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싱지원 Jan 27. 2023

그대로

변하지 않는 것들

 일상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째. 결혼식을 끝내고 10여 일 간의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다. 회사에는 다행히(?) 책상이 남아있고, 짝지는 여전히 주말에만 만날 수 있고... 매일같이 출석체크 해 주시는 라디오 청취자들도, 뉴스 스튜디오의 조명도 전부 그대로다. 그나마 달라진 거라면 급격히 떨어진 기온과 필라테스 수업의 수강생 구성, 나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 정도랄까. 매일 사랑을 속삭이고 걱정 없이 먹고 자던 신혼여행도 물론 즐거웠지만 긴 시간 자리를 비운 뒤에도 큰 변화 없는 그대로인 일상에 안도감이 드는 이유는 무얼까.


  설 연휴 당직을 자처했다. 졸지에 결혼 이후 처음 맞는 명절부터 일한다고 유난 떠는 며느리가 되었지만 자리를 비운동안 열심히 그 빈자리를 메꾸어준 동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우리는 늘 그렇듯 명절에도 가족들과 함께하기 어려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가 입사 이후 지금껏 그래왔으니 아마도 나보다 오래 회사 생활을 한 선배들은 더 오랜 시간, 남들에겐 당연한 명절 일상을 빼앗겨왔겠지.

 이유가 무엇이 됐건 남들 다 쉬는 때 일하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라 낙담해 있었는데, 불쑥 엄마 아빠가 창원에 오겠다고 했다. 이곳에 터를 잡은 이후 두 번째 방문이다.


 첫 방문은 3년 반 전 창원에 발령받고 나서였고, 그 사이 나는 원룸에서 30년도 더 된 아파트지만 방 세 개짜리로 거처를 넓혔다. 이곳저곳을 닿게 해 준 고마운 빨간색 차도 생겼으니 이제 근교 여행도 시켜드릴 수 있겠다 싶어 흔쾌히 오시라고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건대 내심 혼자서도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두 분의 방문이 내 의도와 목적과는 정반대로 흘러갔지만 말이다.

  엄마는 집 문을 열자마자 이렇게 쑥쑥한 집에서 어떻게 지내냐며 베란다부터 화장실까지 빛과 광을 내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고 아빠는 오래돼 제 기능을 못하는 것들을 고치느라 애를 먹었다. 우두커니 그 뒷모습을 지켜보는데 환갑의 부모에게 서른의 딸은 여전히 갓난아이와 다름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시간이 흘러도 쉽게 재구성되지 않는 관계인 것 같다.

 

  부모가 둘에서 넷이 되었다. 남편이 생겼고 머지않은 미래에 엄마가 되겠지. 주어진 역할이 배로 늘었다는 말이다. 부여된 역할에 최선을 다하리란 사실은 불 보듯 뻔하지만 적어도 역할 놀이에 심취해 내가 진짜 무엇을 사랑하고, 무얼 할 때 기쁜지, 마음속 가장 깊이 자리하고 있는 진짜 나의 모습만큼은 잃어버리지 않기로 다짐한다.

 

 과분하게 행복한 나날들이 지나간다. 많은 이들의 진심 어린 축하를 받으며 새 가정을 꾸리고 사랑하는 이와 미래를 그려보는 날들이 내 인생에 허락되다니. 이렇게 행복해나 되나? 싶고 적어도 내 인생엔 흐름이 있어서 행복 다음엔 불행인데 이렇게 행복하면 다음은 불행이 기다리고 있겠지, 하는 불안감이 불쑥 덮치는 날이 많다. 그래도 그럴 때마다 ‘옆에 내가 있잖아’라고 말해주는 듬직한 짝지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 작은 소망이라면 하나보단 둘이 낫다는 믿음을 지킬 수 있었으면 하는 것. 그 믿음만큼은 부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주었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 : my better half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