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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섭 May 15. 2020

사람들은 왜 부부의 세계에 열광하는가

부부의 세계라지만 사실 동물의 세계가 아닐까

부부의 세계는 흔히 막장드라마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불륜'을 소재로 한다. 그럼에도 스카이 캐슬의 인기를 갈아치울 만큼 (스캐 23.8% / 부부의 세계 24.3%) 시청률 고공행진 중이다. 대체 무엇이 사람들이 열광시키는가? 나는 그것을 부부의 세계가 기존 막장드라마와의 차이점에서 찾았다.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는 분명 구미가 당기는 소재이니, 풀어가는 방법이 다르다면 그것이 분명 인기 요인일 거라 생각했다.



1. 심리 묘사

이 드라마는 치정극의 중심에 있는 세 인물, 지선우(김희애 분) - 이태오(박해준 분) - 여다경(한소희 분)의 심리를 심도 있게 묘사한다. 아마 이 점이 아침드라마와 저녁 일일 연속극의 불륜과는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특히 드라마 1~6회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추측하고 확신하고 배신감을 느끼고 복수를 계획하는 지선우의 심리, 감정의 변화가 중심이다. 이렇게 변화된 감정으로 복수를 위해 계획을 착착 실행해나가는 지선우와 이태오-여다경의 미묘한 심리전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첫 주 1,2회 방영분을 보고 정주행했던 만큼 초반부의 힘은 지선우의 심리 연출과 그를 표현하는 김희애 배우님의 연기가 크지 않았나 싶다. 여기에 그 쓸쓸한 분노의 심리를 배가 시킨 것이 OST였는데, 개인적으로 김윤아 님의 고독한 항해와 손승연 님의 sad가 가장 좋다.


부부의 세계 2회 이태오 생일파티 씬.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인상 깊다. 


지선우의 계획에 몰락한 이태오와 여다경은 2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고산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7회부터인데, 쉽게 말해 1~6회가 1라운드였다면 이제 2라운드 대결이며, 드라마 구조 상 phase 2인 셈이다. 여기서의 핵심은 아무래도 지선우에 대한 복수를 계획하고 왔다가 변화하는 이태오의 심리라고 할 수 있는데, 결국 이로 인해 여다경의 불안한 심리, 또 그로 인해 아들 준영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흥미로운 포인트다. 특히나 이태오가 지선우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박인규(이학주 분)의 죽음인데, 이 에피소드(11화)는 그간의 심리 위주의 연출이 아닌 추격전을 통한 서스펜스의 발생이 중심이었다는 점에서 여러 시청자들에게 비판의 지점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다음 에피소드(12회)에서 박인규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이 이태오가 지선우에 대한 감정이 변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또 그로 인해 여다경이 불안감을 느껴 아들 준영을 이용해 새로운 갈등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들의 교묘한 심리전이 다시 드라마의 중심이 되었다는 점에서 외려 드라마틱한 사건을 감정 변화를 위해 잘 사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하나의 특이점은 phase 2는 아들 준영(전진서 분)이 극 전개의 중심에서 키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혼한 부부가 자식을 핑계로 줄다리기를 하는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는 아들의 심리가 그래서 더욱 부각되지 않나 싶다. 때문에 시청자들은 지선우에게 모질게 구는 준영에게 화가 나면서도, 그 나이 때 어린애가 그런 일을 겪으니 불쌍하다는 등의 이중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요약하자면 갈등의 소용돌이에 있는 주연 캐릭터들의 요동치는 감정과 심리들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시청자들을 설득하고 이 드라마에 빠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인 셈이다.



