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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시에르 Oct 11. 2024

불안의 빛

묻지 못한 안부마저 안녕하신가요

내가 느끼는 불안은 누군가가 오래전부터 미리 정해둔 단어가 아니었다. 비가 갓 그친 후 젖은 골목에 선 가로등 불빛처럼, 갑자기 내 앞에 불쑥 나타났다.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길 기다릴 때도, 아슬아슬하게 내 곁으로 다가왔고, 때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 내 마음 한편을 슬며시 스며들며 파고들었다. 우리가 각자 다른 무대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불안은 어느새 우리의 경험을 조용히 하나로 묶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겪는 것이 같지 않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더 불안한지도 모르겠다. 예상치 못한 것을 불안이라 부를 때, 그 떨리는 ‘불’ 자를 꼭 붙잡기 위해서라도, ‘안’ 자를 제대로 발음해야 할 것 같았다.




예민함과 민감함, 그 두 단어에 대해 한동안 생각해 본 적 있다. 예민함은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한 가닥씩 분리해 받아들이는 섬세함을 말한다. 반면 민감함은 그 자극을 받아들일 때, 내 안에서 반응하는 작은 진동 같은 거다. 불안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온다. 예민하게 찾아와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든다. 하지만 일상 속 불안은 그 예민함과 민감함이 서로 침투하고 뒤엉키며 터져 나온다. 분리될 수 없는 감정들이 서로를 파고들어 하나의 불안으로 만들어낸다.




우리의 오감은 인식 속에 갇힌다. 나는 인식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해 줄 거라 믿고 있다. 인식이 오감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육감도 다르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인식을 너무 깊이 들여다보는 순간, 그 존재는 사라져 버린다. 인식을 인식하는 순간, 더 이상 인식할 수 없게 되는 아이러니. 아마도 우리는 인식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알게 될 때, 그것이 위험할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안은 그조차 인식하지 않으려 한다. 마치 육감이 낳은 사생아처럼, 우리에게서 숨겨진 무언가를 들킬까 두려워하는 듯했다. 인식하지 못한 것들은 무지에서 발생한다. 불을 켜면 불안은 바로 사라지지만, 정오의 밝은 대낮에 나타나는 그 무언가는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분명히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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