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걸로 아이유랑 닮고 싶지 않았는데
그것이 돌아왔다. 이관개방증. 아이유가 최근의 콘서트에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토로하게 만들었던 병.
나에겐 2011년에 처음 와서 지난 12년간 지긋지긋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대체 무슨 병이냐고? 검색해보면 설명은 이러하다.
“… 가장 흔한 증상은 자가강청과 이충만감으로 자신의 호흡음이나 목소리가 울려 들리며, 이는 열려 있는 이관을 통해 공기와 소리가 중이강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자가강청은 자신의 목소리나 호흡음이 들리는 것으로 마치 큰 통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증상이 하루 종일, 수 시간 동안 반복적으로 생길 경우 환자에 따라서는 우울증 등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로 발전될 수 있다. (중략) 바람소리 같은 호흡음이 계속 들릴 수 있으며, 귀가 막힌 듯한 증상, 심한 경우 고막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쉽게 얘기하면 높은 산에 오른 것처럼, 비행기가 이륙할 때처럼, 물 속에 머리를 담근 것처럼 귀가 먹먹해져서 내 숨소리와 말소리가 귀에 계속 울리는 거다. 바깥 소리를 잘 듣는 것도 쉽지 않고, 내 목소리가 어떻게 나가는 지도 알 수 없다. 내 경우에는 체력이 떨어질 때 간간이 나타났고, 눕거나 고개를 숙이면 사라지곤 했는데 이번엔 좀 심각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증상이 시작돼서 밤에 누워 잠들 때까지 계속되었다. 하루 종일 내 숨소리를 최고 데시벨로 듣고 있자니(심지어 누군가와 대화할 땐 듣기 위해 숨을 참아야…)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 아이들과 얘기할 때 높아지는 내 목소리에 귀가 찢어질 듯이 울려서 놀라 휘청한 적도 여러 번. 모든 감각이 쉴 새 없이 내 귀에 시달리니 위의 증상 설명처럼 정말 우울증이 올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런 시간을 극복하는 법을. 방법은 하나뿐이다. 날 행복하게 하는, 혹은 마음을 달래는 작디작고 자잘한 것들을 하루에 빼곡하게 깔아놓는 것.
우선 맛있는 것을 먹는다. 아침엔 블루베리 베이글을 반 갈라서 발뮤다 토스터에 따끈따끈 구운 다음, 윗면에 크림치즈를 펴바르고 딸기잼을 살짝 얹는다. 내가 먼 옛날 스타벅스에서 알바할 때 배우고 반해버린 조합이다. 여기에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를 곁들이면 최고의 ‘카당지(카페인+당+지방. 탄단지의 흑화 버전?)’ 메뉴가 완성되지만 집에서는 콜드브루 커피에 아기 주먹만 한 곰돌이 얼음을 더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점심은 김치볶음밥이다. 나는 김치볶음밥을 아주 좋아해서 냉동실에 새별표 김볶밀키트를 항상 준비해둔다. 잘 익은 김치를 다져서 베이컨, 양파와 함께 파기름에 달달 볶은 다음(설탕도 살짝 넣어야 한다!) 얼려둔 게 전부지만 마음의 비상시에 훌륭하게 쓰인다. 밥과 함께 팬에 볶다가 아래는 빠삭하게 익히고 위에는 체다와 모짜렐라 치즈를 살살 녹이면…아아아. 게다가 이 김치볶음밥은 팬째로 먹는 것이 더 맛있어서, 지친 날 설거지까지 덜어주는 완벽한 메뉴인 것이다.
틈틈이 좋은 것도 들어야 한다. 걸을 때는 헤드폰으로(커널형 에어팟이 내 귀에 최악이라 바꾸었다), 집에 있을 때는 사운드바에 연결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무한반복 재생한다. 애정하는, 결이 튀지 않는 곡들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재생목록이다. 귀에 울리는 내 숨소리가 견디기 힘들 때 사이사이 들리는 그 노래들에 의지한다.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로 시작해서 이소라의 <Track 8>로 끝나는 어둠의(?) 리스트지만, 경험상 이럴 때는 음악이 마음의 바닥을 대신 쳐주는 게 위안이 된다.
그리고 귀여운 것을 본다. 마음이 꼬물꼬물해지는 키티 크라우더의 그림책. 요즘 푹 빠진 순끼의 웹툰 <세기말 풋사과 보습학원>. 무해한 웃음의 유튜브. 재재의 <문명특급>, 영지의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 김신영이나 김호영의 활약상 모음 같은 것들… 빼곡한 일정 사이사이 토막토막 찾아본다. 열심히 웃는다. 억지로라도 웃는 것은 마음에 굉장한 운동이니까.
귀때문에 우울하지 않으려고 이렇게 애쓸 일인가. 현타가 스멀스멀 앞발을 내밀기도 하지만… 아직(or 계속) 손이 많이 가는 어린아이들이 있고, 내가 낙오되면 혼자 온몸으로 버텨야 하는 남편이 있고, 계약한 일들과 만들고 싶은 그림책이 있고, 코로나에 확진되신, 내가 챙겨야 할 부모님이 있는 이번 주의 나는 우울에 빠져선 안된다. 내가 나를 위해 찾아놓고 심어놓은 작은 것들로 기운을 내야 한다. 내가 뭘 견디고 있는지 잊게 하고 순간순간 행복하게 하는,
작은 것들은 힘이 세다. 나도 그럴 것이다.
p.s
<마음>, <이름에게>, <아이와 나의 바다>…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아이유의 지분이 크다. 나의 모든 소리가 귀에 공명하는 상태로 마이크에 대고 노래하는 것은 얼마나 힘이 들까. 나에게도 그에게도 소리의 평화가 어서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