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아가는 나 자신이 마음에 든다
또다시 수능이 찾아왔다.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다. 마지막 수능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비장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수능도 몇 번 해보니까 익숙해지는 느낌이 있다. 이전에는 긴장이 되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컨디션 조절에 실패를 거듭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수능 전날에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었다. 시험에 자신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의 루틴이 그대로 이어졌고, 전과 달리 떨리거나 두렵지도 않았다. 준비가 잘 되어서 그런지, 모든 것이 나의 사이클과 잘 맞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빠가 수능장인 대륜고등학교까지 데려다주었고, 엄마가 옆에서 기도해 주셨다. 잠을 잘 자서 그런지 머리가 맑았다. 추운 것은 똑같았지만, 뭔가 모를 뜨거운 것이 몸 안에서 활활 타오르는 듯해서 추운 줄도 몰랐다.
‘오늘이면 모든 것이 끝이라니…’
삼수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힘든 시간을 버텨내다니'
그리고 이 긴 시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 것에 감사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에 임하면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그분과 더 가까워진 나를 느낀다. 그러면서 오늘 시험도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 들어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두렵지 않았다. 나는 담담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수능장에 들어갔는데 신기하게도 또 창문가 쪽 가장 뒷자리였다. 뭔가 첫 수능과 자리가 같으니까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모든 과정이 오늘을 위한 연습의 과정인 것처럼 보였다. 고사장에서 1년 동안 했던 대로 그대로 아침 루틴을 반복했다. 일단 비문학 지문을 꺼내서 한번 요약해 보고, 따뜻한 보리차를 한 모금 마셨다.
드디어, 시험이 시작되었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뭔가 멋지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최선을 다해 모든 걸 쏟아내겠다고 마음먹었다. 종이 치자마자, 나는 화법과 작문부터 풀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언어와 매체와 화법과 작문을 선택하던 시기가 아니라, 우리 때는 화법과 작문 10문항, 문법 5문항이 공통으로 출제되던 시기였다. 나는 집중력을 발휘해서 막히는 것 없이 문제를 술술 풀어갔다. ‘이거 감이 괜찮은데?’라는 생각과 함께 45번까지 막힘없이 풀어나갔다. 문제를 다 푼 뒤에 시간이 조금 남아 문학 지문과 살짝 애매했던 문법 문제 1문제를 다시 보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번 수능은 역대급 불수능이었다는 것이다. 국어가 처음으로 1등급 컷이 84라는 엄청난 시험이었는데, 나는 당시에 모든 문제를 자신 있게 풀어서 100점인 줄 알고 있었다. 실제로는 100점이 아니었지만, 나는 국어를 잘 쳤다는 자신감으로 다음 시험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2교시 수학 시간이 시작되었다. 수험생활 내내 나를 괴롭혔던 수학이었다. 정말 지긋지긋했다. 그리고 문득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차분하게 풀어 내려갔다. 그렇게 정신없이 풀다 보니 어느새 29번을 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신기한 것은, 29문제를 풀고 답안지에 답을 적고 난 뒤, 30번을 보았다. 시간은 40분 정도 남은 상황이었다. 30번을 욕심내볼까도 생각하였지만, 내 목표는 수학 100점이 아닌, 의대를 가는 것이었다. 차라리 다시 한번 더 검산을 해서 96점을 확보하는 것이 내겐 더 중요했다. 그래서 30번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남은 시간에 검산을 했다. 그래도 10분 정도가 남아 30번을 끄적거리며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는데 종이 울렸다.
점심시간이었다. 수학을 정말 잘하는 친구와 함께 점심 도시락을 먹는데, 그렇게 수능 얘기를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수학 얘기를 하게 되었고, 29번의 답이 그 친구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3수 때 나와 같은 반이었는데, 늘 수학을 100점을 놓치지 않을 만큼 수학에 관해서는 실력자였다. 누구보다 재능이 뛰어난 그와 답이 다른 순간, 나는 틀렸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아무리 생각해도 내 풀이에 문제가 없었기에, 도대체 어디서 잘못된 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내 답이 맞은 것이었는데, 당시에는 이를 몰랐기에 멘탈이 상당히 흔들렸다.
영어는, 3수 때는 안정적으로 97점 이상이 나와줘서, 그냥 무난하게 치면 1등급이 나오는 과목이었다. 나는 영어 듣기를 치고 있는 도중에 수학 29번 문제가 계속 생각이 났다. 듣기 문제를 풀고 있는 도중에 영어 문제지 맨 뒤 백지에다가 29번을 기억해 내 다시 풀어보았다. 뭔가 홀린 듯 수학 문제를 영어 시간에 푸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만 듣기의 내용을 순간적으로 놓쳐버렸다. 나는 크게 당황했다.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부터는 영어 문제 풀이에 집중을 하였고, 다행히 늘 연습했던 ‘몰입’을 사용하여 45번까지 안전하게 풀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확실히 시간도 평소보다 많이 걸려, 5분도 남지 않았었고, 나중에 결과도 듣기를 포함해 3개를 틀려 1년을 통틀어 영어에서 최저점인 92점을 받았다. 하마터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절대 어떤 일이 있어도 이미 지난 것은 다시 봐 선 안된다. 그러다 다음 해, 1년 내내 그 지나간 문제들을 다시 풀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3교시가 끝나고 과학탐구의 오답 노트를 가볍게 살펴보았다. 4교시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한국사를 빠르게 풀고서, 시험지 맨 뒤 백지에다가 생명과학의 유전 분야의 문제를 몇 개 만들었다. 머리를 깨우기 위해 유전 풀이를 진행한 후 바로 과학 탐구시험에 들어갔다. 1문제가 헛갈리기는 했지만 ‘내가 모르는 문제면 다른 애들도 모를 거야’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차분하게 시험에 응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고, 16시 32분에 끝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내 수능의 막도 내렸다.
모든 과정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이번 수능에서는 완벽한 나의 설계대로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어려운 문제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고, 문제의 접근과 풀이과정이 거의 완벽했다. 특히 수학의 29번을 맞혔다는 것, 영어에서 듣기에서 실수를 했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페이스를 회복했다는 것이 이번 시험에서 내가 노련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수능성적표도 내가 생각하던 점수가 나왔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나는 그해 정시에서 꿈에 그리던 의과대학에 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