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점을 믿어야 한다
재수 생활을 기숙학원에서 한 것과는 달리, 삼수는 할머니가 있는 대구에서 시작했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기도 했고, 서울에서 재수를 하며,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터라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끼고 싶었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나를 끔찍이도 아끼셨기에 공부 외에는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공부하기 싫을 때는 할머니가 해 주시는 밥을 먹고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편히 쉬고 싶은 것도 이유였다.
힘들 것만 같았던 삼수 생활은 생각보다 할 만했다. 하루종일 공부하다 보면 ‘힘들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힘들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몸은 이미 익숙한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기에 그리 힘든지도 몰랐다. 나는 이미 공부 기계가 되어 있었다.
수업을 들을 때는 모르는 것을 새롭게 배운다는 것보다는 아는 것을 확실히 정리하는 느낌으로 임했다. 가끔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그날이 가기 전에 정리를 해서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재수 때와는 다르게, 3월부터 안정적으로 고득점이 나왔다. 예전 같았으면 풀렸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 그런 여유는 더 이상 허락되지 않았다. 이미 실패의 아픔을 두 번이나 경험했기에 오직 수능만을 생각하며 부족한 점을 찾고 채우는 것에 전념했다.
그렇게 꾸준히 공부하면서 6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치렀다. 이 시험에서 나는 전 과목에 걸쳐 거의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았다. 서울대 의대를 제외하고는 모든 의대에 합격할 만한 점수를 받았다.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이제는 정말 의대에 합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순간, 정말 무섭게도 내 마음속에 또다시 이런 생각이 찾아왔다.
‘이 정도면 됐다’
이후 나의 집중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공부하기 싫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번에는 충분히 해낼 수 있으니, 쉬엄쉬엄 공부하며 체력을 아끼라는 속삭임이 매일같이 들려왔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마치 나의 실패 패턴이 다시 찾아오는 것 같았다. 공부하는 것이 힘들다기보다는 그렇게 반복적인 실수를 저지르며, 거듭된 후회를 해 놓고서는, 또다시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려는 나 자신을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이러다 또 떨어지겠다'
평소, 학원에서 12시까지 공부를 했는데, 이때는 머리를 식히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에 일찍 들어갔다. 어차피 공부도 안 되었고, 또 마음을 잡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해주신 저녁을 먹고 집에서 음악을 들었다. 쉬는 것도 바늘방석이었지만 공부하는 것보다는 휴식을 취하는 게 우선이었다.
침대에서 뒤척이다 보니, 지금까지 공부했던 나날들이 머릿속에서 지나갔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의대만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했다. 하루 일과를 충실히 소화하며, 내가 정한 하루의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을 담아 노력했던 시간이 또다시 수포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차라리 공부에 집중하지 않고 딴짓을 했다면 이렇게 실의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능을 칠 때까지는 아직 5개월 남짓 남았지만, 나는 지금, 슬럼프에 빠지기 전의 내 모습을 보고 있었다. '실패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온몸을 감싸며 불안한 마음에 떨고 있었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울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문득 고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완기야! 넌 부족한 아이가 아니야. 넌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잖아. 어떠한 어려움에도 매일 꿈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잖아. 넌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러니 자신감을 갖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당당하게 하렴. 네가 의사가 되지 않으면 누가 의사가 되겠니? 너무 잘하고 싶다는 부담감만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 선생님이 응원할게”
그랬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장점을 믿고 힘든 상황에서도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였다. 삼수를 해서 그런지 이전에 가지고 있던 나의 호기와 도전정신은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두려움과 불안감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어쩌면 담임 선생님은 내가 심리적으로 부담을 많이 갖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간에, 이전에는 나를 지지해 주고 안정적으로 이끌어 주시던 분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 일어서야 했다. 그리고 이젠 그런 일을 스스로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고 보니 나도 힘들었던 시간만큼 성장한 것 같았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반드시 의대에 합격해야 한다'라는 강박에서 헤매었다. 이전에도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서 부담감으로 작용했는데, 의대에 연이어 떨어지면서, 나보다 잘하는 아이들과 비교하며 이런 생각이 점점 더 강화되었다.
‘과학에서 문제를 틀리면, 내가 개념 정리를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수학 문제를 풀다가 계산 실수라도 하면, 수능에서도 이런 실수를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잠을 자기 직전까지도 머릿속에서는 암산으로 연산을 하고 있었다. 공부에 대한 강박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이런 부담감으로 나의 장점인 꾸준함과 성실함도 믿지 못하고,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데 아무리 내가 공부를 한다고 한들, 공부에 대한 자신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우선 나 자신을 믿기로 했다' 어쩌면 이번 수능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데, 후회를 남길 수는 없었다.
나는 더 이상, 합격과 불합격에 연연하지 않고 오늘 하루 내가 해야 할 분량만을 충실하게 해 나갔다. 의대 합격에 대한 걱정과 근심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합격에 대한 강박관념과 어김없이 찾아왔던 슬럼프가 사라졌다.
축구에서 슛을 세게 하려고 힘을 주면, 이상하게도 공은 속도가 붙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도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힘을 뺀 상태에서 부드럽게 공을 찰 때, 탄력을 받아 목표한 지점으로 강하게 날아간다. 이는 공을 차는 순간에 축구공에 강한 임팩트를 주어야 하는데 처음부터 세게 차겠다는 생각으로 공을 차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축구공에 힘을 지나치게 가하면 근육이 뻣뻣해져서 공이 뜨거나 강력하게 나아가지 않는다. 순간의 발목힘과 다리의 스윙 스피드를 살리지 못해서, 가지고 있는 실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는 실력이 향상될 수 없다. 슛을 할 때 몸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공을 차야 하듯이, 결과에 집착하는 대신 과정에 몰입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꾸준하게 해 나갈 때 성적도 따라오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결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지금 현재의 이 순간에 해야 할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후로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나의 장점인 성실함과 꾸준함을 염두에 두고 오늘 하루만 충실하게 살기로 했다. 내 마음을 스스로 달래며 내가 할 일을 천천히 해 나갔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꾸준하게 공부한다. 어떠한 어려움에도 매일 꿈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 나간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나 자신이 마음에 든다. 내가 가는 길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할 것이다'
나 자신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하루하루를 놓치지 않고 일상을 충실하게 맞이하자 마음에 여유가 찾아왔다. 휴식할 때에도 '공부해야 하는데'라는 생각보다는, '열심히 공부했기에 푹 쉬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나는 하루의 공부 리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오로지 수능 날만을 생각하며 공부에 마음을 쏟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해야 할 공부를 놓치지 않았으며, 수능 준비를 스스로 만족할 만큼 철저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수능은 평소 실력보다 점수가 덜 나온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 터라, 나는 그 간격을 최대한 줄이고 싶었다. 매일 수능 시험의 리듬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공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