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D-7 전주에서
“민주야.”
“......”
“민주야! 민주야! 너 거기 있어? 뭐해?”
“..... 화장실에서 뭐 하겠냐. 똥 싼다.”
“야, 왜 그렇게 오래 있어. 깜짝 놀랐잖아.”
“미안. 변기에 앉아서 잠깐 집중해서 일했네.”
“야이, 이 일 중독자야. 너 퇴사했어, 임마. 좀 쉬자, 우리.”
전주 여행 마지막 날 새벽. 아침형 인간인 나와 다르게 야행성인 친구는 밤새 노트북을 켜놓은 채 키보드를 다닥다닥 두드리다 늦게까지 잠들어 있었다. 그에 반해 일찍이 이부자리를 펴고 잠에 빠진 나는 해가 뜨기도 전에 눈이 먼저 번쩍 떠졌다. 생체리듬이 비교적 규칙적이기에 화장실에 가는 시각 또한 일정한 편인데, 그날따라 화장실에 좀 오래 있기는 했다. 평소와 다르게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받기도 해 식사량을 부쩍 많이 늘리기도 했거니와 서울로 올라가는 날이었기 때문에 슬슬 현실에 적응해 가야 하는 시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꿈나라를 헤매이고 있던 친구는 잠귀가 밝아서 내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그 애의 머리맡의 이부자리를 살짝 밟으며 지나가자 그날따라 정신이 번쩍 깼다고 한다. 그런데 웬걸,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 긴 시간 동안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는 거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한다.
‘혹시 얘가 잘못된 선택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아이고, 민주야!’
퇴사일이 정해진 이후로 남아 있던 연차를 모두 몰아 쓰며 얻게된 시간들. 갑자기 생겨난 공백 앞에 나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사실 퇴사일이 되기까지도 회사 업무 외적으로 소설가로서의 업무가 있었기 때문에 얼마간은 퇴사를 한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나를 둘러싼 상황들에 현실감이 없었다. 눈 뜨면 일하고, 일하고, 운동, 일하고, 눈 감고, 다시 눈뜨고. 그것이 상반기를 보내며 내가 겪었던 일상이었던 데다 좋은 기회가 되어 강연이며 출간 소식까지 연이어 준비되어 있던 시점이어서 정말로 정신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한 달에 한 번은 여행을 가겠다고 꾸역꾸역 여행 계획까지 세웠던 것이다. 퇴사일은 예정되어 있던 것이 아니었지만 휴가일은 한 달 전부터 계획해 놓은 것이었고, 원래대로라면 전주-남원-여수-목포를 차례대로 둘러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출발 일주일 전, 수화기 너머로 울음부터 터뜨리는 나를 보고 친구는 그저 첫날의 여행지로 정했던 전주에서만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했다.
언제나 퇴사를 원했지만 내게는 조금 억울한 면도 있었다. 나에게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불운하게 내게 문득 덮쳐온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퇴사 통보를 하기 하루 전날, 실은 누구에게라도 기대고 싶어 나는 체육관 탈의실에 푹 고개를 숙인 채 주저앉으며 조용히 눈물을 뚝뚝 흘렸다. 퇴사를 하기 전까지 사람으로 인해 병든 상처는 쉬이 낫지 못하고 신체적 반응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째로 반년이 되도록 생리가 멈췄다. 둘째로 런닝머신 위를 달릴 때면 무기력해지며 핑 도는 듯한 느낌이 났다. 힘이 들 때마다 뭐라 말은 못 하고 체육관 탈의실 안에서 무릎을 모은 채 몸을 웅크리며 시간을 보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봐야 현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고, 결국 나만 지겨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무의식 깊이 박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퇴사 전날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무기력함과는 별개로 자꾸만 눈물이 나고 마음이 불안정했다. 내게 있었던 모든 일들을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데 그런 걸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사실 사이에서 계속해서 갈등했다. 처음으로 떠올랐던 사람은 애석하게도 짧게 만났던 전 남자친구였고 역시나 ‘전’이라는 음절 하나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며 러닝머신 위를 올랐다. 휘청거렸다. 런닝머신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마침 친구에게 여행 계획으로 연락이 왔다. 숙소와 기차표를 예매하는 걸 제외하고는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아서 지금이라도 뭐라도 세워보자는 것이 친구의 첫 마디였다.
