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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초능력

“은찬아 조용히 하자!”

아이들에게 등을 보이며 칠판에 시 한 편을 쓰고 있는데 은찬이의 목소리가 들려 한마디 했다. 뒤돌아봤더니 놀란 은찬이는 입을 막고 있고, 짝꿍 민주가 놀라서 묻는다.

“선생님! 안 봤는데 은찬이인지 어떻게 알아요?”

“선생님은 초능력이 있거든!”

아이들이 토끼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본다. 25명, 한 사람당 2개씩 총 50개의 구슬이 반짝인다.

“에이 거짓말!”

“아니야. 선생님이 진짜 안 보고 맞혔잖아!”

‘믿는 어린이 : 안 믿는 어린이’의 비율은 7:3 정도였다. 그들 사이에 벌어진 갑론을박이 너무 웃겨서 아무 말 없이 계속 지켜봤다. 

“그건 그렇지만, 세상에 초능력이 어딨어.”

“야! 우리 선생님은 절대 거짓말 안 해.”

‘절대’라는 단어에 속으로 준비했던 ‘뻥이야’라는 답변이 쏙 들어갔다.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느낌이었다. 

“선생님, 초능력 진짜 맞죠?”

“으응.”

"진짜예요?"

“어엉.”

아이들의 밀착 질문에 나는 초점을 잃은 채 영혼 없이 대답했다.

“그것 봐 맞잖아!”

나의 초능력을 믿는 어린이들의 어깨가 교실 천장에 닿을 듯이 올라갔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한 나는 그들의 어깨를 타고 교실 천장 밖으로 탈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래! 역사적으로 접근하자!’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얘들아, 선생님이 선생님을 몇 년쯤 했을까?”

“5년?”

“10년?”

“아니, 10년도 훨씬 넘어서 거의 20년이 다 되어간단다. 너희들이 생겨나기도 전에 선생님은 이미 선생님이었지.”

아이들은 다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생님 그러면 조선 시대에요?”

역사책을 띄엄띄엄 본 서준이가 갑자기 나를 조선 시대로 보내 버렸다.

“아,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아무튼 좀 오래되었지.”

“선생님 그런데 조선 시대가 뭐예요?"

갑자기 이야기의 흐름이 조선 시대로 흘러갔다. 우리나라에 세워진 다양한 나라 이름 중 하나인데 5학년쯤 되면 알 수 있는 내용이라고 적당히 답변해 주었다. 다시 초능력 이야기로 겨우 돌아왔다.

“이건 비밀인데. 내가 선생님이 된 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 신에게 선물을 받았어.”

“왜요?”

“선생님이 너무 힘들어서 선생님 그만하고 싶다고 하니까 신이 계속하라고 선물을 주셨어.”

“공짜로요?”

“응. 그 대신 더 열심히 선생님 하는 일에만 사용해야 한다고 했어. 그렇지 않으면 다시 빼앗아 간다고 했어.”

“안 뺏겼어요?”

“응. 다행히 아직도 갖고 있지. 그런데 신기한 것은 교실에서만 통해. 밖에서는 절대 안 나와.”

“아. 그렇구나.”

“야, 그것 봐! 진짜잖아.”

그 이후 아이들은 내가 뭘 잘하기만 하면 초능력 이야기를 꺼냈다. 그림을 그려주면 초능력이 있다고 박수를 쳤다. 아이들의 거짓말을 바로 잡아내면 역시 선생님의 초능력이 발휘되었다면서 감탄했다. 

어느 월요일 아침, 은찬이가 나에게 은밀하게 다가왔다. 

“선생님! 저 주말에 엄청 맛있는 거 먹었는데요. 뭐 먹었게요?”

지난주 금요일에 은찬이가 캠핑 간다고 들떠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캠핑 음식 중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생각했다.

"마시멜로?"

“으악!”

은찬이가 소리를 질렀다.

“은찬아 왜 그래?”

“선생님! 진짜 초능력 있네요!” 

은찬이는 내 말도 듣지 않고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얘들아 선생님 진짜 초능력 있어!”

“야! 너는 그걸 이제 알았니?”

은찬이는 친구들의 구박(?)을 당하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끝까지 나를 의심했던 은찬이마저 나의 초능력을 알아버린 후 우리 교실에서 나의 초능력을 의심하는 학생은 없어졌다. 

그러나 나의 초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들은 종종 생겨났다. 다행히 아이들의 말이나 행동을 보면 알아맞힐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연말까지 아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초능력의 비법은 바로 관심이기 때문이다. 

 

무작정 나를 믿어주는 아이들 덕분에 나는 초능력을 가진 슈퍼 티처가 되었다. 관심이라는 작은 투자로 슈퍼 티처라는 큰 이익을 얻었으니 올해 장사는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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