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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Jun 13. 2019

유튜브 시대, 기자(記者)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취재원과 독자 연결해주던 전통적 '브로커' 역할이 사라지고 있다

뉴스 시장에서 '기자(記者)'의 역할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은 취재원과 독자(혹은 시청자)를 연결해주는 '중개인'으로서의 역할이다. 정부나 기업의 고위관계자, 주요 사건의 수사 담당자 혹은 피의자 본인 등 대중이 관심을 갖고 있지만 직접 접근하기 어려운 취재원과 접촉해 정보를 뽑아내고, 그걸 독자들에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기자는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일반국민(독자/시청자)  <----- 브로커(기자) ----->  취재원(국회의원, 검찰/경찰, 주요 사건 관계자 등)



하지만 '브로커'로서 기자의 중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최근 주요 취재원들이 브로커인 기자를 거치지 않고 일반 대중과 직거래(直去來)에 나서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의 위상(位相)은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받는 측면이 크다. 당연히 한 나라의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정치권을 담당하는 정치부 기자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정치부 기자 중에서도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에겐 '1호 기자'라는 별칭이 붙는다. 한 국가에서 최고의 취재원은 최고 권력자일 수밖에 없고, 대통령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최고 권력자는 당연히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최고 권력을 쥐고 있는 미국에서도 백악관 출입기자의 위상은 높다. 하지만 최근 미국 '1호 기자'들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핵심 취재원인 대통령(도널드 트럼프)이 트위터를 통해 국민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직접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종 백악관 기자실에 들러 기자들을 만난다고 하지만 중요한 내용 대부분을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쏟아낸다. 브로커인 기자가 필요 없어진 것이다. 


미국만큼 극적이진 않지만 국내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청와대는 자체 유튜브 채널을 열어 주요 의제를 국민들에게 직접 전달하고 있다. 정부 부처에도 대국민 직접 채널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주문한다. 언론을 거치지 않고 국민과의 직거래를 늘려 나가겠다는 얘기다. 


정부에게 언론, 특히 비판적인 언론과의 관계는 마지못해 하는 '적과의 동침'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분명히 '아'라고 말한 것 같은데 언론은 이걸 '어'라고 해석해 내보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정부 입장에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왜곡'(이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해석이다)은 언론이란 '브로커'를 이용하는 데 따르는 일종의 '수수료'인 셈이다. 정부가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서있는 언론이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일부러 사안 왜곡한다고 생각할수록 언론이란 필터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육성을 직접 내보내고 싶은 욕구는 커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정부가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실어 보낼 채널이 마땅치 않았다. 미우나 고우나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기성 언론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유튜브(혹은 '1인 미디어') 시대가 열리면서 취재원이 직접 시청자(독자)와 접촉하기가 쉬워졌다. 굳이 브로커와 접촉해 '수수료'(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왜곡')를 지불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직거래를 선호하는 건 정부뿐만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앞다퉈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기업이 직접 유튜브 영상을 제작해 제품 홍보나 이미지 개선에 나서는 것도 언론이란 필터를 거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처럼, 예전 같으면 자신의 존재를 꽁꽁 숨기려고 했던 내부고발자가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직접 개진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일부 유명 유튜버들의 활약은 기존 언론사의 입지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최근 유튜브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놀랐던 점은 '영국 남자'(구독자 310만 명)나 지오디 멤버 박준영(구독자 190만 명) 같은  경우, 해외 유명 스타들이 영화 홍보차 내한하면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시간을 배정받아 인터뷰를 한다는 점이다. 

영국 남자의 경우 최근 영화 '맨 인 블랙'의 주연인 '토르' 크리스 햄스워드를 단독으로 인터뷰하러 인도네시아 발리까지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홍보가 목적인 취재원(영화배우) 입장에선 기껏해야 구독자 수가 수십만 명인 기성 언론보다 수 백만 구독자를 보유한 개인 유튜버가 보다 효과적인 홍보수단이 될 수 있는 만큼, 과거에 비해 언론사란 '브로커'에 기댈 유인이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그동안 기자의 중요한 역할이었던, 취재원과 독자 사이를 연결해주는 '브로커' 기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기존 언론엔 어떤 역할이 요구되는 것일까. 굳이 기성 언론이 아니더라도 주요 이슈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독자들이 언론을 통해 뉴스를 소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점점 독자와 시청자는 줄고 그에 비례해 영향력(개별 언론사 입장에서)과 수익은 감소하고 있는 대다수 언론사들로선 이같은 질문 앞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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