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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일출 Aug 20. 2023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라

나의 글쓰기 태도

물리 선생님이 정병산 정상에 오른 모습을 단톡방에 올렸다. 사진을 보자마자 이 폭염에 어떻게 등산할 생각을 했지?’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다가 이틀에 한 번꼴로 꾸준히 산행하는 선생님을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에는 힘들어 보이지만 건강한 미소가, 그리고 이 무더운 여름도 선생님의 산행을 막을 수 없다,라는 당찬 자신감이 엿보였다.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에게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 어떻게 등산할 생각을 다했냐?”라는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덥긴 한데, 막상 산에 올라가면 그늘이라서 생각만큼 덥지 않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산을 타며 운동을 하고 땀도 흘리면 기분이 좋아진다라고 했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 나가다가 얼떨결에 둘이서 산행을 하기로 했다.


다음 날 오후인 8월 2일, 우리는 보충수업을 끝내고, 급식을 먹고, 곧바로 출발했다. 선생님은 유경험자답게 꽁꽁 언 물 500ml2개씩, 차가운 생수 500ml1개씩 준비했다. 나는 흐르는 땀을 닦을 수건, 선크림, 모자를 챙겼다.


우리가 오를 정병산은 해발 566m로 높지는 않지만, 우리가 오르기로 한 코스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산행 내내 이어진다. 나무 오르막길, 계단 오르막길이 계속해서 나타나는데, 오늘같이 무더운 날씨에는 무리하다 보면 더위를 먹기 십상이다.

시간은 한낮인 오후 2, 바깥 온도는 34°C, 바람 한 점 없는 말 그대로 불볕더위였다. ‘이런 상황에서 산행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있었지만, 산이 그렇게 높지는 않은 데에다, 준비를 철저하게 했기에  한번 전해 보기로 했다. 


드디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시작은 좋았다. 대부분의 산행 구간이 선생님 말씀대로 그늘로 덮여 있었다. 이 무더위에 햇빛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산행의 초입은 평탄한 길이 이어져서 힘들지 않았다. 날씨가 너무 맑아서 그런지, 나무가 자아내는 초록의 녹음이 선명하게 빛났다. 내가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진초록의 잎들이 여기저기에서 반짝이며 나를 환영해 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산을 오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10년 전에도, 정병산을 올랐다고 했다. 당시에는 집이 정병산과 가까웠고, 날씨도 지금처럼 덥지 않아서 거의 매일 산행을 실시했다고 했다. 산을 꾸준하게 오르니 운동량이 많아지면서 몸이 건강해졌고, 한 달 만에 무려 10kg을 감량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때, 그 느낌을 되살려보려고 이번에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에 유럽 여행을 떠날 계획인데, 몸이 건강해야 여행을 더 잘할 것 같아서 건강관리를 위해 등산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니 선생님이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산행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긴 시간 동안 산을 오르면 일행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된다. 평소에 입고 있는 갑옷처럼 두꺼운 방어막이 하나씩 제거되는 느낌이다. 이렇게 편안하게 교제하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기 위해 산행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20분 정도 오르자 약수터가 나타났다. 우리는 약수로 세수를 하고, 머리에 물을 끼얹었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물을 여기저기에 뿌려보지만, 여간해서는 더위가 가시지 않는다. 수건을 물에 적신 다음 목에 둘렀다. 얼음물을 수건 안에다 두르고, 목에 갖다 대었더니 조금은 시원해졌다.  

   

발걸음을 다시 뗐다. 오랜만에 산을 타니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오늘같이 한낮의 살인적인 땡볕에 산행은 무리라는 생각이 슬금슬금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걸을 때마다 모기까지 달려들어 신경이 쓰였다. 한 손으로는 모기를 쫓으며 한 손으로는 땀을 닦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눈을 들어 위를 쳐다보았는데, 계단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지친다. ‘괜히 이 더위에 산행을 왔나?’     


몇 계단밖에 안 올라왔는데 땀이 쏟아졌다. 얼마나 땀이 많이 나던지, 옷이 땀에 달라붙어 버렸다. 움직일 때마다 거추장스러워서 차라리 웃통을 벗어던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수건으로 땀을 닦는다고는 하지만, 땀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바람마저 없으니 이때다 싶은지 모기가 달려든다. 잠시 쉰다고 바위에 앉았는데, 몇 군데가 벌써 부어올랐다.     


오르막길은 재미가 없고, 몸은 갈수록 지치고, 앵앵거리는 모기에, 끓는듯한 폭염은 계속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나? 짧은 순간에 포기하자라는 생각과 완등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다. 

    

혼자서 여러 생각을 했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지?', '그것도 이렇게 더운 날에?’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이 모든 걸 어느 정도는 감수하고 왔다라는 사실떠 올. 그러면서 어떻게든 끝까지 오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마음속에서 힘들 때면 쉬면 되지. 그리고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올라가면 돼라는 답이 떠올랐다.

     

이런 생각을 하자, 산행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지 점차 긍정적인 사고가 확산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급한 것도 없는데, 뭐가 그렇게 문제니?’라고 혼자 묻고, ‘할 수 있어! 어떻게든 끝까지 올라가자라고 혼자 답했다. 사고가 긍정적으로 전환되니, ‘이 더위와 힘든 오르막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산행을 완수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갔다. 조금 가다 쉬고, 또 조금 가다가 쉬었다. 물리 선생님도 이 길은 보통 하산할 때 이용하는 길이다라며 힘들 땐 언제든지 쉬어 가자라고 했다. 선생님도 힘들어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서로 말이 없어졌다. 그냥 한 계단씩 하염없이 오를 뿐이다. 땀은 여전히 쏟아졌다. 얼음물을 가져오길 정말 잘했다. 더위에도 얼음물로 목을 축이고, 더위를 내쫓았다. 얼음물을 목에다 대고 있으면 잠깐이지만 시원함이 느껴졌다.  

