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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는 없다는 첫째 조카에게

그런데 있잖아… 외삼촌 별명이 ‘소산타’야

by 행복의 진수

“산타? 없잖아. 나 안 믿어. 그거 외삼촌이잖아.”

첫째 조카 서연이가 말했다.

“나는 산타 믿는데.”

옆에서 둘째 조카 서훈이가 거든다.

“그럼 서연인 산타 안 믿으니까, 선물 안 줘도 되겠네? 서훈이만 크리스마스 선물 받겠다.” 일부러 능청스럽게 말하며 아이들 얼굴을 번갈아 본다. 서훈이는 눈이 더 동그래지고, 서연이는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산타가 없다니,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빨간 옷을 입고 하늘을 나는 존재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누군가를 위해 몰래 선물을 준비하는 마음까지 없다는 뜻이라면 그건 틀린 말이다. 외삼촌 별명이 ‘소산타’거든.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으므로 어머니를 대신 내려주셨다”라는 말처럼, 산타가 전 세계를 하루 만에 다 돌 수 없으니 외삼촌이 있는 거야. 산타를 믿는다는 건 결국 신적인 존재를 믿는 일이 아니라, 세상 어딘가에 이유 없이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 있다는 걸 믿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늘 친절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친절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같은 거.


반면 서훈이는 아직 그 모든 걸 그대로 믿는다.

“산타 할아버지한테 뭐 달라고 빌었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좀 비싸. 아이폰 17, 닌텐도 스위치 2, 람보르기니!”

“서훈아, 산타 할아버지가 요즘 많이 힘들대…”

가난한 산타 외삼촌은 서훈이를 위해 미스터비스트 초콜릿 8종 세트를 미리 주문해 뒀다.

“외삼촌! 미스터비스트 초콜릿이 짜장면 보다 더 맛있어!”

어느 정도로 맛있는 건지 감히 상상도 안 된다.


가끔 성경 속 오병이어의 기적을 떠올린다. 세상에 없는 음식을 뿅! 하고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라기보다, 아주 적은 것도 서로 나누는 순간 모두가 배부르게 되는 마음의 은유라고 생각한다. 산타 역시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다. 없는 선물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의 작은 마음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이야기.


그래서 산타는 실존하지 않아도 매년 다시 나타난다. 어떤 집에서는 부모의 손끝에서, 우리 집에서는 외삼촌의 밤중 발소리에서, 또 어느 집에서는 이름 없는 누군가의 익명 속에서. 친구에게 아무 말 없이 건네준 간식 하나, 슬퍼하는 사람 곁에 조용히 앉아 준 시간 한 토막, 동생에게 양보한 마지막 과자 한 조각, 그것들은 크기만 다를 뿐 모두 같은 성질의 선물이다. 산타는 믿음이 아니라 태도에 더 가까운 존재다. 산타를 믿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산타가 남긴 온기까지 잊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서연아, 너는 이제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에서, 선물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사람 쪽으로 한 걸음 옮겨 와 있구나. 그건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지켜주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뜻이기도 하지.


올해 크리스마스 아침, 서훈이는 초콜릿 상자를 끌어안고 세상을 다 얻은 얼굴로 소리를 지를 것이고, 너는 그 옆에서 “이거 외삼촌이 준거지!” 하며 초를 치겠지. 산타를 믿지 않는다고 말해도 괜찮아. 다만 누군가를 위해 몰래 무언가를 준비하는 마음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는 매년, 아니 매일 이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외삼촌이 ‘소산타’가 되어 두 아이의 크리스마스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만은. 그냥 다 알지 않아도 좋으니, 가끔은 떠올려 주었으면 좋겠어.


세상 누구보다 서연이, 서훈이를 사랑하는 소산타 외삼촌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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