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틀맘의 인터뷰] 능력을 발휘하는 ADHD 진단받은 사람들 #1
이미소 대표를 처음 본 것은 세바시 강연 동영상(https://youtu.be/rPQEMqR9CXc)을 통해서였다. 춘천 감자빵 대표가 저렇게 젊고 활기찬 사람이었구나. 한달 전 주문해서 먹어 본 감자빵은 겉 모양도 감자 그대로이고 속도 으깬 감자가 가득 들어있어 말 그대로 순도 100%의 감자빵이었다. 어떤 센스있는 사람이 흙이 살짝 묻은 감자 모양을 그대로 빵으로 만들었나 피식 웃음이 나오며 궁금했었는데 저 사람이었구나.
연매출 100억을 넘어 2022년 200억을 달성한 춘천 감자빵을 생산하는 주식회사 밭 대표라니 젊은 CEO가 참 대단하다 감탄한 몇일 후였다. 브런치 brunch에 글을 쓰려고 들어갔다가 ADHD 키워드로 검색했더니 '나에겐 축복이 된 ADHD'라는 브런치북이 눈에 띄였다. ADHD가 축복이라니?!?!? 터틀이와 좌충우돌하는 나의 고생스런 일상이 떠올라 언뜻 반감이 들면서도, 터틀이의 단점을 '수퍼파워'로 발전시킬 수 없을까 희망을 걸어보는 마음에 얼른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에겐 축복이 된 ADHD' 브런치북 작가 이름이 '미소/CEO', 작가 소개엔 '<오늘도 매진되었습니다> 저자, 외향형 ADHD, 사업하는 철학가'라고 나와 있었다. 설마 감자빵 대표가 ADHD? 눈이 번쩍 뜨여 단숨에 읽어 내린 브런치북은 가히 혁명적(?)인 ADHD에 대한 해석과 통찰을 보여주었다.
나는 ADHD가 지금은 질병으로 취급되지만, 10년뒤에는 '미래인류'로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친실행력, 미친몰입력, 미친단순함, 미친상상력을 가진 이 미친인간들이 미래를 끌어갈 수 있는 '미래인류'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이미소 대표 브런치북 '나에겐 축복인 된 ADHD')
이미소 대표는 성인이 된 2021년 ADHD 진단을 받았는데 이제껏 혼란스럽던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산만하고 준비물을 자주 잊는 경향이 있었고, 좋아하는 과목은 1등을 하는 반면 싫어하는 과목은 꼴찌를 하는 등 성적 편차가 심한 학생 시절을 보냈으며, 친구들에게 왕따 당하기도 하면서 본인에 대해 성찰하고 노력했으나 원래 성격인가보다 하고 살았다고 한다.
신발주머니, 우산, 숙제를 계속 잃어버리고 싫어하는 연산 연습은 아무리 타이르고 혼내도 절대 못하는 터틀이가 떠오르면서, 학생 시절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멋진 사업가가 된 이미소 대표를 만나 성장 스토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터틀이를 키우면서 관련 책을 섭렵하고 유튜브며 SNS 자료를 찾아봐도 ADHD가 스펙트럼 장애인 만큼 증상이나 문제들이 너무 다양하고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방법들은 단편적이거나 터틀이의 상황에 맞지 않아 공허하게 들리는 경우가 많았다. 차라리 ADHD 진단받은 성인들을 실제로 만나서 어린 시절부터 어떤 환경이나 주변 사람들이 도움이 되었는지, 어떤 진로를 통해 어떤 일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혹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구체적이고 장기간에 걸친 인생 경로를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읽었던 책과 자료에서 찾은 ADHD 진단받은 성인, 주로 유명인 사례들은 단편적인 일화나 성공적인 결과만 간략히 적혀 있고 그나마 대부분 해외 사례여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무작정 이미소 대표에게 이멜과 SNS로 인터뷰 요청을 했다.
