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강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고, 부드럽지 않으면 살아갈 자격이 없다' - Raymond Chandler
살아갈 수 없는 것이 문제일까? 살아갈 자격이 없는 것이 문제일까?
스무살, 무작정 대학 입학 하나만 바라보며 살다가 처음으로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뭐랄까, 모든 것을 얻었지만, 모든 것을 잃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책이라는 것을 읽으면 갈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책을 집어들었다. 그 때 한창 인문고전 바람이 불었던 탓일까, 집어든 책이 하필? 논어, 맹자, 순자, 성학집요와 같은 책들이었다. 내 속에 선비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인지 그들의 생각이, 삶이, 철학이 깊이 와닿았고, 결국 동양적 군자사상은 내 삶에서 중요한 가치관이 되었다. 그들은 말한다. 의롭게 살라고. 부드러워야한다고.
그래서인지 나는 현실적인 부분이 부족해도 속이 깊고, 남을 잘 배려하고, 이타적이고, 의로운 사람을 멋진 사람이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고 많이 가졌어도 생각에 깊이가 없다면, 인품이 의롭지 않다면 많은 걸 아는, 많은 걸 가진 바보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사회는 글쎄, 그런 사람들을 멋진 사람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내 기준의 멋지고 좋은 사람보단 많은 걸 아는 바보가 더 잘살고 있는 것 같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현실은 그들을 더욱 멋진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다행인건 사회가 그들이 멋지다고 좋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멋지고 좋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개 멋진 사람은 좋은 사람의 영역을 인지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인지조차 하기 싫어하거나. 반대로 좋은 사람은 본인이 좋은 사람인줄도 모르고 멋진 사람을 좋은 사람인줄 알곤 하기도 한다. 브런치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성장', '성숙'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일테니까.
적어도 나는 살아갈 자격이 없다면, 부끄러워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우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멋진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