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뿔이 흩어져 살던 자식들이 어버이날 며칠 앞두고 부모님이 계신 시골집에 모였다.
조카들까지 모이니 한적했던 시골집이 떠들썩 했다.
하룻밤도 자지 않고 다들 떠난다고 하니 부모님이 못내 서운한 눈치였다. 그래서 나만 하루 더 있다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다.
언니들과 동생네 식구들 모두 떠나고 집안은 다시 조용하다.
한바탕 청소하고 빨래 돌려놓고 초록물이 한창 오른 나무들도 보고 할머니 산소에 들러 인사도 할 겸 집을 나선다.
앞마당엔 탐스러운 모란꽃이 활짝 피었고, 집 앞 텃밭엔 마늘이며, 가지, 토마토 등 엄마의 소일거리가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 길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어릴 적 뛰어놀던 참나무 밤나무 가득한 야트막한 동산이 나온다.
내가 꼬마였을 때 5월이면 이 동산엔 그네가 달렸다. 마을 동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주는 5월의 선물로 키 크고 튼튼한 참나무 가지에다 그네를 달아주셨다. 게임기도 컴퓨터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 꼬마들은 이 동산에서 그네도 타고 술래잡기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동산은 구름다리 하나로 앞산과 연결이 된다. 구름다리를 건너면 길게 뻗은 외송 나무숲이다. 초입부터 솔향기가 폴폴 난다. 노랗게 변한 소나무 꽃가루. 바람이 불자 노랗게 송화가루가 날린다. 외송 나무숲 사이를 50여 미터 가량 지나면 할머니의 묘가 보인다.
오랜만에 찾아온 할머니의 묘.
봉분 위에 할미꽃, 제비꽃이 가득하다. 누가 꽃씨를 뿌려놓은 듯......
‘할머니 나왔어~’ 가볍게 인사하고 봉분 위에 보기 싫게 올라온 잡초를 뽑아냈다. 예쁘게 핀 보라색 할미꽃. 제비꽃은 놔둔 채로
묘지의 비석을 보고서야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다되어 간다는 것을 알았다.
몇 년 지난 것 같지 않은데, 벌써 10년 이라니...
내가 무딘 것인지 할머니의 기억이 깊어서 그런 것인지
할머니를 떠올리면 수의가 기억이 난다. 중학생 때였을까?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름이었고, 할머니와 엄마가 모두 집에 계셨을 때다.
‘안에 계세요?’ 낯선 아주머니가 대문을 들어서며 인사를 했고 엄마는 더운데 고생한다며 시원한 음료를 내왔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이런 봇짐장수들이 자주 왔다. 충주에 나가면 가게들이 다 있는데도 봇짐장수가 있다는 것이 당시에도 신기했다.
이날 온 봇짐장수가 가져온 물건은 수의. 엄마는 삼베가 곱다 말하고 봇짐장수는 이 댁 할머니, 할아버지 수의를 준비해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너무 비싸요.’
‘좋은 거니 비싸지’
‘그래도 다른 데 보다 많이 비싸긴 하네요. 수의 결이 곱긴 곱네.’
엄마와 봇짐장수의 흥정이 한창일 때 난 뿔따구가 났다. 엄마는 꼬박꼬박 존대하는데 반말하는 것도 싫었다. 게다가 할머닌 아직 흰머리도 거의 없을 정도였고, 바늘에 실도 척척 꿸 정도로 눈도 좋았다. 귀도 밝고 아픈 곳도 없으신데 자꾸 수의를 하라 조르는 봇짐장수가 괘씸했다. 수의를 산다는 것만으로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죽음을 대면하는 것 같은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래서 어린 나는 기어코 한마디 하고야 말았다.
‘엄마, 할머니 아직 정정하신데 왜 벌써 수의를 해야 하네 마네 하는 거예요? 이 아줌마 가라고 해요. “
봇짐장수 아줌마가 한마디 한다.
‘학생 수의는 건강하실 때에 미리 해놔야 오래 사신대. 그리고 아줌마 수의는 깎는 거 아니야’
봇짐장수의 말에도 난 속으로 ‘흥, 물건 팔려면 뭔 말을 못 해?’ 하며 연신 툴툴거렸다.
그날 엄마는 봇짐장수가 부르는 값을 다 치르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수의를 구입하셨다. 그리고 그날 산 수의는 할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오신 자개장롱 안에 오래도록 있었다. 가끔 할머니의 장롱을 열 때 수의를 싼 보자기가 보였다. 기분이 묘했다. 죽음이 가까이 온 것처럼.
할머니는 90세가 되던 봄에 돌아가셨다.
할머니 무덤가에 핀 할미꽃은 할머니를 닮았다.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 평생 고기라고는 비리다며 입에 대지도 않던 할머니. 딸이 많은 엄마를 부러워했던 할머니. 할머니에게 잘한다고 했지만 할머니 눈엔 손녀딸들이 할머니보다 엄마에게 잘하는 게 먼저 보였나 보다. 그래!! 할머니가 엄마 시집살이시킬 때마다 눈 흘기며 보면 어린 손녀딸들이 얼마나 괘씸하셨을까.
할머니 봉분 위에 올라온 잡초를 맨손으로 뽑아내며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에게 말을 건다.
‘할머니, 잘 계시죠?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