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정시설을 드나들며 수용동에서 각 연령의 아들들을 수용관리를 하고 있는 교도관이다.
나의 아내는 결혼 전에 전시 기획 일을 하였지만, 결혼하고 나서부터는 일을 하지 않고 가정살림만 하고 있는 전업주부다. 나는 일명 외벌이 가장이라고 볼 수 있다.
결혼 직후에는 공무원을 하게 된 지 3년 차가 되던 해였기 때문에 모아둔 돈도 없었고, 월 수입도 실수령으로 평균 23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다행히 양가에서 결혼 비용으로 일정 부분 보태주셨고, 정부 대출을 한껏 이용하여 전세보증금과 각종 생활가전 등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대출 이자와 원금, 각종 공과금을 납부하고 나면 한 달에 저축이랄 것이 딱히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도 겨우 했는데 아이를 갖는다는 생각은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결혼 직후에도 부부들이 흔히 하는 아이 갖기 노력을 별도로 하지 않고, 되려 피임을 했던 날들이 많았다. 그렇게 5년의 결혼 기간을 아이 없이 보냈고, 그러다 2022년 여름, 부인과 질환이 생겨 고생 중이던 아내가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뜻밖의 소식을 전달해 왔다.
"아기집이 생겼는데, 안이 비어있어서 차오르지 않을 수도 있대."
수화기 너머 아내의 목소리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섞여있었다. 아내는 동네 산부인과에서 발견한 부인과 질환 때문에 더 큰 병원에서 재진료를 받고자 갔던 곳에서 아기집을 발견한 것이다. 의사는 아기집이 차오를 수 있으니 일단 기존 부인과 질환에 대한 치료는 중단하고 관찰하자고 하였다. 이 질환 때문에 유산될 확률도 있으니 실망하지 않도록 잘 설명을 해주었다. 아내와 나는 결혼 후 5년 만에 들은 아이 소식이었지만, 계획적인 임신이 아니었기에 기쁨보다 놀람이 더 컸던 것 같다. 산부인과 의사의 말에 아내가 하도 놀라자 의사는 "결혼하신 것 맞죠?"라고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준비되지 않은 임신이었기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2022년은 한창 부동산 전세 가격이 오르고 있던 시기였기에, 전세 만기가 도래한 나는, 만약 집주인께서 전세보증금을 올려달라거나, 나가달라고 하면 임신한 아내를 데리고 전세 난민이 될 판이었다. 임신 소식을 들었던 다음날, 집주인에 전화하여 안부를 묻고 아내의 임신소식과 임대차계약 연장의사를 전달하였다. 당시 2020년부터 주식 및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상승했던 상황이라, 내심 전세보증금을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내가 감당가능한 선에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머리를 쓰고 있던 참이었다. 아내의 임신소식 때문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나이가 지긋하신 집주인 사장님은 아이 둘 나을 때까지 쭉 살다가 새 집 사서 나가라는 덕담과 함께 전세보증금도 올리지 않으셨다. 집주인 사장님이 베풀어준 호의는 우리 부부 입장에서 '제 밥그릇 갖고 태어난 아이'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아직 공실인 아기집 덕을 봤다고 할까.
아이가 갖고 태어난 밥그릇의 힘은 출산 이후 더욱 느낄 수 있었다. 가족 친지들 및 지인들의 축하 선물들과 작은 응원들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물질적인 것보다는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아내와 아이 없는 5년의 결혼생활 중에는 항상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조급함에 시달렸던 것 같다. 나는 아이 없는 부부로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한 순간,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의미 있는 삶을 찾아야 했고, 아내와 여행을 다니고 미술관, 전시관 그리고 각종 강연들을 다니면서 성취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아내려 하였다. 애석하게도 그 노력은 이미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동년배들을 보면서 점차 조급함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그 당시 설정했던 인생의 의미들이 그렇다고 퇴색되는 것은 아니지만, 뛰어난 사람들을 보면서 애써 비교하지 않으려고 '나는 나만의 길을 갈 테야'하는 구도자의 마음으로 하루를 살았던 것 같다. 구도자의 마음은 외롭고 적막했다.
하지만 아이가 집에 오고, 온 집안이 아이 울음소리로 가득 차게 된 지금은, 당시 발견했던 나의 길이 더 이상 적막하고 외롭게 느껴지지 않고, 되려 육아의 틈바구니 속에서 나를 찾게 해주는 '숨구멍'이 되어주는 기분이었다. 더 이상 경쟁자나 앞선 자들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여유로운 태도가 오히려 좋은 결과를 낳게 해주는 핵심 요인이 된 것 같다. (나의 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기 위해 아껴둔다.)
나는 아이를 통한 삶의 메워짐이 오히려 내 성격에 여유와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고 아내에게 말하자, 아내 또한
"일단, 용이를 낳은 것, 그것을 하나 성취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생의 성취에 대한 조바심이 사라지게 된 것 같아."라고 본인의 소회를 밝혔다.
내 말에 공감하는 분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나와 아내는 비록 육아로 인해 육신은 지쳐있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틈바구니 속에서 묵묵히 졸린 눈을 비비며, 자신을 위한 준비에도 조바심 없는 한 걸음을 매일 같이 걷고 있다. 나는 아이가 주는 이와 같은 삶의 태도가 '애들은 제 밥그릇 갖고 태어난다.'라는 말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찌 됐거나 부모의 성취가 아이에게는 밥이 될 테니 말이다.
2023년 6월 13일 화요일 날씨 맑음
영아 산통으로 우는 아이를 달래다 결국 함께 포개져 자고있는 아내 얼굴을 보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