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교내 점심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학생 자치회 건의와 방송 담당 선생님의 수고로 올해부터 교내 점심 방송이 시작되었다. 주로 고학년 학생들이 사연과 함께 듣고 싶은 음악을 신청한다. 고학년 담임선생님들의 세심한 지도로 학생들은 터무니없는 음악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음악을 신청한다.
지난달 교내 음악 방송에는 6학년 2반 선생님께서 아이들과 만난 지 100을 기념하여 사연을 보내주셨다. 아이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선생님의 진심이 담긴 사연이라서 더 마음에 와닿았다.
이번 달 교내 음악 방송에는 6학년 4반 선생님께서 신청하셨다. 곡명은 화사의 ‘멍청이’였다. 파격적인 선곡이었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는 담임선생님의 신청 사연이 꽤 감동적이었다.
“쯔윗쯔윗쯔윗쯔윗!”(twit twit twit twit)
1학년 아이들도 짧은 혀로 신나게 따라 불렀다. 한두 명이 몸을 흔들기 시작하자 교실은 댄스 파티장으로 변신했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정신없이 꿀렁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멍청이’라는 키워드가 연상되어 혼자 피식 웃었다. (얘들아 미안.)
그런데 ‘아이들은 과연 그 뜻을 알고 부르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5교시 시작 전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오늘 음악방송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노래가 뭐야?”
“‘멍청이’요.”
“왜 그 노래가 기억에 남았어?”
“그 노래 엄청 신나요.”
“그 노래 우리 엄마가 엄청 좋아해요. 매일 들어요.”
“그런데 그 노래에서 누굴 멍청이라고 하는 것일까?”
“몰라요.”
아이들에게 가사를 보여주었다.
너는 멍청이.
나밖에 모르는 사나이.
가녀린 심청이.
한 번씩 주위를 둘러봐.
너는 아파도 모르고 있잖아.
(중략)
주는 게 많아 근데 왜 너만 불행해질까
나를 위해서만 숨을 쉬니까
너무 외로워 보여
너는 멍청이
“여기서 ‘나밖에 모르는 사나이’는 누굴까?”
“아빠?”
남자친구라는 답이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다. 하지만 아빠라는 단어가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1학년 아이들에게는 아빠를 빗대어 말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아이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래 아빠 일 수 있겠다. 그러면 아빠는 왜 아파도 모르고 있을까?”
“우리만 생각하니까!”
“맞아. 아빠는 본인보다 자녀들 생각할 때가 더 많아.”
“그래서 멍청이라고 한 거예요?"
“그렇지.”
“그런데 선생님 우리 아빠는 진짜 멍청이가 아니에요. 우리 아빠는 엄청 똑똑해요.”
“맞아. 그런데 왜 ‘멍청이’라고 했을까?”
“너무 고마워서?”
“너무 미안해서?”
“맞아. 너희들 눈치 빠르다! 어려운 내용인데 이해를 잘 했네!”
몇 명의 아이들은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몇 명은 여전히 알쏭달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이 아직은 이 가사를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자라면서 이 가사의 뜻을 더 깊이 알 수 있게 될 거야. 오늘 다 이해하지 않아도 된단다.”
“선생님, 멍청이 또 틀어주세요.”
“이제 공부해야지”
“춤추고 싶어요.”
“그럼 춤추고 공부 열심하기다?”
“네.”
아이들의 꿀렁거림을 또 보고 싶었기에 고민 없이 바로 노래를 재생했다. 자유로운 춤사위로 각자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아이들을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노래가 한참 재생되고 나서야 벌어진 내 입을 인지할 수 있었다.(곧 침 흘릴 지경.)
넋 놓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모습을 지나가던 누가 보았다면 이렇게 말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쯔윗 쯔윗 쯔윗 쯔윗! 멍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