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야기 속에 살아간다.
사건의 중심에 있길 원하며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단서를 찾는다. 사랑은 하나의 사건이다. 어떤 이름이 내 이름 옆에 붙어서 일어나는 사건. 그것은 새로운 언어다. 그 언어가 주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진다. 가끔 진위를 가려내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나를 정말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나 혼자서 사랑하고 있는 건지. 하지만 사랑은 누군가의 언어로 침투하는 것이다. 동의를 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너의 이름 옆에 내 이름을 적어 넣는 일이다.
그날 그녀와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하는 말 하나하나를 다 먹었던 것 같다. 처음 듣는 낱말이 많았다. 색이나 촉감마저 낯설었지만 좋았다. 계절은 꽃을 피우지 않고도 이렇게 열매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서른이 넘어서야 알았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그녀는 청춘의 순수한 생동감이었다. 김경주 시집처럼 또렷하게 내 기억에 박히게 되었다.
'너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한동안 이 세계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계절은 이 세계는 몸과 마음을 갈아입었다. 그런 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난 나는 몰래 핀 곰팡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나를 인식하는 일은 괴로운 일이다. 그 괴로운 일을 의식하게 되면 줄곧,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녀를 만나고 나서 달라졌다. 그녀의 세상에는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있었다,라고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거기에는 나라는 계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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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_김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