ADHD 진단을 받은 아들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미소 작가님(이미소 대표)의 "나에겐 축복이 된 ADHD" 브런치북을 읽고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3년 전 아이가 ADD 진단을 받은 후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와 함께 좌충우돌하며 어떻게든 아이를 이해하고 길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작가님의 브런치북을 읽고 아이가 경험하는 세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미친단순함, 미친상상력, 미친몰입력을 가진 미래 인류"라는 표현이 정말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아들을 키우면서 ADHD를 가진 다른 사람들의 실제 스토리, 특히 관심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이야기를 절실히 듣고 싶었는데 작가님의 스토리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감자빵 대표님이라니!)
1시간 정도 인터뷰에 시간을 내주신다면 부모로서 아이의 미친상상력과 미친몰입력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기 위해서 작가님께 궁금한 몇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신다면 그 내용을 정리하여 저와 같이 ADHD를 가진 아이를 키우며 안내판 없는 길을 가고 있는 부모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낸 메시지에 설마 답장이 올까 하는 우려와 달리 이미소 대표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다음은 이미소 대표와 일문일답.
1. 브런치북 '나에겐 축복이 된 ADHD'에서 ADHD 최악의 단점이 최고의 장점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도 터틀이를 키우면서 '좋아하는 일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그 과몰입 상태가 꼭 나쁜 것은 아니지 않나. 보통 사람들은 범접하기 힘든 수준인데. 다른 사람들의 리듬과는 다르지만 남들이 가지지 못한 수퍼파워가 될 수는 없을까' 생각했는데 이미소 대표님은 그것을 실현하셨군요. ADHD를 가진 사람들의 매력은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정직할 수 밖에 없어요.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이야기해 버리기 때문에 거짓말을 꾸며낼 시간도 치밀한 계획도 세울 수 없어서 정말 정직합니다. ㅎㅎㅎ 그리고 브런치북에 썼던 대로 ADHD를 가진 사람들은 보통 한가지에 꽂히면 끝까지 가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단점으로 꼽히는 충동성이 높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데 유리하기도 하죠. 제가 '21살에 홀로 호주에 간 것도, 디자인과이지만 경영학을 공부한 것도, 나아가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충동적인 ADHD 성향 덕분'이었습니다.
2. 본인이 성장하는데 가장 도움을 많이 주었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부모나 가족의 어떤 점이 본인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혹은 본인을 힘들게 했나요?
> 단연 부모님이 제가 성장하는데 가장 큰 도움과 영향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따돌림을 당하거나 학교에서 꼴찌를 해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버팀목이었어요. 자녀교육에서 말하는 방목형 부모 중에 자녀를 믿어주면서 방목하는 사랑형 방목이 있고 이에 반해 그냥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는 방목이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사랑형 방목(코칭형 리더쉽)을 보여주셨던 장본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믿어주되 언제든 언덕이 되어주셔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저희집에서 아버지는 굉장히 엄하시고 완벽한 권위를 가지고 있고, 어머니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편입니다. 아버지는 저희를 믿고 일일이 간섭하지 않으셨지만 우리집의 엄격한 기준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부모에게 버릇없이 굴거나 예의없는 행동은 사춘기라도 절대 허용하지 않고 엄청나게 혼났죠. 대신 게임을 계속하거나 학교 성적을 꼴찌를 받아오거나 하는 일들은 본인이 알아서 해야한다며 완전히 맡기셨어요. 아버지가 혼낼 때 정말 무섭게 혼내고 가끔 매도 드셨지만 제가 생각해도 납득이 가는 이유로 혼났기 때문에 불만은 없었어요. 제가 물건을 잘 잃어버려기 때문에 잘 챙기라고 하셨는데 한번은 제가 스마트폰을 잃어버렸어요. 비싼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고 혼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아버지는 의외로 "미소 네가 제일 속상하겠지. 앞으로 또 물건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해라"는 말씀 뿐이었어요. 그런데 얼마 후 제가 가디건을 또 잃어버렸어요. 오랫동안 계속 입은 헌 옷이어서 잃어버려도 그리 아깝지 않은 것이었는데 이번엔 아버지가 정말 크게 혼내셨죠. 벌벌 떨며 혼나면서도 '내가 또 부주의하게 물건을 잃어버리다니 잘못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반대로 헌 옷을 잃어버렸을 때 혼나지 않고 비싼 스마트폰을 잃어버렸을 때 크게 혼났다면 '부모님은 나보다 스마트폰이 중요하구나' 반감이 들었을 것 같아요. 어머니는 우리 딸이 제일 이쁘네 하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시는 스타일이었고, 학원도 제가 다니고 싶다고 하면 등록해 주고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 그렇게 하라고 하셔서 언제든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었어요.
