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투스칸썬 Oct 25. 2023

밤의 황재, 밤이로소이다.

찬바람 불면 길거리표 간식으로 군고구마와 붕어빵 그리고 군밤이 최고였다.

흰 종이봉투 한 봉지 옆구리에 끼고 부지런히 귀가하면 한결 추위가 덜했다.


그런데 길거리표 간식이 부담스럽다.

군고구마는 매년 천 원씩 인상하여 한 봉지에 세 개 6천 원, 붕어빵은 800원부터 시작하더니 판매대에 황금붕어빵 개당 천 원이라고 쓰여있다.

군밤은 길거리에서 종적을 감춘 후 온라인 쇼핑몰에서 뜨길래 올가을에도 약밤을 쟁여놨다.


찬바람 불면 우리 가족 배는 밤마다 출출하다.

울릉도 오징어도, 고추맛 치킨도, 하겐다즈 2+1이나 던킨도너츠, 오리온 초코파이도 있지만.

야식은 소박해야 한다. 조촐해야 야식이다.




대기업 브랜드 감은 남녀노소 한 입만 한 입만 하다 뚝딱 한 봉지.

헌데 너무 달고 너무 비싸다.


칼집이라는 기막힌 무기장착의 앙징맞은 약밤.

차이나 출신이라도 고개 끄덕. 찬바람 불면 떨어질 새가 없는 단골 야식이다.



한 봉지 에어프라이기에 출동시키려는데.

딩동, 이웃집에서 건네준 밤.

밤이다! 

시골에서 직접 키우고 딴 밤이란다.

심봤다!




칼집 장착된 약밤이 귀염둥이 손주라면 이웃집 밤은 안방마님 같다.

콜드크림 잔뜩 바른 듯 윤기가 반들반들하고 기골이 장대해서 아기주먹만 하다.

약밤 흉내 내려 토종밤에 칼집 네댓 개 내다가 생밤만  개 먹고 그냥 삶기로 했다.

미리 소금물에 푹 담가 채에 거르니 불순물이 꽤 남았다.

아무래도 판매용이 아니다 보니 자연 그대로구나.


토실토실 살이 찌고 제철 여물대로 여문 늦가을 토종밤.

매끼 제철과일 또는 매일 만보 걷기보다 매일 한 줌 견과류 섭취, 만만치 않게 어렵다.

몸 여기저기 면역력이 앞다퉈 골골해지는 계절에 건강식으로 이만한 별미가 흔하랴.


가스불 앞의 대기모드는 참으로 고역이다.

달걀 삶느라 불 앞에 서있기 싫어서 반숙란을 구입하고 말았다.


토종밤이야 기꺼이.



밤 양이 많아서 솥 같은 냄비에 밤을 삶았다.

속내가 못 미더워 중간중간 반을 갈라보고 맛을 보니 떫다.

40분 가까이 불조절을 해서 푹 삶고 15분 더 뜸 들이니 골고루 폭신폭신하다.



벌레 먹거나 썩은 것도 나오지만 우리나라 어느 시골 밤나무에서 잘 자라서 우리 집까지 온 토종밤은 딱 찐자연.

두툼한 껍질을 절반으로 가르니 노랗고 하얀 속살이 쏙 나온다.

약밤은 칼집을 조금만 제치면 밤알이 바로 튕겨 나오지만 한국 토종밤은 더러 밤껍데기가 들러붙기도 하다.

그래도 괜찮다.


조미료도 감미료도 아닌 자연 그대로의 달콤한 토종밤, 너 오랜만이다!

찬물로 네댓 차례 씻어서 뜨신 기운을 없앴다.

이러면 껍질과 알 사이 간격이 벌어져 밤 까기 수월하다고.

달걀도 다시 삶는 수고를 해야겠다.




먹기 편한 게 좋다.

밤은 식탁 위 소쿠리에 껍질째 놓아도 알만 쏙 모아놔도.

간식으로 오독 집어먹고, 식후 디저트나 안주로도 훌륭하다.


예전에는 늦잠 자고 머리 삐죽 솟은 개구쟁이에게 밤송이라고 놀렸다.

가위바위보하다 꿀밤 먹이는 장난도 많았다.

이젠 그런 말도 잘 안 쓰고 밤이 귀해진 세상이다.




가을이 깊어가고 식후 배는 출출할 때.

달콤하고 뒷맛 좋고 영양도 챙기는 밤, 밤.

무슨 밤이든. 어찌 먹든, 밤에 먹어도 좋은, 밤만 한 게 밤에 잘 없다.

은 참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