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해줘야 할 것도 안해주면 비판을 할 수 밖에..
2편에서 명상법에 대한 오해를 짚어 보았다. 명상 자체가 난해한 개념이다 보니, 명상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명상의 본질을 명상법으로 착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튜브 명상 가이드가 명상법에 대한 오해를 처음부터 만들어낸 것으로 보는 것은 어폐가 있다.
나 역시도 명상을 안내하는 안내자의 입장이고, 그러다 보니 명상 수요자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고려하는 것이 중요함을 매번 느낀다. 콘텐츠 소비자들은 어쨌거나 쉽고 빠른 솔루션(=명상법)을 제시해 주기를 원하는 측면이 있고, 명상 상태에 대한 설명은 복잡하고 헷갈리며 변화와 직결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매력도가 떨어지는 콘텐츠다.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우선순위가 밀리거나 심지어 생략될 수밖에 없는 주제다.
내 불만 지점은 그렇기 때문에 <명상법을 안내한다>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도 명상 훈련을 주제로 한 글에서는 당연히 명상법에 초점을 맞춰 설명할 수밖에 없다. 내가 비판하는 것은, 명상법을 1번 설명하면 명상 상태에 대한 설명은 2번은 해야 그것이 명상을 안내하는 안내자가 취해야 할 태도이고, 2번도 부담스럽다면 최소한 1번은 명상 상태에 대해 짚고 넘어가 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명상 가이드는 손색이 너무 있다. 명상법과 명상 상태를 구분하는 것은 고사하고, 명상의 효과, 명상법, 명상 상태 등의 기초적인 개념조차 구분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안내하는 콘텐츠가 너무 많다.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왜 명상 안내자들이 오히려 명상 수요자들이 헷갈리게끔, 명상의 여정을 방해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어떤 나쁜 의도에서 일부러 한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명상 가이드를 만드는 사람들을 속이 시꺼먼 사람, 그러니까 일부러 나쁜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사람으로 싸잡아 매도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그 사람들도 명상의 본질이 뭔지, 혹은 명상 상태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 사단이 발생했다는, 그러니까 미필적 고의 정도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무지는 죄인가? 항상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뭔가를 알려주는 사람은 '모르는 것이 죄'가 될 수 있다. 명상을 이해시키는 책임은 안내자에게 있고, 명상을 이해시키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안내자의 부족인 것처럼 말이다. 적어도 내가 어디까지 모르는지 아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무얼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누구를 가르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선무당에 비유하지 않는가? 그리고 선무당은 사람을 잡는 법이다. <당신이 명상을 모르니까, 당신의 근기가 부족하니까 이 좋은 명상을 못한다>는 식의 말이 딱 선무당들이 할 법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안내자가 무지하고, 그 무지의 책임을 피 안내자에게 돌리는 태도는 명상이 아닌 다른 어떤 교육 및 코칭 방법론에서도 비판의 대상일 것이다.
명상 가이드를 만드는 사람들이 명상을 잘 모른다는 것은 나의 일반적인 주장이므로, 이들이 명상을 잘 모른다는 것에 대한 입증 책임은 나에게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어떤 부분에서 명상 가이드들의 무지를 느꼈는지 짚어 보겠다.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명상의 본질은 명상 상태에 있고, 명상을 한다는 것은 명상 상태에 들어가기 위해 하는 행위를 뜻하기 때문에, 명상 가이드를 듣는 행위 역시도 명상 상태에 들어가기 위한 목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유튜브 명상 가이드는 명상 상태에 들어가는 데 방해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더 크다. (이것은 명상 상태에 들어가 봤고, 그 상태에 다시 들어가기 위해 훈련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명상 가이드가 저렇게 구성된 맥락이 있음에도 내가 무지해서 그 맥락을 못 보고 비판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이것을 화두로 꽤 오랜 시간 명상을 했다(나의 무지에 대한 고차원적 정신활동을 했다는 말이다.) 내가 유튜브 가이드가 무지에 의해 잘못 구성된 것이 아니라, 제작자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몇 가지 의심을 해 본 결과를 아래에 정리해 적어 보았다. 여러분도 한번 판단을 해 보시길 바란다.
첫 번째 의심
초심자 중에서도 극 초심자, 그러니까 명상에 대한 동기가 충분하지 않고, (명상 훈련을 통해 명상 상태를 들어가는 것을 목표하는 것이 아니라) 명상 훈련 자체에 익숙해지는 것을 목표하는 수준의 사람들에게는, 가이드를 듣는 것 = 명상하는 것이라는 식의 코칭이 효과적일 수 있다. 초보자가 혼자서 한답시고 한 번도 명상을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그나마 마음 편히 영상을 보면서 서너 번이라도 시도하는 것이 이 단계에서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이드를 들으며 몇 번 명상을 경험하는 스텝을 지나야만, 이게 나와 맞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그러다 보면 명상 훈련에도 익숙해지고 동기 수준도 높아지면서 나중에 혼자서 명상을 하는 다음 스텝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단계는 명상의 단계에서 짧으면 짧을수록 좋고, 빠르게 지나가며 더 이상 이 단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수준으로 넘어갈수록 좋은 단계이지 계속 머물고 음미할 만한 단계가 아니다. 그런데 만약 가이드가 이런 의도를 반영하고 했다면, 가이드 내에 그런 의도를 드러내는 여러 장치를 더 심어놓아야만 할 것이다. 예컨대, 가이드의 어느 한 대목에서 '명상 가이드는 처음 1-2번 들으면서 내용을 숙지하시고, 실제로 명상을 할 때는 가이드 없이 명상을 하셔야 합니다'라는 안내를 넣어 놓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가이드를 살펴보면, 짠! 대부분의 가이드에는 그런 안내를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매번 명상을 할 때마다 가이드를 계속 들을 것을 은근히 유도하는 것만 같다(그래야 조회수가 나올 테니까).
