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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May 05. 2024

3. 첫 3일이 고비다

그냥 여기서 그만둘까? 

하루를 꼬박 굶고 난 다음 날, 몸무게는 1킬로그램도 줄어있지 않았다. 물을 많이 먹고, 소금을 먹어서 부어서 그런 걸까. 그 외 아무런 음식을 먹지 않았는데 평소와 그대로라니, 내 몸에게 크게 배신당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 전날에 잠을 잘 자지 못해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생리가 시작됐다. 모유수유를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생리 주기가 일정하지 않아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보통 생리 기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몸무게가 증가했기 때문에 어제 굶었지만 살이 빠지지 않은 이유가 이해되기도 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 

1. 저녁 에너지 방전 

단식 이틀째가 지나자 낮에는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에 정신을 똑바로 붙잡고 있었지만, 남편이 퇴근하고 오고 7시가 넘어가면 갑자기 에너지가 방전되는 느낌이었다. 첫 3일 동안에는 저녁마다 침대에 일찍 들어가서 누워있었다. 평소에도 저녁식사는 아이들이 5시쯤 먼저 하고, 남편은 7시쯤 따로 먹어서 식사를 함께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없었지만 그래도 저녁에 같이 소파에서 장난치고 놀던 시간을 내지 못한다는 게 미안했다. 


2. "엄마 반찬이 맛없어요!" 

단식을 하면서도 음식은 계속 만들어야 했다. 밥과 반찬, 국을 끓이면서 간을 봐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 대충 감에 의지해서 음식을 했다. 된장국을 한 술 뜬 아들이 말했다. "엄마 국에서 아무 맛이 안 나요!" 감자조림을 먹더니 말했다. "엄마! 맛이 없어요!!!" 맛이 없다고 해도 내가 맛을 볼 수가 없으니 어찌할 수가 없었다. 


3. "그럼 나도 안 먹을래!" 

아이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도 고비는 계속되었다. 둘째 딸은 혼자 숟가락질을 하겠다고 정신없어서 엄마가 먹는지 마는지도 모르는 아기이지만, 첫째는 달랐다. "엄마는 왜 안 먹어?" 아들은 평소와 다르게 내 자리에 수저가 없는 것을 금세 알아채고는 왜 나는 같이 안 먹냐고 물었다. 엄마가 배에 살이 많아서 이걸 없애려면 밥을 지금 안 먹어야 해,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대뜸 아들은 "그럼 나도 안 먹어!" 하고 입가에 장난기 섞인 얼굴로 말했다. 나는 그때부터 성인과 아동의 대사과정은 어떻게 다른지, 왜 너는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기나긴 설명을 시작했다. 엄마는 안 먹는 게 더 건강해지는 거야... 


그래도 좋았던 것 

1. 가려움이 없어졌다. 

언제부터인가 왼쪽 종아리에 가려움증이 생겼다. 나도 모르게 자기 전에 긁었는지 상처가 생겼고 잘 아물지도 않았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여기에 좀 더 로션을 바르기도 했지만 가려움은 잘 없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단식을 하고 3일째 되는 날 이 부분이 한 번도 가렵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 단식과 가려움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식사를 시작한 지금은 다시 가렵다는 걸 보면 분명 이것들이 연관돼 있는 것 같긴 하다.


2. 생리통이 없어졌다. 

나는 단식하는 기간 내내 생리를 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생리통이 뭔지도 모를 정도로 아무런 몸의 변화가 없었는데, 아이를 낳은 후부터는 생리기간마다 허리통증이 심했다. 임신기간 10달 동안 배 무게 눌려 허리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생리 때마다 허리통증으로 고생했다. 그런데 단식하는 기간에 했던 생리 때는 이상하게 허리 통증이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단식을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3. 심심하다 

단식 기간 내내 굉장히 심심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평소에 심심해서 먹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도 반대로 알게 됐다. 그동안에는 아이를 돌보다가 당이 떨어질 때 먹는 초콜릿, 차에서 첫째를 기다리면 먹는 쿠키 같은 것들이 내 심심함을 달래주었다. 순간의 심심함을 무마시키려고 내가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니, 나는 그 깨달음이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이 심심한 감정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나를 보살피는 단식 

단식을 그만 둘 이유는 수두룩 했지만, 계속할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그런데 그 한 가지 이유가 너무 강력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그 이유는 나는 나 자신을 보살피고 있지 않았다는 깨달음이다. 단식을 해보니 내가 왜 그동안 살이 빠지지 않았는지가 극명하게 보였다. 나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한 끼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나마 둘째가 이유식을 시작하기 전에는 한 끼라도 잘 챙겨 먹었는데, 둘째의 식사를 함께 준비해야 하면서부터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이 먹다가 남긴 음식, 음식을 만들면서 맛보느라 먹는 것들, 중간에 집어먹는 간식들이 내 뱃살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이 깨달음을 무시하고 단식을 그만둘 수 없었다. 나를 돌봐야겠다는 마음이 단식을 이어나가게 했다. 


내가 어떤 것을 하고자 할 때, 그것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아주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해내고 싶은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계속할 수도 있다. 내가 그동안 쓰레기를 먹고 있었다는 자각, 나는 나 자신을 보살펴야 한다는 단단한 마음들이 단식을 하며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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