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삶의 괴로움이 비켜가는 것은 아니더라
최근 들어, 다양한 힘든 일이 나를 감쌌다.
특별할 것은 없고, 그냥 요즘 세상 사는 사람이라면 흔히들 겪는 그런 일들이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 나의 미래와 방향성에 대한 문제 같은 것들이다.
고백하건대, 초반에 나는 다소 안일했다.
힘든 일이 있더라도
'어쨌든 나는 명상하는 사람이니까',
'원래도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이니까',
'인식하고 전환하고 흘려내는 것을 전문적으로 훈련했는데 별일 있겠냐'는 생각으로
불안의 초반을 대수롭지 않게 대응했다.
그러나, 꽤나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불안은 남아있었고,
때로는 좌절감 까지도 들었다.
힘듦은 생각보다 더 힘든 것이었다.
일과 중에도 불쑥불쑥 생각이 나서 목뒤에 열이 오르거나
귀가 붉어지거나 얼굴이 붉어질 때도 있었고,
한숨을 더 자주 쉬게 되고(그럴 때면 옆에 있는 사람의 시선이 느껴진다),
밤에 잠을 못자는 일도 겪었다(나는 잠을 많이 자서 문제였던 사람이지, 잠을 못자서 문제였던 적은 없다).
그 때마다 내가 알고 있는 온갖 명상 테크닉을 활용해 그 순간을 이겨내려고 했다.
잠을 설칠 때마다 명상 훈련을 하고, 일상 중에 괴로움이 불쑥불쑥 생겨날 때면 그 괴로움을 관찰하고 흘려보내려고 노력했다.
문제는, 명상이라는 솔루션이 '그럴듯한 계획'처럼 흘러가지 않는 것이었다.
명상 훈련을 한 날에도 여전히 잠을 설쳤고, 괴로움이 별로 줄어든 것 같지도 않았고, 오히려 명상이 사실은 효과없는 것 아닌가 라는 불안과 의심이 들면서 괴로움이 더 늘어나버린 것 같은 것이다.
나를 가장 괴롭게 만들었던 것은
혹시 내가 명상 덕에 평정심을 유지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너무 온실속의 화초였고, 여태까지 삶의 어려움이 없었을 뿐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 글의 주제는 (당연하겠지만) 그래서 명상 다 의미 없더라, 나도 깜박 속았다! 는 아니다.
명상 신비주의, 명상 만능화에 비판적인 나 스스로도 명상에 잘못된 기대를 하고 있었음을 고백하고자 함이다.
명상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명상이 괴로움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홍보문구를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 주제로 글을 한 편 쓴 바 있다).
하지만, 명상을 하는 사람도 일상을 살면서 괴로움을 느낀다는 것,
명상은 괴로움을 못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을 대처하는 테크닉을 배우는 것임을
독자들에게 얘기할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많이 없다.
명상에 갸우뚱한 사람들에게 명상을 '영업하는' 글이라면,
괴로움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려, 얼마만큼 이겨내지는지 얘기하는 것 보다는,
명상의 기대효과에 대해서 내용을 할애하는 것이 글의 주제에 더 가까운 게 맞다.
하지만 그 결과, 그런 글에 노출된 독자들은 자칫
'명상을 하면 세상 모든 괴로움이 나를 피해갈 것이다' 라는 식으로
오해할 여지가 충분히 생길 수 있다.
혹시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 상태'를 명상의 극의로 생각하는 명상 초심자가 있다면,
당신은 명상에 대해 잘못된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난 얘기해줄 것이다.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 상태를 지향하려면,
<사바세계가 괴로움으로 가득하니, 세상과 연을 끊고 산으로 들어가거나, 현실과 괴리된 열반의 상태를 유지하여 죽음 이후까지 이어가자>
와 같은 류의 의사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고,
"괴로움을 느끼지 않으려면 속세의 연을 끊으세요"
라는 솔루션을 나는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요즘 명상 트렌드도 아니고 말이다).
오히려 명상에 대한 믿음과 역량이 있는 사람도 결국 이 세상의 일부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이니만큼,
피해갈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보여주는 것이
명상 안내자로써의 나의 역할에 더 알맞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글을 씀으로써, 내가 지금 잘못된 방향에 있는(명상 해봐야 괴로움도 못 이기면서~) 것이 아니라,
명상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려는 것도 없지 않아 있다.
나 역시도 명상 수행의 길을 계속 걷고 있는 사람에 불과하며,
안내자 라는 자칭 역시 그저 몇보 앞에서 아직 명상을 향한 발걸음을 떼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역할임을 잊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 글도 한 3개월 정도 묵힌 글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난 셈인데,
과거의 나의 괴로움을 다시 들여다 본 결과, 적당히 잘 이겨낸 듯 싶다.
생각해 보면 잠을 좀 설쳤던 것이지, 새벽 내내 뜬눈으로 몇일 연속을 보낸 것도 아니고,
그 때마다 명상 훈련을 할 계기로 삼아 훈련도 열심히 했으며,
여태까지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mindfulness(mindful함이란 무엇인가?)와도 좀더 거리가 가까워진 것 같다.
이제는 옆자리 동료도 이제는 더이상 내 한숨에 놀라지 않고 그러려니 익숙해 한다.
(물론 그 배경에는 항상 한숨이 나쁜게 아니라 mindful한 숨이라고 주변에 영업한 것이 주효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생각했던,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무뎌지고 흘러가면서 괜찮아질 것이다' 라는 말도
지금 와서 보니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냥 정신승리 한 것에 불과한 것 아니냐 라고 안 좋게 볼 수 있지만,
괴로워본 분들은 알 것이다. 그 순간 그 정신승리가 안되는 게 진짜 괴로운 것임을.
그러니까, 혹시나 이 글을 읽는 힘든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여전히 명상을 조금을 믿어봐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글이 옆 동네 기독교에서 종종 하는 '간증'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