실제로 <명상 가이드를 듣는 것이 명상이다>라는 잘못된 방식으로 명상을 소비하는 양상은 댓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명상 가이드를 들으며 명상을 하니 명상이 더 잘 되는 것 같아요
와 같은 내용의 댓글이 정말 많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잘못된 내용이다. 특정 가이드를 들어야만 명상이 잘 된다면 아직 이 사람은 명상이라고 할만한 것을 경험하지 못한 상태고(1), 명상 가이드를 들으며 명상을 하는 것은 굉장히 비효율적이며 지양해야 할 일이며(2), 그런데 그런 일을 하면서 명상이 '더' 잘 된다고 말하는 것은 진짜 이상한 말이다(3). 이 사람들은 대체 뭘 하면서 자신이 명상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두 번째 의심
한번 더 내 주장이 틀렸을 것이라고 의심해보자. 마음챙김 명상은 삼매나 선정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차별화 지점을 두고 있고, 그 결과 일상에서의 알아차림을 바탕으로 탈중심화, 내려놓음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 계열을 백그라운드로 명상을 안내하는 사람이라면, 명상 상태 1을 배제하고 명상 상태 2만을 명상 상태로 정의할 수 있다. 명상 상태 2는 명상 상태 1에 비해 인지 왜곡 및 외부의 정보처리를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마음챙김 명상 안내자인 나는 지금의 영상 포맷을 이용해 명상을 가이드하는 것이 문제 될 것이 없다> 고 말할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전히 말이 안 된다. 이것도 명상을 해 봤고, 명상을 아는 사람이라면 단박에 억지 주장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음챙김 명상을 어려워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가 알아차려야 할 요소가 너무 많다(=정보의 병렬 처리가 어렵다)
내려놓으려고 하는 데 내려놓아지지 않는다(=선택적 주의를 통한 주의 조절이 어렵다)
내려놓은 상태를 길게 유지할 수가 없다(=주의의 유지가 충분히 되지 않는다)
마음챙김 명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을 최소화해야, 마음챙김 명상이 쉬워질 것이다.
알아차림의 요소를 최소화하고(=외부 정보의 차단!),
내려놓아야 할 요소를 최소화하고(=외부 정보의 차단!),
내 모든 주의를 내려놓은 상태를 유지하는 데 쓰는 것(내 주의 자원을 모두 끌어모아야 한다)
이 마음챙김 명상의 초심자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는 것이다. 자, 이 솔루션 중 명상 가이드(외부의 정보를 추가로 듣고, 내 주의를 분산시키는)가 어느 부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1도 없다.
세 번째 의심
마지막 의심이다. 초심자들에게는 명상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렵고, 명상 훈련을 하는 것도 뭘 알아야 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첫 스텝으로 명상 마인드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알아차림에 대해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이드를 만든 것이라고 보면 어떨까?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다. 지금의 영상 포맷이 명상 마인드를 설명하고 강의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는가? 또 아니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나라는 수능 공부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문화적 특성과 IT 인프라가 강력하다는 특성이 만나 온라인 영상 강의 포맷이 엄청나게 발달하게 되었다. 가루 백묵에서 물 백묵으로, 프로젝터에서 터치스크린 칠판에 이르기까지 강의를 위한 최적화가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자원을 투자하여 잘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대한민국에서 명상을 설명하는 콘텐츠를 만드는데, 완성에 가깝게 발전된 기존의 포맷을 차용하지 않으면서, 강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느릿느릿하고 이완된 방식으로 강의를 구성한다는 것을 무슨 의도로 어떻게 해석하면 될까?
