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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letterpot Nov 18. 2021

0.5kg가 내 하루를 망친다면

Listen to your body


모 TV 프로그램에서 유명 모델의 일상을 방송한 것을 본 적이 있다. 평소 자기 관리가 철저한 것으로 유명한 그녀는 매일 아침 체중계에 올라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누워서 TV를 보던 나는 그 모습에 감탄하고, 곧바로 스스로를 비난했다. '저렇게 완벽한 몸매를 가진 사람도 관리를 하는데, 내가 뭐라고 이렇게 누워 있어.'


나와 당신은 TV뿐 아니라 일상의 곳곳에서 살을 빼야 한다는 자극을 받아왔다. 


버스 정류장에 커다랗게 붙은 연예인의 광고 사진, SNS 인플루언서의 마법 같은 비포 애프터(그들은 효소를 판다), 유튜버가 말하는 '일주일 만에 5kg 빼는 방법' 등등. 이것도 모자라 다이어트를 결심하면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 바탕화면을 일명 '자극 사진'으로 바꾼다. 휴대폰을 켤 때마다 동경하는 연예인의 사진이나, 롤모델로 생각하는 바디 사진을 보며 다이어트에 대한 의지를 잊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그렇게 외부에서 만들어진 자극으로 시작된 다이어트가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긴 정말 어렵다. 우리는 끊임없이 체중계에 올라가 보며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를 확인받고자 하며, 체중계가 보여주는 숫자에 일희일비한다. 


하루 굶었다고 살이 빠지지 않고, 하루 많이 먹었다고 살이 찌지 않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루 굶고 다음 날 폭식하고, 다시 많이 먹고 다음 날 절식하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고 만다. 


매일 아침 체중을 재는 그녀의 직업은 모델이다. 그것이 그녀의 일인 것이다.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 

다이어트 코칭을 하며 나는 회원들에게 '체중계와 멀어지라'는 말을 입이 닳도록 했다. 매일 체중을 재는 것은 공부 중인 아이의 방문을 한 시간마다 열어보며, "공부 중이니?" 물어보는 것과 같다. 그럴 때 우리는 공부를 잘하고 있다가도, 침대로 가 눕고 싶은 마음이 불끈 들지 않았는가. 스스로에게 우리 그런 부모가 되지 않기로 하자. 





체중계의 숫자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희망과 절망의 반복에서 불필요하고도 거대한 감정 낭비를 하게 된다. 


단순히 어떤 음식을 먹었느냐를 떠나서 전날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얼마나 움직였는지, 잠은 잘 잤는지, 컨디션은 어땠는지, (여성의 경우) 생리 주기 중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등에 따라 체중은 늘어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다. 


체중은 숫자에 불과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체중계를 놓지 못한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언젠가 걷잡을 수 없이 살이 찌고 말 거라고 믿는 듯하다. 끝이 안 보이는 컴컴한 터널을 걷는 듯한 다이어트에서, 체중계가 길을 비춰주는 등불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체중계는 등불이 아닌 터널 그 자체이다. 당신이 어둠을 손에 들고 있기에 당신의 앞길이 깜깜한 것이다. 




매일 아침 체중을 쟀을 때 나는 하루의 기분을 체중계에게 허락받았다. 체중이 조금이라도 줄어 있으면 기분이 좋았고, 체중이 늘어 있는 날에는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무거운 마음이 나를 짓눌렀다. 누구에게 보이는 숫자도 아닌데 1g이라도 적게 나왔으면 하고 머리끈조차 풀고 체중계에 올라갔다. 


체중을 안 잰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상했던 아침들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리고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 체중계에 확인받지 않아도 나에게 적절한 체중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적절한 체중이란 내가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는 체중이고, 체중계는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줄 수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느끼는 몸의 느낌이다. 




몸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먹고, 소진되지도 무력하지도 않을 만큼 움직이는 생활을 지속하면 몸이 편안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자기 관리는 자극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이 생기는 틈을 줄여나가야 한다. 외부의 자극은 아무리 강도가 강하고 빈도가 잦아도 익숙해지는 데에 오래 걸리지 않는다. 무뎌진 자극은 뭉툭하게만 양심을 스치고 갈 뿐이다. 


체중계가 아닌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이제 믿을 수 없는 그 눈금이 당신의 기분을 망쳐놓는 것을 허락하지 않길 바란다. 그 작은 숫자는 당신을 다 담을 수 없다. 어떤 수도 당신을 담기에는 적다. 그러니 당신은 노력해야 한다.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며, 더 단단해지기 위해. 1g 더 더해진 당신의 무게로 삶을 지탱하기 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체중계 바늘의 노예가 되고 있다. 

자신감과 영양 섭취까지 체중의 지배를 받는다."

- 로스 에글리(Ross Edg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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