학생 시절 만난 선생님들의 경우 크게 기억이 남는 분은 없어요. 오히려 제가 왕따 당할 때 모르는 척 했던 몇몇 선생님들에게 상처받은 기억이 있죠. 부모님 이외에 도움이 되었던 조언을 해주었던 어른은 고등학교 시절 부정 교합 때문에 찾아간 치과 의사 선생님이었어요. 중고등학교 시절 부정 교합으로 심하게 왕따 당하고 죽고 싶다고 할만큼 힘들었거든요. 부정 교합 수술을 하겠다고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보더니 '20세가 된 후 오면 책임 지고 수술을 잘해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지금은 성장기라 부정 교합 수술할 시기가 아니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열심히 미래를 위해 투자할 때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이야기가 저에게 동기 부여가 크게 되었어요. 나도 목표를 가지고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한 후 미친 듯이 공부해서 성적을 많이 올리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습니다.
3.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서 본인이 가진 강점을 잘 발휘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환경이나 조건에서 본인이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단점이 두드러지는 환경이나 조건이 있습니까?
>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줄 수 있는 환경, 내가 하는만큼 인정받고 나의 성향을 하나의 성향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 곳에서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반대로 선입견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거나 눈치를 봐야하는 곳에서는 불안해서 일을 잘 할 수 없었어요. 21세에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갔는데 호주에서 고생은 했지만 너무 만족스러운 생활을 했습니다. 외국에 나가니 나를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백지에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어요. 의사소통하는 것도 현지인들이 대부분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저도 원하는 바나 필요한 것을 바로바로 표현하는 성향이기 때문에 마음이 편했어요. 가끔 제가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살면 어떨까 상상해 봅니다. 저에게는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이민자의 나라가 이상적인 곳으로 생각됩니다.
4. ADHD 진단받은 사람을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보통 ADHD를 진단받았다고 하면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성공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인식합니다. ADHD의 단점으로 인식되는 성향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죠. 저는 ADHD 진단받은 사람들이 하나의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인식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휠체어를 사용하시는 분이나 귀가 안들리는 사람과 같이 하나의 장애(disorder)의 종류로 인식하는 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로 인식하면 ADHD를 가진 사람들이 관심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학습 환경이나 근무 환경을 배려하는 정책이 가능하겠죠. ADHD에 대한 국민의식 수준이 성장하면 ADHD는 하나의 성향 차이일 뿐 열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을 확산시키고 싶습니다.
저희 회사(주식회사 밭)에도 ADHD를 진단받았거나 ADHD로 추측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저는 이들의 열정과 창의성, 꽂히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향이 회사를 성장시키는 하나의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함께 만들어 내는 시너지도 크구요. 새로운 프로젝트,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방법을 시도할 때 ADHD를 가진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할 만큼 뛰어납니다.
5. 본인과 비슷한 아이를 키운다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교육하고 싶으신가요?
> 일년 전 ADHD를 진단받자마자부터 고민했던 부분입니다. 제가 아이를 가진다면 ADHD 성향을 가질 확률이 높기 때문에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저희 부모님처럼 사랑형 방목으로 교육할 계획입니다.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믿고 맡기려구요. 중요한 기본 가치에 대해서는 기준을 정해주고 일관되게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쉽지 않겠지만 이렇게 본인이 스스로 동기를 찾고 결정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 ADHD 성향을 가진 아이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세한 것까지 간섭하는 것이 이런 성향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통하지도 않고 이들이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본인이 스스로 깨닫는 과정이 필요하니까요.
Your weakness will never develop while your strengths will develop infinitely.
(Don Clifton, advice for his son,
Jim Clifton who has ADHD and is the CEO of Gallup)
인터뷰를 마치고 환하게 웃으며 일어서는 이미소 대표에게서 '미래 인류'의 모습을 본 것 같다.
* 이미소 대표와 인터뷰는 2022년 7월 21일 (4:00~5:15 pm) 대면으로 진행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