명상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야, 긴장이 완화되고, 이완되고, 스트레스를 잊는 것 자체가 강력한 경험으로 다가올 수 있으며, 내가 명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면서 이런 경험을 했다면 그 경험이 명상의 결과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착각을 하고 산다고 그 사람의 삶에 문제가 될 일도 없다. 오히려 '명상을 통해 삶이 더 나아졌다' 고 말하고 다닐 것이며, 애초에 3분, 5분간의 편안함 이상의 것을 명상에서 바라지 않을 수도 없다. 그렇다 보니 아무도 이에 대해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다. 좋은 게 좋은 것이고, 나름대로의 긍정적 효과를 얻는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보행자나 운전자가 초록불을 파란불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고 안전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는다고 해서, 신호등 제작자나 행정 집행자가 신호등의 진행 신호 색이 초록이냐 파랑이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 초록이라고 답하지 않고 '신호의 색은 초록도, 파랑도 될 수 있다'라고 답변하거나 '신호의 색은 파란색이다'라고 답해도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에 명상 안내자라는 일을 하는 사람이 '명상이 무엇인지는 명상 수행자들이 알아서 깨달을 일이다' 라거나, '다른 가이드 영상도 다 그렇게 하니까 나도 이렇게 만들 뿐이다'라는 말이 나온다면 그 문장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든 그 말은 틀렸다.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없이 명상 가이드를 만든다면 그건 만드는 사람이 너무 게으른 것이다.
명상의 깨달음은 일상 속의 수많은 의사결정에 녹아들어 더 나은 판단을 하고 좋은 결과를 얻게 만든다. 자명과 찜찜의 사이에서 자명함을 택하게 만드는 주요인이라고나 할까. 이 사안도 그렇다. <유튜브 명상 가이드는 왜 이럴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무지라는 원인을 찾았지만, 안내자들의 무지만으로 모든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찜찜하다. 좋은 의도로 열심히 수행해 지금의 콘텐츠를 만드는 개인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전가하는, 실례되며 교만한 말놀림만 될 뿐이다.
원래 강력한 문제는 대부분 개인보다 구조에 있다. 사회 구조, 문화 구조가 개인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상 가이드가 이렇게 된 데에도 구조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다. 지금의 사회 구조를 보자.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한 사람이 극의를 깨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맛을 보는 것이 더 가치 있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었다. 니체는 이를 대중 사회라고 얘기했고, 이런 사회적 흐름이 자본주의와 맞물려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 '팔로우가 돈이 되는 세상'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것이 중요한 가치로 다뤄지고(1),
효율성이나 효과성 토대로 가치는 계산되며(2),
계산된 결과는 돈이라는 지표로 검증(3)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이 너무 속물적이라서 싫을 수 있다. 과거 명상이 그래 왔듯, 산속으로 들어가 고고하고 독야청청히 흰 수염 날리며 살면 될 일이다. 하지만 대중들 앞에 서고는 싶은데 속물적인 것은 싫다는 것은 일종의 떼쓰기에 가깝다. 대중들에게 명상을 전파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현재 사회구조의 논리를 좋든 싫든 가야 할 길임에는 분명하고, 그렇기에 나는 명상의 대중화와 상업화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은 아니다(오히려 환영하는 입장이다).
내 얘기는, 명상은 대중화와 상업화에 무지해도 되고, 명상은 독립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런 무지와 착각이 유지된 결과가 지금의 모순적인 명상 가이드라는 것이다. 테이프든 CD든 비디오든 스트리밍 영상이든, 명상 가이드(guided meditation)는 대중화와 상업화가 만들어 낸 발명이면서, 기만이자 술책이기도 하다.
명상 가이드는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솔루션이다. 명상 가이드라는 개념은 생산자로 하여금 팔 수 있는 유형의 생산물을 제공했고,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물 긷기, 걸레질하기와 같은 전승이 아닌 금전이라는 더 쉬운 방식으로 더 효율적으로 명상을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솔루션 속에 편리함과 만족만 있고 명상의 본질은 남아있지 않게 되는 순간, 그때부터 이 솔루션은 기만이자 술책이 된다.
내 결론은, 다 망했다는 자기 파괴적 확신이 아니라, 그저 '잘해 보자'는 거다. 소비자도 단순히 편하고 좋다고 명상 아닌 것을 명상이라고 소비하지 말고, 생산자도 이 부분에 책임을 가지고 상업성과 함께 명상의 본질도 좀 챙겨 가면 얼마나 좋겠냐는 말이다. 얼마나 명상하기 좋은 세상이란 말인가. 집안에서 저 멀리 달라이 라마의 음성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는 세상인데, 사람들의 명상 수준이 지금보단 더 높아 줘야 균형이 맞지 않겠는가? 명상에 대한 수요와 트렌드를 고려할 때, 지금이라면 단 한 번의 패러다임의 전환만으로 명상이 폭풍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명상의 본질을 챙겨가자는 패러다임 말이다.
세상은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 상대성 이론이 상식인 시대에 살고 있고, 수십 년 전 SF 작가들이 상상하며 썼던 소설보다 더 발전한 세상에 그 작가들이 늙어서 여전히 살고 있을 만큼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그럼에도 왜 명상이라는 분야는 수천 년 전의 가르침보다도 낡은 상태로 방치되어 겉핥기만 하고 있을까? 새 부대에 담았다고 헌 술이 새 술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 놓고 새 술을 마신다고 착각하는 이 대환장 파티에 대한 고민이 이제는 필요하다는 게 내 입장이다. 업계 내부의 문제를 해결해야, 맑은 물이 흐르면서 파이를 키울 수 있지 않겠는가? 명상에 관심 있는 독자 여러분이라면 이 사안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주길 부탁드린다. 이와 관련된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언제든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