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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별 Oct 17. 2022

노인을 위한 열차는 없다

노인뿐일까? 열차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친구가 급히 본가에 가야 한다고 했다. 주말이라 기차표는 이미 매진이랬다.

“그럼 어떡해?”

“괜찮아. 밤에 취소표 나와. 앱으로 그때 사면 돼.”


다행이다 싶으면서 순간 궁금했다. 앱으로 못 사는 사람들은? 요즘엔 모바일로 쇼핑을 못하면 기차 타기도 힘들겠구나.





아니나 달라. 얼마 전 무궁화호를 탔던 다른 지인이 열차 안의 풍경을 전해주었다.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들은 거의 젊은 사람들이고, 일흔은 넘어 보이는 어르신들이 서서 가더라고. 좌석이 정해진 티켓은 앱에서 다 팔리니까 역에 와서야 표를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남은 입석을 겨우 구해 타시는 거다. 그거라도 예매하려고 서둘러 나오셨겠지. 역에서 또 헤매거나, 한참 기다리셨을 거고. 그러고선 나였어도 힘들 몇 시간을 연차 안에 서서 버티셔야 한다니.





이것뿐일까. 낮시간에 지하철을 타면 그때마다 길을 묻는 어르신들을 만난다. 1호선을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을지로에 갈 건데 여기서 타면 방향이 맞는지. 그들이 젊을 적에 수도권 지하철은 1,2,3,4호선이 전부였으나 지금 코레일 노선도에는 23개의 선들이 교차한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틈에서 노인들은 통로마다 대여섯 개씩 달린 표지판을 두리번거리거나 스크린도어의 노선도를 손가락으로 더듬는다. 새로운 곳에 가야 할 때 나는 지도앱에 행선지를 입력하고 가장 빠른 환승역은 물론, 이동하기 편한 열차칸까지 알아내지만 어제 길을 묻던 할머니는 용산역 한가운데서 경의중앙선 개찰구 방향을 찾는 동안에도 몇 대의 열차를 그냥 보내시겠지.





방법이 없지 않을 것이다. 승객의 이용패턴을 분석해서 노년층의 이용률이 높은 기차는 일정칸을 현장 발매 전용으로 지정한다거나. 혼잡도가 높은 역에는 안내할 인력을 배치한다거나. 하지만 ‘모바일‘하지 못한 세대를 위한 변화와 자원은 우선순위가 아니라, 노인을 위한 열차는 없다.

이 사회에서 열차와 같은 인프라, 아니 기본권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노인뿐일까? 전체 택시 중에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택시의 비율이 도쿄는 31.8%, 서울은? 0.98%라고 한다. 데이터 센터의 화재로 온 나라가 혼란했던 지난 주말엔 SPC 공장에서 20대 근로자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이런 뉴스는 일 년에 몇 번씩 반복된다. 내가 스마트폰을 몇 번 터치하면 끝낼 일을 엄두도 못 내는 사람들이 있고, 가벼운 외출을 며칠 전부터 준비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첨단 IT강국에서 기계들 사이에 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세상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뒤에 남겨지는 사람들은 늘어나는 느낌일까.


다양한 소수자들. 기후위기가 이미 삶의 위기인 농민과 어민들. 온갖 발전소를 떠안는 지역의 주민들. 누군가 희생되어야 기사화되는 현장의 노동자들. 임신 출산 육아로 일터에서 내몰리는 여성들. 곳곳의 사각지대에 남겨진 사람들… 모두 열차 앞에서 헤매는 노인들이다. 방법을 모르거나 그럴 시간조차 없어서 꼭 필요한 제도적 개선을 요구하지 못하는 이들은 곳곳에 너무 많지만 이 시대의 정책은, 특히나 불특정 대중을 위한 정책은 온라인 뉴스 댓글창이나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여론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선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조용히 힘들고, 각자 고생하는 사람들은 계속 그렇게 소외된다.





나는 한국이 그 자체로 열차 같다. 다음 역, 또 다음 역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열차. 거기에 수많은 우리는 객실 안이 아닌 지붕 위에 매달려 있는 것만 같다. 그 속도를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은 열차와 함께 달릴 수 있지만 붙들 힘이 없는 사람들은 의지할 곳이 없다. 취약계층은 열차의 무관심과 무관용을 매 순간 실감하고, 취약하지 않은 계층은 취약해질 것을 매 순간 두려워한다. 이 나라가 그리 걱정하는 낮은 출산율도 노인을 비롯한 약자를 돌아보지 않는 정책, 이 열차 같은 사회 분위기와 결국 닿아있다. 내 두 팔의 힘이 부치면 굴러 떨어질 열차에 누가 자진해서 아이까지 안고 매달리려 할까?





노인을 위하지 않는 열차는 달리고 달려 어딘가에 가닿겠지만, 그곳이 지금 여기보다 휘황찬란하게 좋은 곳은 아닐 것이다. 그 열차에선 누구도 마음껏 행복하거나, 평안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남아있는 사람조차 얼마 없을지 모른다. 발전성보다 지속가능성이 전지구적으로 중요해진 지금, 우리가 더 힘을 실어야 할 것은 효율과 경쟁보다 돌봄과 안전망이 아닐까. 더 나은 무언가를 시도할 자유도 거기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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