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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를 돌보는 마음

얼마 전 신랑 친구네서 달팽이 여섯 마리를 분양받았다. 딸아이는 놀다가도 후다닥 달려가 달팽이들의 안위를 살피며 교신했고, 밥을 먹을 때도 같이 먹어야 한다며 그들을 챙겼다. 예를 들어 상추 한 장을 찢어서 넣어주는 식이다. 달팽이들에게 무언가라도 하나 더 챙겨주려는 모습을 볼 때면 피식 웃음이 난다. 그때마다 나 역시 달팽이들에게 시선이 가는데, 제대로 된 집이 없는 게 마음에 걸렸다.   


   

신랑 친구네서 거하게 놀다가 집에 돌아온 시간은 토요일 저녁 12시경이었기 때문에, 일요일 오전에 다이소에서 곤충채집통을 사면 되겠거니 생각했었다. 다음 날 들뜬 마음으로 딸아이를  데리고 위풍당당하게 다이소에 갔는데, 곤충 채집통은 시즌 상품이라 없다고 했다.      


'어쩌지? 오늘은 넷째 주 일요일이라 이마트도 쉬고, 동네 문구점도 닫는데?!'   

   

모녀는 빈손으로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답답한 마음에 달팽이집 세트를 인터넷으로 보고 있는데, 구태여 오프라인으로 살 일인가 싶었다. 버튼 하나면 다음 날 문 앞에 택배가 오는 세상이 아니던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지체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달팽이집 세트는 다음 날 로켓처럼 배송될 것이다. 대체공휴일이던 월요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배는 늦은 오후에 도착했다. 딸아이는 아침부터 친구네 집에 놀러 가 부재였다. 세연이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었겠지만, 한시라도 빨리 넓은 집으로 옮겨주고 싶었던 나는 신랑과 소매를 걷어 올렸다.      


달팽이집을 씻은 후 코코피트(흙의 종류)를 깔고, 구성품으로 딸려온 나무와 사료그릇을 넣어줬는데 집이 꽉 찼다. 해도 해도 너무 좁았다. 현자 같은 표정으로 허리를 곧게 펴고 고민하던 나는 신랑에게 나무를 반으로 가르자고 제안했다. 그는 비장한 눈빛으로 검지 손가락 두께의 잣대처럼 생긴 쇠톱을 가져왔다. 무뎌진 톱날을 보면서 속으로 신음했다. 끙. 역시나 십여분을 끙끙댄다. 마음 같아선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에 기다려주기로 했다. 기어코 그는 해냈고, 위풍당당한 미소를 띄우며 두 동강 난 나무를 내게 건넸다. 하나는 세우고, 하나는 눕혔더니 여유 공간이 생겨 한결 나아 보였다.   



    


저녁 늦게 돌아온 세연이는 신바람이 나서 달팽이집 옆에 찰싹 붙어 앉았다. 자기 전에도 발치에 갖다 놓더니 달팽이 여섯 마리와 교신하느라 분주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한 번씩 손수 만지며 굿나잇 인사를 나누려던 딸은 그만 뚜껑을 열다 달팽이집을 엎어버렸다. 옆에서 둘째를 재우고 있던 나는 세연이 주변에 떨궈진 흙이 눈에 들어왔다. 둘째가 잠들려는 찰나에 일어난 일이라 화가 왈칵 올라왔다.

    

"엄마 동생 재우는 중이니까. 흙 대충 담고, 아빠한테 가지고 가서 정리해달라고 해!!!!!!!!!"     


아이의 놀란 마음을 다독여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고단했던 하루의 마무리가 늦어질 거라는 생각에 화가 났고, 둘째가 막 잠들려는 찰나에 일어난 일이라 짜증 났고, 신랑과 내가 정성 들여 꾸민 집이 반나절도 안돼 엉망이 된 게 허망해서 그러기 싫었다. 신랑이 도와줘서 상황이야 일단락 났지만, 딸과 나의 감정은 언짢게 꼬여 버린 채 밤은 깊었다.         