2. 예측 불허의 전개

앞의 언급한 심리 묘사가 캐릭터들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시청자들의 공감을 유도했다면, 예측 불허의 전개는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쉽게 말해 드라마의 사건들이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지선우가 이태오 친구 손제혁(김영민 분)과 자고 그의 아내 고예림(박선영 분)에게 까발리는 것이나 이태오와 지선우가 다시 키스하고 잠자리를 가지는 것, 또 그것을 아들 준영이 보는 것들 등. 특히나 지선우-이태오의 재결합은 이혼한 부부가, 게다가 서로 밑바닥까지 다 본 부부가 아직 서로에게 감정이 남았다는 것은 사실 나로서는 공감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그럴 수도 있구나'라는 충격적인 사건 정도로 수용할 수 있었다. 분명 현실성 있냐에 대해서는 의문이고 만약 그렇다면 드라마보다 더한 충격을 줄 것이지만 이를 별개의 문제로 치부하자면, 아마 드라마로서 이 지점이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포인트일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 MSG가 팍팍 들어갔지만 중독성 때문에 계속 찾게 되는 마라탕처럼 말이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둘의 재결합 씬.


예측을 뛰어넘는 사건을 두 가지 더 꼽자면, 지선우가 아들 준영 앞에서 이태오에게 맞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계획한 장면과 박인규의 죽음을 들 수 있다. 전자를 통해 지선우가 이 정도로 지독한 캐릭터다 임을 느낄 수 있고, 후자는 결국 사람 하나가 죽었다는 점에서 사건이 수습 불가할 정도로 커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사건 하나하나가 비약이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의 선에서(이는 분명 앞에서 언급한 캐릭터들의 심리 묘사 덕분일 것이다) 충격적이기에, 한 주 한 주 오늘은 또 어떤 매운맛이 있을까 하고 기다리는 묘미가 있다.


그리고 이 예측 불허의 전개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조연 캐릭터들이다. 사실 이 드라마는 지선우-이태오-여다경 세 인물 간 갈등의 드라마이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주변인들의 다양한 인간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재미다. 특히나 정해진 네 편 내 편 없이 자신의 욕망과 처지에 따라 행동하는 캐릭터들(대표적으로 설명숙, 고예림)은 외려 드라마를 현실적으로 보이게끔 한다.


따라서 점점 커져가는 갈등은 시청자가 드라마에 몰입하게끔 하는 주요 포인트며 그 과정에서 현실적인 조연 캐릭터들은 드라마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드라마가 자극적이면서 몰입도가 높고 인물들에게 이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하지만, 그 점을 차치하고 의문이 드는 지점들이 있다. 첫째, 왜 여기 나오는 남자들은(대표적으로 이태오, 손제혁, 박인규)죄다 쓰레기인가? 둘째, 그럼에도 왜 이 쓰레기 같은 남자들을 여자들은 잊지 못할까? 셋째, 불륜 피해자(지선우)는 모든 것을 잃었는데 권력을 등에 업은 가해자(이태오와 여씨 일가)는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여러모로 인간애적인 측면에서도 사회적 측면에서도, 마라탕의 뒷맛은 씁쓸하다. 더욱이나 고산 사람들이 지선우를 바라보는 시선이 우리 사회가 이혼녀를 어떻게 바라보는 가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중에서도 대중의 공분을 가장 많이 산 것은 아무래도 폭력적인 장면들이 아닐까 싶다. 이태오가 지선우의 머리를 잡아 던지는 씬이나 박인규가 지선우를 폭행하는 장면을 VR 게임처럼 연출한 씬들이 그렇다. 드라마 내에서 강조가 필요한 씬이긴 하나 적나라한 묘사가 아니라 생략을 통한 점프컷으로 보여줄 여지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강자가 약자를 폭행하는 장면 연출은 윤리적 측면에서 좀 더 고민하고 고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잦은 폭력으로 결국 극 중 사망으로 퇴장한 박인규.


동백꽃 필 무렵의 임상춘 작가는 항상 해피엔딩으로 드라마를 마무리한다고 한다. 현실에서는 채울 수 없는 판타지를 드라마를 통해 이뤄보려는 것이기 때문일 테다. 개인적으로 나 또한 부부의 세계의 끝이 지선우의 통쾌한 복수의 완성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워낙 롤러코스터를 타는 드라마라 어떻게 결말이 맺을지는 짐작 불가다. 단 2회가 남은 만큼 어떤 결말을 맺을지 또 막방 시청률은 얼마나 찍을지, 이번 주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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