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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den Feb 09. 2024

멘땅에 헤딩기

디자인 전공생이 돌연 마케터가 된 이유를 서술하시오.

타이틀의 이름을 보고

걸리버 여행기라는 동화책이 떠오른다면 그거 아는가?

사실 걸리버 여행기의 원본은 신랄하고 잔혹한 성인용 동화책의 끝판왕이라는 것을! (두둥)

저자 Jayden의 멘땅의 헤딩기는 다행스럽게 잔혹동화는 아니다.

노동 집약적 동화이다.




바야흐로 때는 2018년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디자인을 전공하던 22살 Jayden은 3주간의 유럽여행을 떠난다.

여행지를 돌아다는 동안 그동안 내가 살아온 환경과 전혀 다른 환경을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의 결론이 도출하게 된다.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그리고 문답으로 이어진다.


비즈니스의 근본은 무엇인가?

→ 가치를 생산해 내어 이를 판매를 하는 전 과정을 통해 통해 이윤을 창출해 내는 것


그렇다면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가?

→ 잘 만들 수 있는 능력과, 잘 팔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나는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

→ 잘 파는 것


잘 판다는 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 마케팅이다.


아 마케팅을 배워야겠다.

마케팅은 어떤 방법으로 체득할 것인가?

마케터가 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


나를 어여쁘게 봐주던 디자인과 교수님께 부탁을 드렸다.

혹시, 경영학과에 아시는 교수님이 있으신가요?


그렇게 소개받은 교수님께 '대학교 3학년이 마케터가 되는 방법'에 대해서 여쭤보았고

교수님은 싱긋 웃으시며, '채용 사이트에 마케터 검색해 보고 지원해 보세요'라고 하셨다.

2학기 동안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준비했고, 서적과 구글을 뒤져서 뽑아낸 미약한 지식으로 비즈니스를 분석하는 나름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모든 광고 대행사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이 때는 회사를 볼 줄도 몰랐다. 그냥 마케터라고 쓰여 있는 모든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지금 이 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면 간절한 마음으로 사이드 브레이크를 강하게 당길 것이다.)


그중 한 광고대행사로부터 답변이 와서 면접 일정을 잡았고

이사님과 면접을 봤다.

어린애가 이력서 넣어서 궁금해서 불러봤다. 너 왜 왔냐 하시길래

정확히 11글자로 답변드렸다.

멘땅에 헤딩하러 왔습니다.


1주일 뒤, 합격 통보를 받았고

그렇게 마케터가 되었다.

(후문으로 들어보니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았다고..)


그때 당시에는 나름 사옥을 가지고 있는 회사의 마케터로 일 해볼 수 있다는 것에 큰 행복을 느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마케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뽑은 이유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급한 업무를 처낼 노동력이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광고주는 짱짱했다.

브랜드 2팀 소속으로 우리 팀은 '현대카드'와 '현대 캐피탈'의 광고를 대행했고,

나는 DA광고 소재 기획, 영상 스토리 보드 기획, 영업사원 전단지 스토리 기획 등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한 영역과 데이터 정리 등 단순 반복 일들을 진행했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그냥 시키는 대로 일 했다.

신규 업체 비딩을 위한 덱작업을 위해 밤을 새운 적도 있었고(난 아무 도움이 안 되는데, 팀장님과 과장님, 대리님이 밤을 새야 해서 그냥 같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HR 담당자님께 불려 가 신입사원은 두 달간 정장을 입고 다니라는 소리에 spa브랜드 정장을 급하게 구매한 경험도 있다. 이사님이 홧김에 던진 볼펜이 팀장님을 맞고 바닥에 구를 때의 그 침묵도 기억난다.


그렇게 9개월을 보내고 인하우스로 이직을 하며 광고대행사에서의 첫 마케터 일을 마쳤다.

신생아 마케터 Jayden이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은 다음과 같았다.


비즈니스 단에서는,

- 큰 규모의 기업은 내부에서 마케팅을 전부 하지 않고, 일부는 외주를 주는구나.

- 큰 규모의 기업에서 마케팅을 하려면 대행사 생태계를 잘 알고, 잘 다룰 줄 알아야겠구나.

- 대행사들은 대부분 매체 관리 및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는구나.

- 돈이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실무 적으로는

- 금융권에는 이런 마케팅이 필요하고, 마케팅 활동을 위한 절차(여신 심의 등)가 요구되는구나

- 실무 안에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이 되어야 하는지

- 어떤 이슈가 발생되었을 때는 어느 담당자를 찾아야 하는지


등등 전방위 적으로 얇게 핥았다.




뭐 이렇게 마케터가 되었다.

이 노동집약적 동화는 아직 완결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치고 배우고 실패하고 얻고 하지만 

꾸준한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며 성장하고 있다.


아무쪼록 이 동화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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