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래배 속에 있어. 여기는..... 울기 좋은 곳이야." (그림책 고래 옷장 속에서)
신랑이 "이혼하자."라고 말하기 몇 달 전부터 나는 아무렇지 않은 상황에서 울컥하고 터져 나오는 눈물에 당황할 때가 종종 있었다. 신랑과 다툼을 해서 냉전 중인 것도 아닌데 신랑만 생각하면 가슴에 돌덩이 하나 올려놓은 것처럼 답답했다. 겉으로 봤을 땐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우리 사이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그때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언제가부터 신랑이 하는 말이 나를 찌르기 시작했다. 신랑의 상처 주는 말들은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 숨어있다가 불쑥 튀어나와 나를 괴롭혔다. 일을 하는 도중에, 길을 걸어가는 중에 신랑이 한 말이 머릿속을 스칠 때면 어김없이 눈물이 나왔다. 회사에서, 길 위에서 울고 싶지 않았다. 그때마다 난 눈물을 참으려 노력했고 이런 게 반복되면서 가슴 부분이 뻐근하면서 아팠다. 어느 날은 두통까지 심해져 진통제를 먹는 횟수도 점점 늘어났다. 그런 순간이 반복되면서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나의 일상에서 신랑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사소한 나의 하루부터 말하지 않는 거였다. 매일 했던 회사에서 있었던 일, 읽었던 책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고민이 생길 때는 신랑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말했었다. 웃으며 장난을 걸어오는 신랑에게 차갑게 대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건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다. 우리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하는 빠른 방법이었다.
일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가족들이 다 같이 청소를 하던 날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나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차 있는 신랑의 마음이 느껴지면서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닦았다. 아이들 앞에서, 신랑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다. 울고 있는 내 모습을 감추기 위해 가방을 쌌다. 최소한의 물건만 챙긴 뒤 작년 우리 가족이 여름휴가를 갔던 통영으로 떠났다. 이번에는 오롯이 혼자였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슬픈 마음을 내버려 두고 싶었다. 괜찮다는 위로도 듣고 싶지 않았다. 마음껏 슬퍼하고 싶었다. 더 이상 눈물을 참고 싶지 않았다.
통영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7시 호텔에서 나와 걷기 시작했다. 서피랑 계단을 올라 공원 벤치에 앉았다. 발아래로 보이는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과 바다를 멍하니 내려다봤다. 주위를 둘러보고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 마음 놓고 울었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렇게 울다 눈물이 그치면 다시 길을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바다가 보이는 곳에 앉아 임재범의 '위로'를 들으며 내 마음을 적기도 하고 멍 때리다가 눈물이 흐르면 그대로 두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사흘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 탔을 땐 내 마음이 조금 단단해진 게 느껴졌다. '나답게 이 문제를 해결해 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했다. 통영에서 마음 놓고 운 일 밖에 없는데, 그 이후로 나는 가슴이 뻐근하면서 아프지 않았고 두통도 생기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6개월 정도 시간이 흘렀다. 평행선처럼 우리의 관계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달라졌다. 그동안 나는 심리상담을 받았고, 블로그 포스팅을 위해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좋아하는 정여울 작가의 글쓰기 수업에 참여했다. 그림책을 읽고 겪었던 슬픔을 글로 쓰며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이다. 그렇게 신랑과 나의 문제에 자책하던 때를 힘들게 지나왔다.
그림책을 쓴 박은경 작가는 '어떤 끝은 어떤 시작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끝에 서있다고 생각하면 암담하기만 하다. 하지만 거기서 한 발짝 더 내딛으면 다른 시작이 펼쳐진다. 신랑과 변한 관계로 인해 내 모든 게 무너져 버렸다. 폐허가 돼버린 내 마음을 바라보면 나도 끝나 버리길 바랄 때가 있었다. 관계에 집중하는 시선을 나한테 돌렸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을 하나씩 정리하고 가꿀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 이제 나는 변화된 시작을 두려워하지 말고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