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준비물 | 빔프로젝터, 워크룸, 쿠키
오래전부터 내 인생을 구원해 줄 구원자를 한참 찾았으나,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넉다운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그런데 은명은, 이 아이가 이제야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강 준비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대신, 나에게 송파에 위치한 한 워크룸의 담당자님을 보내셨다.
사람만 보내셨을까,
행여나 흐느적거리는 몸을 가누느라 제대로 이를 하지 못할까 싶으셨는지 시의 적절한 쉼과 각종 좋은 소식 및 건강호전기가 이어졌다.
담당자분께 제안받아 운영한 워크숍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바로 어제(10월 26일) 마쳤다.
그럼에도 난 아직도 이 일이 실감되지 않는다.
어쩌면 진심을 믿고 버텨온 나의 진심을
하늘이 알고 땅이 보았기에,
또 나 자신이 기억하고 있기에,
희망이 모습을 드러내주기 시작한 게 아닐지 싶다.
처음 미팅을 위해 방문했을 때 어떤 주제로 워크숍을 꾸릴지 논의하던 찰나,
내가 그랬듯이,
막상 글을 쓰려해도 시선이 두렵고 자신 없는 사람들이 가볍게 글쓰기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자릴 만들어야겠단 생각이들었다.
진행방식은 이러했다.
각자 한 편의 일기를 가져와서, 일기 내용을 기반으로 글을 쓰고 작은 더미북을 만들어 꾸며갈 수 있도록 진행한다. 마친 후 몇 주가 지나면 호스트에게서 자신이 쓴 글을 인용한 그림과 답장이 메일을 통해 전해진다.
그렇게 난생 처음 호스트로써 워크샵을 진행할 준비를 해야했던 나는 팔 다리가 8개씩 있는 사람처럼 언제 무기력 했냐는듯 미친듯이 일을 해내기 시작했으며,
걱정과 달리 반응은 꽤나 폭발적이었다.
120분의 시간은
우리의 열정을 담기엔 작은 그릇이었다.
모두 일기로부터 시작된 자신의 글을 아끼고 마음에 들어 하며 자신감을 갖고 돌아갔다.
이틀에 걸친 워크숍을 마친 나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정말 이들도 할 수 있구나.
정말 나도 할 수 있구나.
즐거워하는 이들의 표정은 내게 오랜 고생을 보상해 주는 선물과 같았다. 이 자리를 멀리서 찾아와 준 고마운 게스트분들과 귀한 장소와 기회를 제공해 준 담당자,
그리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앞으로 함께 이 길을 향해 나아갈 동역자를 얻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이 모든 일이 일러스트레이터를 시작한 지 78일이 지나는 사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매일 다짐한 바와 같이 응원을 담은 그림을 끊임없이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