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학부모 총회와 함께 학부모 공개수업을 하게 되었다. 입학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공개수업을 하려니 묵직한 부담이 밀려왔다. 동 학년 선생님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다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공개수업을 준비했다.
준비한 수업은 ‘무지개 까마귀’라는 동화책을 감상하고 무지개 까마귀처럼 마음이 따뜻한 동물 가면을 꾸며보는 활동이었다. 아직 글자를 모르는 어린이들에게 동화책을 실감 나게 읽어주고 싶어서 집에서 동화 구연을 열심히 준비했다. 또 동물 가면에 고무줄을 연결하면 금방 찢어질 것 같아서 아이스크림 막대를 아래쪽에 붙여서 간단하게 얼굴에 대고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드디어 공개수업 당일. 4교시 수업 후 점심 식사를 잘 마치고 아이들과 청소를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약 30분 뒤에는 공개수업 시작이라고 알려주고 깨끗한 우리 반을 만들자고 설득했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발랄하게 미니 빗자루를 꺼내 들고는 로봇청소기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행복은 여기까지. 이제부터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험난한 다섯 고개 이야기가 펼쳐진다. 기대하시라. (손수건 하나씩 준비하시고요.)
첫 번째 고개는 첫 5교시의 후폭풍이었다. 5세 정도의 생각 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이준이는 점심 식사 후 바로 하교하지 않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준이는 집에 가고 싶다며 가방을 메고 소리를 지르며 엉엉 울었다. 이준이를 설득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나섰다. 서너 명의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이준이를 둘러싸고 왜 집에 가면 안 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이준아, 오늘은 5교시야. 이따가 엄마들이 와.”
“이준아, 교실에 있으면 이준이 엄마가 이준이 보러 올 거야.”
하면서 아이들은 이준이를 둘러싸더니 자리로 슬며시 끌고 갔다. 이준이는 친구들에 둘러싸여 홀린 듯이 본인 자리에 앉았다. 이준이의 모습은 마치 구름을 탄 손오공 같았다. 수업 시작 15분 전이라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솜사탕같이 아름다운 아이들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고개는 돌아다니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뒤에 온 학부모님이 반가워서 자꾸 뒤를 돌아보더니 급기야는 온갖 핑계를 대며 학부모님 가까이 갔다. 사물함에서 뭘 꺼내야 한다는 둥, 쓰레기를 버린다는 둥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애써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쫓아다니면서 자리에 앉혔다. 우아한 몸짓으로 아이들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 두더지 게임을 마쳤다.
세 번째 고개는 체온 조절 놀이였다. 한참 꾸미기 활동 중이었는데 훈이가 갑자기 춥다고 했다. 그렇게 추운 날씨가 아니었는데 춥다고 해서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교실 옷걸이에서 외투를 꺼내 훈이에게 입혀주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반대쪽 세인이는 덥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왔다. 세인이의 옷 지퍼를 내려주고 외투를 벗으면 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네 번째 고개는 갑자기 벌어진 화장실 전염 사태였다. 분명 수업 시작 전에 모두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이것은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민우야, 우리 20분 전에 화장실 다녀왔으니까 조금 참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물었지만 민우는 너무나 민망하게 소중한 곳을 매만졌다. 이대로 고집을 부리다가는 큰일이 날 수도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장실 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그 뒷자리 민찬이도 소중한 곳을 꼭 잡았다. 할 수 없이 또 보내줬다. 이게 아닌데. 후.
다섯 번째 고개는 동물 가면의 용도 변경(?) 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꾸미기를 다 마친 아이들은 동물 가면을 흔들기 시작했다.
“야! 네 가면 못생겼어!”
“네 가면이 더 못생겼거든!”
갑자기 싸움이 붙었다. 아이들은 동물 가면의 손잡이를 붙잡고 서로의 몸을 치기 시작했다. 지친 나는 썩은(?) 미소를 지으면서 아이들의 싸움을 말렸다.
“얘들아, 오늘 부모님들 오셨는데 이런 모습 보여주면 안 될 것 같아요.”
“선생님! 어차피 오늘 우리 엄마는 안 와서 저는 싸워도 괜찮아요.”
지후의 한 마디에 온 교실이 바짝 얼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했지만 그래도 지후에게 웃으면서 이야기해 주었다.
“지후야, 선생님이 엄마한테 전화하면 엄마가 다 아실 텐데?”
지후는 그것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는지 당황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바르게 앉았다. 다행히 학부모님들은 웃으셨고 동물 가면 싸움은 잘 마무리되었다.
아이들을 보내고 교실에 앉았다. 속 쓰림이 밀려왔다. 애초부터 날 것 그대로의 교실을 그대로 보여줄 마음이었지만 내 생각보다 더 싱싱했던(?) 아이들의 모습 앞에서 나의 멘탈은 유리가 되어 산산조각 났다.
조용히 앉아 부서진 멘탈 조각을 하나씩 주워 담았다. 수업 전에 5교시를 거부한 이준이, 수업 시간에 유난히 돌아다녔던 현성이, 갑자기 춥다는 훈이, 덥다는 세인이, 화장실 간다는 민우와 민찬이, 동물 가면을 무기 삼아 싸운 지후와 민기를 떠올리는데 가슴 깊숙한 곳을 찔린 듯이 아팠다. (너희들 꼭 그렇게 해야만 속이 시원했냐?!)
넋이 나간 채로 앉아있는데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이들이랑 다섯 고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행복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내일은 발병이 난 ‘행복 님’이 우리 교실로 꼭 다시 돌아오시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