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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유 Apr 30. 2023

감사할 게 없다고요?

리시케시로 오세요

감사일기를 쓰려는데 하루동안 감사한 일을 찾으려고 해도 잘 떠오르지 않아 더욱 우울했던 날이 있었다. 무기력증에 빠져있을 때는 대체로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리시케시에서는 매일, 아니 매 순간이 감사의 연속이다.


1. 샤워할 수 있다니...

내가 머무는 아쉬람(요가원)은 종종 물이 끊긴다. 물탱크에 물이 없어서인지 물 절약을 위해 물을 끄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물이 자주 끊긴다. 특히 많은 수련생들이 샤워를 하고 난 늦은 저녁에는 거의 필연적이다. 나가서 외식을 하고 들어왔거나, 지쳐서 잠들었다가 뒤늦게 날이면 샤워 도중에 물이 끊기는 건 당연지.. ^^


플라스틱 바케스에 물을 담아놓고 컵으로 물을 떠서 샤워하기도 하고, 떠놓은 물 마저 없어서 정수기 물로 간단하게 세수와 양치만 하고 잔 적도 있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과 거리가 생기니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2. 역시 몸이 고되야..

불평불만을 단박에 날려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몸이 고되면 된다. 고통스러운 자세로 오랜 시간 버티고 나면 편안한 자세로 돌아온 순간 천국이 된다. 무기력하거나 우울할 때는 침대에 누워있어도 계속 지치고,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는데,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힘든 자세도 더 힘든 자세와 붙으면 그 자체로 휴식이 된다. 다운독 자세가 가장 좋은 예시다. 다운독을 제대로 하면 호흡 다섯 번만으로도 땀이 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하이 플랭크를 30초 정도하고 나면 다운독은 꿀맛 같은 휴식포즈가 된다.


요가의 묘미는 사바사나(송장자세)다. 모든 아사나 동작들이 끝난 후, 몇 분 간 유지하는 사바사나자세는 그야말로 천국이다. 온전한 휴식을 취하려면 고통이 선행되어야 한다. 고통이 없이 편안함만 길어지면 편안한 상태 안에서 고통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지금 무언가 불만족스럽거나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침대에서 등을 떼고 일어나 그대로 몸을 뒤집어 플랭크를 30초만 버텨보시길. 그럼 방금 전 무기력했던 이는 온데간데없고 황홀한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는 이만 남아 있을 것이다.


3. 불어오는 바람

리시케시는 낮에 정말 이글거리게 뜨겁다. 그야말로 정수리가 벗겨질 것 같다. 그런 동네에서 강도 높은 요가 동작들을 하면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코끝에 땀방울이 맺히고, 그 땀방울이 매트로 떨어지는 장면을 직관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소중하고 달콤할 수가 없다. 늘 맞는 바람일 텐데, 땀으로 흠뻑 젖은 몸에 불어오니 황홀경이다.


요가 아사나 중에 만나는 바람은 인사와 같다. 근육의 감각에 집중하고 있던 나에게 피부의 촉감을 느끼게 해 주고, 요가 동작을 하고 있는 나와 분리되어 관찰할 수 있게 도와준다.


4. 고요한 적막

혼자 있을 때면 종종 적막이 싫어서 노래를 틀어두거나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곤 했다. 하지만 리시케시에서는 적막이 아주 귀하다. 물가가 저렴한 인도에서 요가원 사업은  엄청난 수입원이다. 그래서인지 100미터에 한 건물씩은 공사를 하고 있다. 새로운 요가원 건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지어지고 있다. 덕분에 리시케시에는 공사 소음이 끊이질 않는다. 한국과 달리 여기의 공사는 밤낮이 없다.


밥을 먹을 때에도, 요가 수련을 할 때에도, 자려고 누워있을 때에도 공사 소음이 이어진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건 공사 소음뿐이 아니다. 오토바이 소리, 클락션 소리, 개 짖는 소리, 소 울음소리, 북 치는 소리 등 아주 다채롭다. 어느 날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고 나타나더니 클락션을 끊임없이 울려댔다. 나중에 전말을 알고 보니 한 남자가 여자친구와 싸운 건지, 여자친구가 나올 때까지 굉음을 내면서 기다린 것이었다. 미친놈..


이런 덕분에 밤잠 설친 날이 부지기수다. 공사소음과 오토바이 소음이 없으면 개들이 난리다. 밤에 파이트클럽이라도 여는지 개떼들이 짖어대며 싸우는 통에 잠에 들 수가 없다. 이런 난리통에서 한 달을 지내니 웬만한 소음은 들리지도 않는다. 전에는 드릴소리 같은 아빠 코골이 소리에 잠이 깼는데, 이제는 진짜 드릴 소리가 들려도 깨지 않는다. 웃긴 일이다.


지금은 아침 8시인데, 갑자기 북소리가 들린다. 찐이다. 어디선가 파티가 열린 걸까? 자던 중에 들었으면 인상을 찌푸리며 깨어났을지도 모른다. 잠에 깨어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이렇게 인도는 감사한 것들 투성이다. 길거리에 소똥 개똥 고양이똥이 즐비하지만 그 똥들을 피해 맨바닥을 밟으며 걸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물론 그 바닥도 언젠가는 똥으로 칠갑했던 바닥이겠지만. 인도인들은 돌아버린  운전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교통사고 없이 무사한 것도 기적 같다.


매일 아침 "살았다!" 하며 일어난다. 살았다! 하고 외치고 나면 엔간한 문제들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살았다고 외치는 순간, 내가 지금 아프지 않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다. 예민한 감각으로 불평거리를 찾는 걸 멈추고, 지금 순간에 만족할 수 있다. 지금 내 몸의 편안한 구석을 찾아서 만끽할 수 있다.


감사할게 아직도 없다면, 외쳐보자.

살았다!


날마다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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