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일출 Jul 04. 2023

성공은 좌절 뒤에 찾아온다

좌절의 순간을 견뎌라

머릿속에서는 아직도 수능에서 틀린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화가 났다. ‘아직도 공부하고 있니? 쉬는 것도 마음대로 못 쉬니?’라는 말로 자책했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멍하게 누워 있다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기를 반복했다. 잠이 들면, 수능을 치고 있는 꿈을 꾸기도 했. 꿈에서도 수능을 치고 있다니..


너무 많이 잠을 자다 보니, 한 밤중이 되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컴퓨터를 하고, 드라마를 보고, 유튜브를 보았다. 처음엔 그럭저럭 시간을 보낼만했는데, 이 생활도 한 달이 넘어가니 지겨워졌다. 동시에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친구들과 여행이라도 다녀올 걸'


사실 수능이 끝나면 초등학교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했었다. 돈도 조금씩 모으고 있었는데, 나로 인해 계획이 틀어졌다.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다녀오면 될 것을 내가 걱정되었지, 계속해서 여행을 미루고 있었다. 그런 친구들이 고맙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다.


수능 성적표가 나왔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딱 1~2문제 차이로 의대에 가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억울했다. 부모님은 내가 너무 침울하게 있는 것을 보고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모두가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성적표를 식탁에 두고 밖으로 나왔다. 한 달 만에 첫 외출이었다.


친구들과 자주 갔던 PC 방에 갔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들은 게임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등장한 나를 보고 반갑다고 난리 쳤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보니 나 또한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시험을 잘 치던, 그렇지 않든 간에 친구들은 언제나 똑같아서 좋다. 수능 성적은 이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당분간은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물었다. 여기저기서 질문 세례를 펼쳐서 “나는 대답할 테니 번호표를 뽑아라”라고 말했다. 질문세례가 끝나자 어떤 친구가 여행 얘기를 꺼냈다. 얘기를 털어놓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친구들은 여행을 가자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곧 있으면 개학이라 지금을 놓치면 1년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느니, 내가 삼수를 할지도 모르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삼수하면 공부할 맛이 안 날 것이라고 했다. 모두가 여행을 가기 위해 나를 설득하는 것이었지만 듣기에는 좋았다. 그렇게 나는 친구들의 독촉에 마지못한 듯이 대만으로 떠났다. 대신 수능에 관해서는 일절 이야기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여행은 순탄했다. 마음이 가볍고 즐겁지만은 았지만, 의대 진학실패에만 머물렀던 마음속의 불편함이 조금은 완화되는 것 같았다. 여행 3일 차에 등불 축제로 유명한 스펀을 둘러본 후에 지우펀을 방문했다. 지우펀은 다양한 간식과 소품들이 즐비해서 우리의 미각과 시선을 사로잡았다.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고, 대만 버블티와 밀크티를 마시며 돌아다니다가, 가파른 산으로 접어들었다. 그곳은 마치 레고 블록처럼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이 즐비했다.

많은 건물 중에서 대만 특유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가게가 있었다. 붉은 등불이 따스하게 가게 문 앞을 비추고 있었고, 문 입구에는 알 수 없는 커다란 한자가 적혀있었다. 날씨도 흐려서 안개가 자욱한 게, 마치 도깨비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우리는 이끌린 듯이 가게 들어갔다. 그렇게 시끄럽던 친구들이 경건한 분위기에 압도되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곳은 다름 아닌 기념품 가게였다. 바깥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서 약간 놀랐다. 물건을 살 생각은 없었지만, 수많은 이국적인 액세서리가 마치 박물관의 유물처럼 펼쳐져 있었다. 기념품들이 색 달라서 둘러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우리가 거쳐왔던 명소의 엽서와 열쇠고리를 보고 있으니 왠지 대만이라는 나라가 친숙해 보였다.  가게를 둘러보고 있는데 어느 컵 받침대에 쓰여 있는 익숙한 글귀가 내 눈에 들어왔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다리에 힘이 빠졌다. 갑자기 현실의 무게가 느껴졌다. 의대를 가기에는 부족한 성적에망연자실한 상태의 나, 다시 공부할 힘은 남아있지 않은 에너지를 소진한 나를 다시 마주했다. 다시 도전한다해도 합격할 거란 보장이 없었기에 나는 참담한 터널을 걷고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싶었던 시기였다.

 

‘의대만 포기하면, 충분히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성적인데, 부끄럽지만 이게 내 한계라 생각하고 그냥 공대에 가버릴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함께 여행을 간 친구들의 대학 생활을 들어보니, 너무 행복해 보였고, 더 이상의 고생은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커져만 가고 있을 때였다.


이런 좌절의 순간에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글귀가 내 머리를 세게 때리는 것 같았다. ‘스티브 잡스는 아버지의 차고에서 창업한 애플을 세계 최고의 회사로 만들었는데, 그의 인생은 어땠을까?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을까? 회사를 정상에 올려놓고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을 때의 심정은 어땠을까? 애플에 다시 복직해서 아이폰을 출시할 때까지는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을 견뎠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천천히 지나갔다.


그러면서 스티브 잡스의 성공스토리 보다 그가 성공을 위해 견뎌 냈던 ‘시간’이 나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에 대해서는 늘 위대하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가 성공에 도달하기까지 견뎌왔던 시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내기 위해 견딘 시간에 비하면, 내가 겪는 견딤의 시간은 너무나 작은 어려움이 아닐까?’


평소에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늘 고민하고 있었지만, ‘가치 있는 삶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도전하고, 실패하고, 실패에서 일어나 또다시 도전하는 오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것을 오늘에야 처음으로 깨달았다.


컵 받침대를 보면서, '로운 도전'이라는 글자 떠올다. 나는 그의 인내를 생각하며 다시 용기를 얻었다. 동시에 스티브 잡스를 소개해 준 담임 선생님이 떠올랐다. 이 글귀가 어쩌면 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의대에 합격하여 이때를 회상하며, 이 글귀를 선물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컵 받침대를 담임 선생님에게 선물하면서 이 순간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떨리는 손으로 받침대를 샀다.


이때의 내 마음은 떨림과 두려움, 그리고 다시 한번 용기를 낼 수 있게 만든 선생님에 대한 감사와 놀라움을 마음 깊숙이 새겼다. 내가 만약 의사가 된다면, 선생님처럼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말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작가의 이전글 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