들을 위해 스스로 모서리에 앉아있다. 우리 딸은 또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배우게 될까? 딸이 자기만의 식탁을 가지게 될 만큼 컸을 때 어디에 앉게 될 것인가?


나는 앞으로도 지금의 내 식탁 자리를 옮길 생각은 없다. 나는 지금 이 모서리 자리가 내 상황에 가장 적합하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식탁 모서리 맞은편에 내 자리를 하나 더 만들었다. 내 자리를 온전하게 하나를 가질 수 없다면 불완전한 모서리 자리 두 개를 가지면 어떨까? 맞은편 모서리 자리에는 내가 공부할 수 있는 영어교재와 볼펜, 그리고 노트북을 두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자리에 앉았다. 한 시간 공부할 시간 내기가 어려워서 나는 하루에도 여러 번 조각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지만 그럼에도 그 자리가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기쁘다. 엄마가 모서리 자리에 앉는다고 해서 그것을 안타까운 시선을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스로 이 자리를 선택했고, 이 모서리 자리 두 곳에서 충분히 행복하다. 우리 딸도 당장 눈에 보이는 엄마의 식탁 자리가 아니라, 이런 엄마의 행복을 배웠으면 좋겠다.




이 식탁에서 내 자리는 어딜까요? (확장하면 12명이 앉는 식탁이에요.)
바로 이 끝 모서리 자리입니다. 저는 네모난 의자에 앉지 못하고 이 스툴에 앉아있지요.
하지만 이 맞은편 자리에도 제 자리가 하나 더 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초록색 의자를 두었습니다)
이 아기공주님이 조금 더 클 때까지 아무래도 저는 이 식탁 자리에 한동안 앉아있어야 할 것 같아요. (머리 위에 밥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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