“있잖아, 나 너무 힘들어. 억울해.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내가 여기서, 이 시점에서 멈춰야 하는 거야? 왜 내가!”
마음을 숨기려 했지만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봇물이 터진 듯 울기 시작했다. 함께 여행을 떠난 친구는 나와 많은 이야기를,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수로 나의 내밀한 이야기들-연애, 회사, 등등-을 나눈 10년 지기 대학 동기다. 처음 퇴사에 대한 소식을 알렸던 것도 그 친구였다. 퇴사일이 정해지자마자 횡설수설하며 엉엉 우는 나를 보러 한걸음에 달려와 준 것도 그 친구였다.
그 친구와는 정확히 10년 전 여름에 함께 전주로 여행을 왔었다. 나는 노란 저고리를, 그 친구는 파란 저고리를 입은 채 ‘전주한옥마을’ 비석이 새겨진 곳 앞에서 사진을 찍은 기억이 있다. 수영장과 찜질방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던 곳에서 1박을, 나머지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다. 명동성당과 경기전, 다우랑만두와 길거리야. 모두 그 친구랑 한 입씩 노나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처음 전주를 방문한 이후로 약 10년이 흐른 후 우리는 또다시 전주로 여름휴가를 가기로 했었다. 그러던 와중에 퇴사일이 정해진 것이다. 친구는 그날 내 상태를 보더니 마음이 너무 좋지 않으면 여행을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잠깐 고민했지만 내 대답은 NO였다. 퇴사가 아니더라도 나는 전주로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달에 한 번씩 여행을 떠나며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셈해 보았다. 욕심을 버리거나, 마음을 비우거나, 혹은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재정리해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는 지금 내가 당장 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전주에서는 ‘통과의례’를 버리고 싶었다. 그 시점을 기준으로 세상을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의 미성숙한 부분 중 가장 고치고 싶은 것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음식을 빨리 먹다 못해 ‘생명유지’를 위해 섭취하는 수준에 가까웠다.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면 닭가슴살을 데워 먹는 걸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걸 씹어 먹고, 뒷정리를 하는 시간이 아까워 프로틴 음료를 몇 초만에 벌컥벌컥 마시고,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식사습관은 그 사람의 일상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나의 모든 시간을 천천히 담아두는 대신 스쳐 지나가려 했었던 것 같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사람.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지나쳐 설명하기보단 데이터로 증명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나중엔 프로틴 쉐이크를 흔드는 시간도 아까워 가루를 씹어먹으며 다녔으니 오죽했을까 싶다. 그런데 모든 이야길 할 순 없지만 그렇게 인정받고, 증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지난 5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내게 굳어질 수밖에 없었던 오류 중에 하나인 것 같다고, 이제는 솔직하게 탓하고 싶다.
전주에 머무르고 있던 4일 동안 이곳저곳을 잘 돌아다닌 것 같아 보였을 테지만 실은 대체로 숙소에 누워 있었다.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그게 아닐 때면 숙소 마당 앞에 마련된 작은 벤치에 앉아 그저 눈앞의 허공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비가 오던 날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처마 아래로 뚝뚝 떨어지던 빗물과 장식용 바위에 튕겨져 나가던 빗새들 말이다.
차오른 무기력은 내 마음과 달리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극복해 보려고 달리기를 하고, 카페에 나가 노트북을 펴 놓고 빈 종이를 노려 보기도 했다. 그러다 잠이 오면 엎드려 잠을 잤다. 작가인 친구가 글을 쓰는 동안 나는 그 옆에 한쪽 팔을 괸 채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 빠져 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그런 시간들을 전주에서 보냈다. 기운이 나면 관광지를 다시 돌아보았다.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었다. 무기력은 우울할 때가 아닌 행복할 때마다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