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가 잠 못 들던 꼬꼬마 직장인은 작은 것들을 주워 모았지
“XX, 운전 X같이 하네!!!”
버스 안에 쌍욕이 울렸다.
모처럼 야근 없이 퇴근한 저녁이었다. 회사 앞에서 집에 가는 광역버스를 탔더니, 기사님이 활짝 웃으며 인사하셨다.
“안녕하세요, 조심히 타세요”
귀한 기사님이네. 좋은 저녁이야. 생각하며 자리에 앉자마자 까무룩 잠이 들었다. 버스는 기사님의 웃는 얼굴처럼 부드럽게 달렸다. 정류장에 멈출 때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기사님의 인사가 기분 좋게 울렸다. 단잠이 깨기 시작한 건 어떤 남자가 탔을 때부터였다.
“XX. 서있기 XX 힘드네 XX”
낮술을 했나. 서서 버티기 힘든 건 취기 때문인 것 같은데. 그닥 흔들리지도 않는 버스에서. 쉴 새 없이 들리는 남자의 뭉개진 욕설에 불쾌해진 내 잠도 달아나기 시작했다. 혼잣말처럼 웅얼대던 남자의 분노는 버스를 모는 기사님을 향해 그라데이션으로 높아졌다.
“너!!! 가만 안 둬 내가 XX!!!”
하차벨을 누른 남자가 뭔가 집어 들더니 기사님께 달려가 삿대질을 했다.
“운전 진짜 X같이 하네! XX, 너 내가 고발할 거야! 두고 봐!!!”
남자가 들고 내린 것은, 뒷문에 비치된 운수회사 민원 엽서였다. 버스 안에 꽉 찼던 긴장에 비하면 나름 공적 절차를 준수하는 결말이었다. 그가 손에 쥔 게 흉기 같은 게 아니었던 것은, 내릴 때가 되니 순식간에 사라진 것은 다행이었지만 버스에는 욕설을 뒤집어쓴 상냥한 기사님이 남았다. 운전하는 어깨만 봐도 표정을 알 것 같았다.
“저기… 기사님,”
내리기 직전까지 망설이다가, 나는 남자와 같은 엽서를 뽑아 들었다. 운전석 뒤에 가서 기사님을 불렀다.
“기사님이 운전 잘해주신 거 저희가 다 알아요. 저도 이거 써서 보낼게요. 기사님 잘못 아니라구. 잘 들어가세요.”
기사님이 그런 어깨인 채로 이 저녁을 보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진심으로 일하던 사람이 사고 같은 일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불행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지 않았으면. 누구든 조금 덜 아팠으면. 거기에 내가 보탬이 되었으면.
오랜 시간 그런 마음을 붙들고 살았다. 당시의 나는 무방비 상태로 직장에 던져진 이십 대 초반이었고, 밤마다 울다가 잠 못 들던 막내 사원이었다. 일 때문에 그런 거라면 나았을 텐데. 그때의 나는 출근해서 “안녕하세요” 할 때부터 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혼이 났고, 밥을 조금 먹는다고 욕을 먹었고, 동기들과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면 상사 험담을 했냐고 추궁을 당했으며, 왕따를 당해 회의실에 들어가지 못했고… 굳이 더 설명할 가치는 없을 그 시간을 요약하면, 나는 2년 동안 생리가 없었다. 전쟁이 터지면 여성들의 생리가 멈춘다던데, 나는 전시의 스트레스를 안고 매일 회사를 버텼나.
평탄하기만 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었지만 사랑도 많이 받았고, 성취하는 기쁨도 제법 배웠다. 나를 향한 그 정도의 악의와, 매 순간의 좌절감은 태어나서 처음 겪어 봤다. 안 그래도 작디작아진 광고 초짜는 나날이 너덜너덜해졌다.
그때부터였다. 작은 도움이 필요한 구석구석을 놓치지 않게 된 것은. 내가 아주 작은 마음을 쓰면 괜찮을 수 있는 이들을 지나치지 못하게 된 것은. 살면서 이렇게 힘들고 아플 수도 있구나, 속성 과정으로 깨달은 나는 누군가 몸이든 마음이든 고생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게 되었다. 언제나 뭔가 잘해내는 것만 생각하고, 다른 감정에 속없이 둔감하던 나에게는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수준의 변화였다. 나는 취객을 만난 버스기사님을 돕고, 잠든 구둣방 아저씨가 난로에 화상 입는 것을 막고, 열심이지만 서툰 카페 알바의 실수를 대신 수습하고, 기부를 시작하고… 그러고 다녔다. 아스팔트 위에서 힘들어하는 지렁이를, 퇴근길에 쪼그려 앉아 화단으로 옮겨주는 동네의 수상한 직장인이 나였다.(이건 지금도 역시)
그럴수록 내가 행복해졌다. 다른 이의 불행을 덜어주면 나의 불행도 덩달아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내가 받고 싶었던 온기와 너그러움을 남에게 대신 주었고, 그것으로 위로받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내가 뿌린 작은 마음들은 어디에선가 꼭 돌려받았다. 심지어 야근하고 택시를 타도 길 위의 선인 같은 기사님들만 만났다. 기사님들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내가 피곤할까 봐 먼 길을 서둘러 달렸다. 마치 누가 보내준 사람들처럼.
아마 그날 버스의 그 남자는 엽서를 쓰지 않았을 거다. 나는 썼다. 무례한 취객 앞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고 승객의 안전을 지킨 기사님에 대한 칭찬 엽서를 한 장 가득 꾹꾹 눌러서. 내가 말을 걸었을 때 기사님의 눈빛을 기억하면서.
그렇게 절실하게 버텨낸 회사는 훗날 미련 없이 떠났다. 나는 그 2년 뒤로도 수없이 다른 시간을 겪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이제 매일 밤 울지 않고, 막내 사원처럼 인정받으려 애쓰지 않고, 어리지 않지만, 여전히 작은 마음들에 기대어 살아간다. 작은 것들은 오래오래 힘이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