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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일출 Jul 19. 2023

아내의 투정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

남자는 늦게 철이 든다더니

2023년 5월 29일, 오늘은 대체공휴일이다. 석가탄신일이 토요일로 쉬지 못하는 바람에 월요일인 오늘이 대체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직장인에게 이런 날은 축복과도 같다.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있는데, 경비실로부터 인터폰이 울렸다.

아내는 출근 준비를 위해 씻고 있었기에 할 수 없이 내가 전화를 받았다. 요지는 아내 차가 아파트 도로변에 주차되어 다른 차의 움직임을 불편하게 하고 있으니, 차를 옮겨 달라는 것이었다. 아내에게 이미 연락을 취했는데, 아직 차량을 옮기지 않아서 다시 연락한다는 것이었다. 늦잠을 깨워서 죄송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내는 방문 수업 교사이다. 수업을 하지 않으면 그만큼의 급여가 차감되기에 대체공휴일인 오늘도 출근을 한다. 아내는 출근할 것이기에 이 문제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위기다. 30분 후면 아내가 차를 이동시키겠지만, 아파트 사람들을 챙겨야 하는 경비 아저씨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기에 내가 대신 차량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자동차 열쇠를 찾아보니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나는 급히 밖으로 나가서 아내가 좋아하는 주차 공간으로 차를 옮겼다. 최근에 우리 아파트는 차가 너무 많아져서 주차할 공간이 부족하다. 조금만 늦게 퇴근해도 주차장이 빽빽해서 주차할 자리를 찾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중주차로 인해 아침에 출근할 때도 내 차 앞을 가로막고 있는 차량을 옮기느라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나는 아내에게 경비실로부터 연락이 와서 차를 주차장으로 옮겨 놓았다고 얘기했다. 바로 그때 아들이 학원에 간다고 해서 아들을 태워 주러 나갔다. 학원으로 가는 중에,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내는 자동차 열쇠가 안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디에 두었냐고 물었다. 나는 원래 있던 식탁 위에다 두었다고 했다. 아내는 식탁 위에 없으니 혹시 내가 가지고 있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아들을 학원에 태워 주기 위해 나온 터라 나는 내 차 열쇠와 지갑, 휴대폰 외에는 가지고 나온 물건이 없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없다’라고 말했다. 아내는 지금 바로 나가야 하는데, 차 키가 없다며 나에게 어디 두었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나는 분명히 식탁 위에 두었는데, 아내가 몰아세우니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혹시 몰라 내가 잘 두는 곳 몇 군데를 말하며 아내에게 잘 찾아보라고 말했지만, 아내는 정신이 없는지 짜증만 냈다. 나도 짜증이 나서 좋게 받아주질 못했다.  

    

나는 평소에도 물건을 같은 자리에 두지 않는 아내가 열쇠를 잘 못 두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아내가 짜증을 내는 것이 못마땅했다. 아내는 화가 나서 “차 열쇠가 안 보여서 찾아보라는데, 그게 그렇게 짜증 나는 일이야?”라고 말하며, 이번에는 내가 짜증을 냈다고 몰아붙였다. 할 말이 없었다. ‘짜증은 본인이 먼저 내고서는…’     


10분쯤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지금 출근 중이라고. 열쇠를 가방에 넣어 두고서는 한참을 찾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짜증 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분명히 식탁 위에 올려 두었는데, 생사람 잡는다고 아내에게 타박을 놓았다. 그러면서 엄마들에게 늦는다고 전화했냐고 물었다.      


“전화했지. 난 매번 늦다고 엄마들한테 전화해. 수업 끝나고 다음 집에 가려는데, 엄마들이 상담한다고 붙잡아서 전화하지, 주차할 곳을 못 찾아서 전화하지, 그럴 때마다 엄마들에게 얼마나 미안한 줄 아니? 그리고 아침에 출근하는 데, 차 키가 없으면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알아? 그렇게 경황없는데 좀 받아주면 안 되냐?”     


아내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아내 말이 맞았다. ‘남들 다 쉬는 대체공휴일에 출근하는 것도 서러운데, 자동차 열쇠까지 안 보였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아내의 한마디에 정신이 들면서, 별 것도 아닌 일로 속 좁게 군 내가 한심하게 보였다. 오늘따라 고생하는 아내가 안쓰러웠다.

      

나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나를 따지는 법정에 서 있는 것도 아닌데, 때때로 나의 책임이 아닌 것을 증명하기 위 지나치게 애를 쓴다. 아내가 내 책임 아니냐는 투로 따지는 것에 화가 나서 견디기가 힘들다. 평소에는 잠잠하다가도 유독 책임 소재만 나오면 민감해져서 대화를 이어가기가 곤란할 때가 있다. 내 안에 가만히 잠고 있던 거대한 무언가가 깨어나서 상대와 승부를 겨루는 것 같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아내가 툭툭 던지는 감정 섞인 말, 특히 짜증이 섞인 말을 받아주는 것에 서투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아내의 짜증 섞인 이야기를 듣는 것에 경기를 일으키는 편이다. 화가 난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면서 아내의 투정을 받아주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너그러운데 아내에게는 타인보다 못한 남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도 힘든 일상에 기대어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텐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나는 그런 역할을 잘 못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는 내가 조금만 잘못한 일이 있어도 일일이 잘못을 지적하며 호통을 치셨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의 고함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는 누군가가 나의 잘못이라고 비난하는 듯한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견디기가 힘들다.      


아내와의 대화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불편한 상황을 재현시키는 것 같다. 아내에게 ‘당신 잘못 아니냐?’라는 투의 말을 들으면, 아버지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나의 억울한 감정까지 그대로 아내에게 되돌려주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한껏 방어적으로 변하여 아내에게 나의 곁을 내어주지 못하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좀 더 여유를 갖고 아내의 감정을 받아줄 수 있을 것이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채워지지 않은 나의 자아가 더욱 고개를 드는 것을 느낀다.      


남자는 늦게 철이 든다더니, 내가 딱 그 모습이다. 오늘 나의 모습을 보며 좀 더 관대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아내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안아줘야겠다. 그리고 아내의 서운한 감정을 풀어줘야겠다.

      

그래도 오늘은 나의 이런 모습을 인정하고 돌아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 결혼한 지 20년 만에 아내의 투정을 여유롭게 받아줘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잘 되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 날엔 좀 더 좋은 남편으로 아내 곁에 서는 날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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