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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미 Oct 04. 2023

내 자리를 찾아가는 일

그림책 '틈만 나면'을 읽고

길을 가다가 '어머 이런 곳에도 피어있네.' 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 있다. 정말 작은 틈, 식물들이 자라기엔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는 들풀들의 모습들을 모아 만든 따뜻한 그림책을 만났다.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인데도 그림책을 통해 자세히 들여다보니 뭉클한 마음이 든다. 내 모습이 담긴 그림책을 보며 작은 위로가 되어준 그림책 "틈만 나면"이다.


"틈만 나면 작은 틈만 나면 나는 태어날 거야."


작은 틈만 있으면 삐죽 내민 초록이들이 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가꾸지 않는데도 쑥쑥 잘 자란다. 지저분해 보이는 곳에서도 하수구 아래 답답한 곳에서도 잘만 자란다. 어디라도 틈만 있다면 활짝 핀다. 때로는 다른 식물들이 심어져 있는 화분에도 자리르 잡으면서도 나를 위한 자리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한다.


요즘 나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신랑이 재미있게 놀고 있으면 그 사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틈을 만들어 보려고 신랑한테 말을 걸어도 철저히 무시되고 소외되어 버린다. 그 순간 마음이 위축되면서 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계속 내가 이곳에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보도블록 틈보다 넓은 집에서도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지 못하는데, 들풀들은 그곳이 자기 자리인지 어떻게 생각했을까? 좁고 답답한 곳에서도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푸릇한 잎을 피워낸 풀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한동안 바라봤다.



"길고 긴 외로움도 오랜 기다림도 괜찮아, 나는. 나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길고 긴 외로움과 기다림 속에서도 괜찮다고 말하는 들풀. 자신으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괜찮다고 한다. 나는 이 외로움이 괜찮지 않다. 슬프고 서럽다. 이 자리를 떠나기 위해 일어나 보지만, 비집고 들어갈 곳이 없다는 걸 깨닫고 다시 주저 앉는다. 

불쑥 전화해 '지금 만나자'.라고 할 단짝 친구가 없다. 친정에 라도 가고 싶지만, 이런 내 모습을 보면 더 마음 아파하는 엄마 때문에 갈 수도 없다. 40년이 넘는 삶을 어떻게 살았길래 갈 곳이 한 군데도 없는 건지.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요즘이다.



"나를 위한 자리가 없으면 어때."


나를 위한 자리가 없으면 어떠냐고 당차게 말하는 꽃이 있다. 개망초를 닮은 이 들꽃은 의자 밑에서 자라다가 의자의 좁은 틈 사이를 비집고 올라와 꽃을 피웠다. 탄탄한 줄기는 쉽게 꺾일 것 같지 않다. 꽃과 잎들을 단단하게 받쳐주고 있다. 나를 탄탄하게 만들면 좁은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게 좀 쉬우려나? 그림책 속 그림을 보며 생각해 봤다. 나를 상담해 주시는 선생님은 신랑 앞에서 기죽지 말고 당당해지라고 한다. 선생님의 말을 그림 으로 그리면 내가 보고 있는 꽃의 모습일까?


보도블록 틈으로 작은 민들레 씨앗이 날아들어 온다. 작은 틈으로 새싹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관심을 가져주기는커녕 지나가는 자전거 바퀴가 그 위를 지나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뿌리를 내려 활짝 민들레 꽃으로 피어났다. 이렇게 피어난 민들레 꽃을 보니 참 대견하다. 기특하다. 민들레의 꿋꿋함에 스며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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