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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후쿠오카 아트북 엑스포

작은 책, 긴 여정의 시작

by 행복의 진수 Mar 19. 2025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내려앉을 때, 창밖으로 후쿠오카의 바다가 펼쳐졌다. 처음 본 일본의 바다였지만 왠지 그리 낯설지 않았다. 후쿠오카 아트북 엑스포 참가 확정 후, 석 달 동안 준비한 끝에 드디어 이곳에 도착했다. 기존 네 종의 미니 사진집에 신작 네 종을 더해 총 여덟 종의 작은 책들을 가져왔다. 타이베이 아트북페어 이후 두 번째 해외 행사. 여전히 긴장되었지만, 설렘이 더 컸다.

 행사장인 ‘Artist Cafe Fukuoka’는 오호리 공원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일본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부스를 꾸리는 손길들이 분주했다. 이번에도 한 팀으로 참가한 수박와구와구, 꽃기린 작가님과 함께 부스를 정리하며 준비를 마쳤다. 내가 만든 사진 책들이 국경을 넘어 새로운 독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일본 사람들은 사진도, 귀여운 것도 좋아하니까 내 책도 많이 팔릴 거야!’ 부푼 기대를 안고 첫날을 맞이했다.

왼쪽 아래 미니 사진집 8개가 내 책들!

 행사 첫날이 3월 14일 화이트데이여서 한국에서 돌사탕 두 봉지를 챙겨왔다. 부스를 들른 사람들에게 "아메 다이조부데스까?"(사탕 괜찮으세요?)라고 조심스레 말을 건네며 사탕을 나눠줬다. 아이들이 지나갈 때는 꼭 불러서 손에 쥐여주었는데, 마지막 날 한 일본 소녀가 답례로 하이쮸 한 봉지를 건넸다.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워서 나도 내 책을 선물했다. 낯선 나라에서 작은 사탕 한 알이 만들어낸 인연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가방에 간식을 잔뜩 넣어서 한국에서 온 작가님들에게 나눠줬던 일본 소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둘째날 오픈 전 행사장 전경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부스를 꾸미고 오후 3시부터 10시까지 일정을 소화했던지라 둘째 날 오전에는 전날의 피로가 덜 풀려 몸이 무거웠다. 하지만 한 권, 두 권 책이 팔릴수록 온몸에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뭔진 몰라도 호랑이 기운이 솟아났다!

 서툰 일본어로 파파고를 보며 더듬더듬 설명하고 있는데,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일본 분이 찾아왔다. 한강뷰에서 사는 게 꿈이라고 해서 "그럼 제 사진집을 사면 매일 한강을 볼 수 있어요!"라며  『한강』을 강매(?)했다. 농담 반 진심 반이었는데, 결국 그분은 웃으며 책을 사 갔다.  


 표지가 독도 앞 바다인 『물색』도 대만에 이어 일본 데뷔를 했다. 중년 일본 남성분이 "어디냐?"고 물어봤을 때, 떨리지만 당당하게 "독도"라고 말했다. 곧이어 사진을 좋아한다는 일본 남학생이 『물색』을 구입했다.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작가분을 우연히 만나는 행운도 있었다.  『행복의 진수』에 수록된 사진 중,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픽셀로 그려진 작품이 있다. 내 책을 보던 한 일본 관람객이 "이 그림을 그린 작가님이 바로 옆 부스에 있다"라고 알려줬다. 알고 보니 그 작업을 한 주재범 작가님이 왼쪽 부스에 계셨다.


 오른쪽 부스에는 트위터에서 팔로우하고 있던 페이퍼 아티스트 오리넉울 작가님이 계셨다. SNS에서만 보던 작가님들과 이렇게 우연히 이웃이 되다니! 세상이 이렇게 좁았다.

처음 온 일본 여행에서 옆 부스가 트위터에서 팔로우하던 - 부끄러움이 매우 많은 -  페이퍼 아티스트 트친인 건에 대하여


 셋째 날에는 김두만 작가님을 만났다. 유어마인드에서 2025년 빨간날 미니북을 보고 ‘정말 기발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걸 만든 분이 관광차 후쿠오카에 왔다가 행사 포스터를 보고 우연히 방문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봤던 창작물을 만든 사람을 일본에서 마주한다는 것, 이 역시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북페어에 올때마다 빼먹을 수 없는 초상화 그리기도 했다.

      

 대만 아트북페어는 마치 성수동처럼 온갖 힙한 패션피플들이 모인 느낌이었다. 반면, 후쿠오카 아트북 엑스포는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많았다. 갓난아기를 안고 오거나,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들이 눈에 띄었다. 부모와 함께 온 어린아이들이 책을 만지작거리며 호기심을 보일 때마다,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후쿠오카에서의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마지막 날엔 8시 50분 비행기를 타야 해서 아쉽지만, 행사 마감 시간보다 일찍 나와야 했다. 소소나 님이 "한국에서 온 작가들끼리 기념사진을 찍자"라고 제안해 주셔서 3시에 다 함께 모였다. 한국 사람답게 후다닥 모여 사진을 찍고, 각자의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본 후쿠오카의 야경은 유난히 따뜻해 보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만드는 일,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내놓는 일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이 마냥 신나고 즐겁다.

ⓒ 스튜디오소소나(@sosona_made)


감동적인 인증과 후기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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