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피커 안작가 Dec 28. 2023

테스형, 너 자신을 알라?

나대다 보니 나 되었다 2

소크라테스가 실제로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소크라테스가 했든, 안 했든 철학을 공부하지 않았던 사람일지라도

저 말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저 말로 인해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시작되었고

저 말로 인해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끝이 난다.     


“나는 나 아닌가? 너 자신을 알라?”

너무 황당하고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 같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 때는 내가 나 같지만,

어떨 때는 나의 모습을 보며 ‘이게 나라고?’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는 걸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저 말의 완벽한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저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가 가장 나답다고 생각할 때와 내가 가장 나답지 않다고 생각할 때를

비교해 보면 어느 정도 저 질문에 답할 수 있지 않을까?     

가장 나답다고 느낄 때는 아마도 내가 꿈꿨던 일, 나의 버킷 여행지 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며 아이처럼 해맑게 보냈던 시간 아니었을까?     


반대로 가장 나답지 못했을 때는 아마도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닌데?’

‘내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아닐까?     


어른들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 싫은 일만 하며 살 수도 없는 것 아닌가.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드러커는

(세상에는 참 아버지가 많은 듯, 의학의 아버지, 음악의 아버지, 과학의 아버지)

‘너 자신을 알라’가 ‘너 자신의 시간을 알라’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저 이야기를 듣고 보니 너 자신을 알라는 건 원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기에

너의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너 자신을 알라는 네가 죽는 존재라는 걸 알기에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너답게 살아라는 뜻!

(철학자가 아닌 내가 내린 결론이다)     


가장 희소하면서 리필이 되지 않는 게 시간이다.

결국 제한된 시간만 살 수 있는 존재라면,

낭비되는 시간(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 시간 분석의 실패)을 줄여야 한다.

그렇게 낭비되는 시간만 줄일 수 있다면

그 낭비되는 시간에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확보된 시간을 통해 자기 계발을 한다면

하기 싫은 일에 낭비되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게 되면서

결국에는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너 자신을 알라 -> 너 자신의 시간을 알라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돈도 벌고,

내가 하고 싶었던 여행도 더 많이 다닐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을 이 세상에 있게 해 준,

부모님과의 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너 자신을 알라.

그러니, 너 자신의 시간을 알라.

그러니, 너 존재 가치를 알라.

이전 06화 유일하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단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