    

지리산이나 한라산 같은 산을 타는 것도 아닌데, 우리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거의 5분에 한 번꼴로 쉬었다. 이렇게 천천히 올라가는 산은 처음이었지만, 이 폭염에 이렇게라도 쉬지 않으면 더위를 먹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계단을 오를 때부터 현기증 같은 증상이 있는 것 같기도 했는데,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아마도 더위를 먹는다라고 할 것 같았다.    

 

정상 근처에 가니 오르막이 더욱 가팔라졌다. 가파른 길을 오르기 쉽게 로프가 연결되어 있었다. 로프를 잡아당기면서 한 계단씩 올라가니 오르는 길이 한결 편해졌다. 어떻게 이렇게 힘든 산길에 로프를 다 설치해 놓았을까? 공무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그렇게 대단한 산이 아니기에 큰 감흥은 없었다. 그래도 힘들었던 산행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 나 자신을 칭찬해 주었다. 우리는 정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컷 찍고는 곧바로 하산했다. 하산길에 다리가 풀렸는지 발을 내디딜 때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디서 이런 여유가 생겼지?’라고 생각해 보니까, ‘내려가다가 힘들면 또 쉬면 되잖아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게 내려가니 하산 길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 같은 산행 속도와 마음만 유지한다면 이보다 훨씬 더 힘들고 가파른 산도 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산행을 완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나만의 속도로 한 걸음씩 나아갔기 때문이었다.      


50대가 넘어가니 산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등산을 하기도 하고, 재미를 위해 산을 찾기도 한다. 나는 산에 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친한 동료들이 산을 다니기에 한 번씩 나도 따라나서게 된다.


산행을 가는 하지만, 산행의 묘미는 잘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나는 산행 속도가 느려서 산을 오를 때, 앞사람을 따라간다고 정신이 없. 산을 잘 타는 편이 아니라서 산행에 뒤처지면 다른 사람에게 민폐라는 생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산을 오르니 일행과 함께 완등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산행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다. 모처럼 산행하러 나와 대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녹음이 주는 생명력, 그리고 신선한 공기 등을 누리지 못했다. 늦으면 안 된다는 부담감에, 일행과의 대화를 즐길 수도, 자연이 주는 편안함이나 산에 오르는 기쁨을 맛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산행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뭔가 부족한 듯한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던 내가 최근에 산행에 대한 태도를 달리했다. 나의 산행은 속도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닌데, 주위 사람에게 너무 신경 쓰며 산행을 하는 바람에 나 자신을 잘 못 챙긴 것 같.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나의 산행은 정상까지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도달하는 것'


이제는 산행을 서두르지 않는다. 느리지만 내 속도로 갈 때, 산행에 대한 부담을 떨칠 수가 있었다. 산을 오르는 것 외에도 주변을 둘러보며 아름다운 자연의 감흥에도 젖고, 동료들과의 대화로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도 가능했다.     

 

내 속도에 맞춰 올라가더라도 사람들과 그렇게 큰 차이도 생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함께 가는 사람들이 내 속도를 맞춰 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마음만 바쁘게 앞사람의 발 뒤꿈치만 보는 힘든 산행을 지속했었다. 결과적으로 산행을 잘 해내기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것은 나만의 속도에 맞추는 것이었다.          





우리의 삶도 산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뒤처지기 싫어서 누군가와 경쟁하듯이 상대의 발걸음과 속도에 맞추다 보면 자신의 페이스를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느리더라도 자신의 속도와 방향성을 가지고 전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 반드시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올바른 방향으로 꾸준히 한 걸음씩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작가가 되고 싶은 내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글 쓰는 속도가 늦다. 많이 써보지 않아서 늦는 것도 이유일 것이고, 글의 내용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글을 쓸 때마다 헤매고, 쓰고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직 내가 가야 할 길이 멀고도 험하다는 말일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단시간에 멋진 글을 올리는 작가님들을 많이 봐왔다. 그분들을 보면 내가 갖지 못한 능력에 부러움과 시기심이 몰려온다. 그럴 때면 영락없이 실력도 없는 네가 무슨 글을 쓴다고?’라는 마음의 소리도 들려온다. 그런 마음이 들면 잠시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말이 들린다고 해서 흔들리거나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런 말이 들려올 때면, 오히려 내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함께한다.   

   

무슨 일이든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힘들다. 옳은 길을 걷고 있더라도 자기를 시험하는 새로운 장애물은 매번 나타난다. 그런 장애물에 걸려서 넘어지고, 낙담하고, 좌절한다.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기면 '내가 성장하기 위해 새로운 장애물을 통과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러기에 힘들고 어려운 길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사랑하고, 이 일에 열정이 있다. 글을 쓰며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글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그로 인해 성장한다.

조금씩 진행되는 내 글에서 짜릿한 흥분과 만족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나는 나 자신을 믿고, 나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하며 오늘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나는 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절대로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를 믿고, 나만의 속도로 글을 써 내려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가진 글쓰기의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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