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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글 Jan 10. 2022

3_바다에 몸을 던지다.

무모함이 준 자유

그거 꼭 챙겨야겠니?


제주도 한 달 살이 짐을 꾸리고 있을 때였다. 제일 마지막으로 나의 노란 오리발을 캐리어에 욱여넣었다.

“그거 꼭 챙겨야겠니? 거기서도 수영할 거야?”

“제주도는 섬이니까 물놀이할 기회도 생기지 않을까?”

“혼자는 하지 마”

“알겠어”



나의 음-파 음-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물을  좋아했다. 목욕탕을 가면 항상 할머니를 따라 -, - 연습을 했다. 목욕탕 물놀이의 꽃, 바가지를   겹쳐서 발장구치기도 물론 했고!  조금 커서는 워터파크 가는 것을 좋아했고, 계곡과 바다에서 노는  좋아했다.


한참이 지난 25살. 처음으로 수영을 배우면서 알게 되었다. 음-파, 음-파의 진실을.

~ 숨을 내뱉는 거고, ! 숨을 들이마시는 거였다. 목욕탕에서는 ~하고 들이쉬고 ! 하고 내쉬었었는데 말이다. 그동안 난 뭘 하고 논걸까?




어쩌다 우리 제주에



제주에 오고 나서 몇 번이고 수영을 하려고 했지만, 혼자서 하는 바다 수영은 굉장히 무서웠다. 결국 나는 함께 수영할 사람들을 찾았고, [어우리]라는 모임을 알게 되었다. ‘어쩌다 우리 제주에’의 줄임말인 어우리는 나처럼 잠깐 제주살이 하는 사람들, 업무 때문에 장기 출장 온 사람들, 제주도가 좋아 이사를 온 사람들 등 다양한 이유로 제주에 모여 살게 된 사람들이 모여하는 문화 소모임이었다.



처음이면 구명조끼 하세요!



그렇게 어우리의 스노클링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서귀포 외돌개. 그곳은 발이 닿지 않은 깊은 곳이었다. 수영은 할 줄 알았지만 바다에서의 수영은 처음이라 한참을 망설였다.


‘구명조끼를 해야겠지?’


“여기 파도 안쳐서 수영 좀 할 줄 알면 안 해도 될 거예요. 무서우면 구명조끼 해요. 하는 사람들 많아요!”


 말을 들었는데 괜히  속에서 무언가 꼬물꼬물하고 올라왔다.

괜한 청개구리 심보,

괜한 오기,

괜한 자존심,

괜한 무모함이었다.



‘나 수영할 줄 아는데, 오리발도 있는데. 2m 수영장에서도 수영해봤는데....’

‘.... 위험하면 어떻게 하지? 여긴 수심이 더 깊은데 그냥 구명조끼 할까?’


고민을 하는 사이에 일행들은 저 멀리 바다로 나가고 있었다.


‘아 모르겠다 죽을 것 같으면 구해주시겠지. 힘들면 그때 구명조끼 하자’


용기인지 무모함인지 모를 한 줌의 무언가를 가지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굉장히 힘들  알았는데, 바닷물이라 부력이 세서 수영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깊은 곳을 향해 오리발을 힘차게 흔들며 나아갔다.

대략 15-20m 수심이었다. 발이 닿지 않는다는 두려움은 곧 사라졌다.

내 눈앞에 보인 것이 너무나 특별했으므로.


너무 깊어서 파랗다 못해 짙은 남색의 바다 밑. 그 사이에 움직이는 해초가 특별했고, 그 사이에서 움직이는 물고기들이 특별했고, 그 위에서 모든 것들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이 특별했다.


‘이 좋은걸, 이렇게 멋있는 걸 왜 이제야 해본 거야?’



광활한 바다를 헤엄치다 내 앞에 놓인 광경에 순간 숨이 막혔다. 쉴 새 없이 흔들던 다리도 멈추고 동동 수면 위에 떠서 한없이 쳐다보았다.


그건, 지금까지 보던 바다의 밑바닥도, 형형색색 예쁜 물고기도 아니었다.

바다 아래로 내리쬐는 햇빛.


햇빛이 얼마나 강렬한지, 바다 밑으로 쏟아져 내렸다.

햇빛이 마치 하얀 실크 커튼처럼 아른거렸다. 북극에서 오로라를 보면 이런 기분일까?

잡히지도 않는 햇빛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잡히지 않은 커튼 자락들을 헤치며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끝도 없는 그 바다에

끝도 없이 내리쬐는 그 햇살을 향해.



저 사람 뭐예요?


일행 중에는 유난히 긴 오리발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한참 수면에서 숨을 고르더니 순식간에 바닷속으로 쑥 들어갔다. 아무렇지 않은 듯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 바다 밑에서 한참을 머무르다 수면으로 나왔다.

‘아니 저건 또 뭐야?’


어떻게  거냐며 한껏 흥분한 나는  사람과 똑같이 따라 들어가 봤지만 엄청난 귀의 압력으로 2m 들어가지 못해 나왔다.


“이건 프리다이빙이야, 배우지 않으면 할 수 없어. 귀 다치니까 그냥 스노클링만 해”


스쿠버다이빙과 다르게 산소통 없이 숨을 참아 깊은 곳으로 잠수하는 프리다이빙.

이제야 구명조끼가 없는 자유에 취해있었는데

이보다   자유가 있었다니.

나는 아직도 모르는거 투성이었구나.




바다가 준 자유에 취하다.


 스노클링을 했던 나는 바다가  자유에 취해 30일의 제주살이  10일을 바다에 있었다.


그 무모함이 준 광경에 취해

그 무모함이 준 자유에 취해

몸이 부서져라 나아갔다.


제주살이  그때부터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프리다이빙을 하고 있다.

그때의 그 자유를 느끼기 위해서......


지금도 생각한다.

  내가 그냥 바다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지금  자유도 모르고있겠구나. 라고



가끔은  줌의 무모함이 길을 바꾸기도 한다.

(주의!! 안!전!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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