 

자고 일어나니 안 좋던 감정은 누그러져 있었다. 딸아이가 일어나면 용서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달팽이들을 살피러 갔는데 몸이 굳어버렸다. '응? 한 마리 어딨지?' 달팽이들을 꺼내보기로 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코코피트를 퍼내며 살펴봐도 한 마리가 없었다.  


    

딸아이가 깨기 전에 어제의 사건 현상을 뒤져봤지만 안보였다. 마침 딸아이는 깨났고, 이 사실을 알렸더니 벌떡 일어나 내가 그랬던 거처럼 사건 현장을 샅샅이 뒤진다. 그러나 어디에도 흔적은 없었다. 세연이에겐 티를 내진 않았지만, 슬픈 예감이 들었다. '달팽이들은 습한 곳을 좋아한다던데... 밤사이에 바깥에 있었으니 말라죽은 건 아니겠지?!!!' 괜히 가져와서 작은 생명을 훼손시킨 거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달팽이를 기를 자격이 없다며 자책하는 딸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달팽이가 하늘나라로 가지 않았을 거라 애면글면 위로했다. 등교를 준비하면서도 여러 번 둘러봤지만, 첫째는 결국 어깨가 축 쳐진 채 등교할 수밖에 없었다.  


    

딸아이를 보내고, 둘째 기저귀를 갈아주고,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나도 마저 옷을 갈아입기로 했다.(요새는 옷을 갈아입을 여유가 생겼다) 안방 바닥에 떨어져 있는 청바지에 발을 집어넣는 순간! 그 순간!! 사무라 치게 놀라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바지 밑단에 엄지손톱만 한 검은 형체가 붙어 있었는데! 달팽이었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기가 무섭게 반가웠으나 다급해졌다. 톡톡 건들어 봐도 달팽이집으로 들어간 얼굴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살살 떼내기로 했다. 점액 같은 게 청바지에 말라 붙어서는 드드득 거리는 느낌과 함께 떼어졌다. 약간의 꿈틀거림도 없자 냉큼 달팽이 집에 넣어준 후 건조하게 마른 몸에 분무기를 뿌려줬다. 왠지 그래야 할 거 같았다.       


     

5분이 넘어도 까딱도 하지 않았다. 불길했다. 계속 쳐다보고 있다간 둘째 등원 시간이 한없이 늦어질 거 같아 냉큼 일어났다. 집을 나서기 전에 한 번 더 살펴볼 요량으로 다가갔는데, 꼼짝도 안 하던 달팽이가 더듬이와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더군다나 옆면을 타고 올라갈 때는 안도했다. 고비는 넘겼구나. 이 사건 이후로 딸아이는 달팽이를 만질 때 조심한다. 나 역시 없었던 마음이 생겼다. 연약한 작은 생명을 무탈하게 지켜내겠다는 책임감 같은 거랄까. 달팽이를 만지는 걸 무서워하던 나였지만, 이젠 똥을 치우기 위해 여섯 번이나 달팽이를 집어서 옮긴다. 딸아이처럼 집안을 오다가다 작은 생명 앞에 멈춰 서기도 한다. "잘 있지? 얘들아?!"


     

역시나 첫째는 달팽이에 대한 관심이 5일도 안돼 한 풀 꺾였고, 그만큼 내가 쪼꼬미들을 챙기며 돌보게 되었다. 밥을 주고, 똥을 치우고, 촉촉하게 분무기를 뿌려주다 보면, 연하고 부드러운 작은 생명을 돌보는 일에 애정이 쌓인다. 살아 있는 존재를 돌보는 일을 성가셔하던 나였으나, 무언가를 돌보고 키운다는 게 어떤 마음인지 헤아리면서, 키우지 않았다면 몰랐을 감각을 익혀나가는 중이다. 낯설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다.

마치 엄마가 되던 처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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