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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Jan 23. 2024

어쩌다 새해결심

대화의 단서

바다는 고요한데 일렁이는 파도의 잘못을 보면서 나는 궁금했다. 내 바다의 일렁이는 못된 파도의 정체는 두려움인가. 어쩌면 일렁이는 파도의 정체는 가끔 덮쳐오는 기쁨이던가.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 내 바다는 평화던가 두려움이던가.


생각이 많은 때는 자주 지금을 잊는다. 오늘도 퇴근 후 할 일을 출근하기 전 방 밖을 나서기 전부터 고민했다. 할 목록이 비지 않도록, 동시에 그저 그런 선택이지 않도록 고만고만한 고민을 재고 또 잰다. 선택의 순간은 숙고와 어울리지 않게 채근에 의한다. 속마음은 ‘뭐 하지, 뭐 하지, 뭐 하는 게 좋을까.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는데 어떤 걸 하지.’ 이러다 장고가 되어 악수를 둔다. 나의 경우 가장 나쁜 수는 고민 끝에 정해놓은 걸 선택의 시점에서 바꾸는 거였다. 그러면 십중팔구 나빴다. 선인들은 이렇게도 지혜롭다. 장고 끝에 십중팔구로 악수를 둔다는 이 문장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우니 말이다.


거울에 대고 나는 묻는다. 심각한 얼굴을 한 나 자신, 그대여. 왜 그리도 불안해하는가. 오늘 저녁에 뭘 먹으면 어떻고, 퇴근 직후에 할 일이 무언들 어떠한가. 어찌 그리도 쉽게 반드시라는 의지를 모든 시간에 작동을 시키는가. 학습지 맨 만화면에 등장할 법한 어르신 같은 표정과 말투로 달래 본다. 달려 나가는지도 모른 채 달려 나가는 마음을 멈춰 세우려면 이 정도의 인위적인 극화는 해줘야 한다. 마음 달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친구 자리에 커피 올려두기

건물 벽을 뒤덮는 노을

읽고 싶던 책 발견하기

저녁밥 먹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시간이 저녁 7시 30분

입구에서 문을 잡아주는 배려

눈뜨면 모닝커피와 크로와상을 먹겠다며 벼르는 금요일 밤

재즈피아노를 튼 채 혼자 있는 저녁 시간

이제 곧 잘 거란 연락을 기다려주는 사람     


하나하나 좋은 순간을 너무 많이 기억하는 탓일까. 좋은 것에 현혹된 거지 알고 보면 행위중독인 걸까. 머릿속은 늘 다음에 할 좋은 선택지를 위한 압박으로 그득하다. 원하는 마음은 원래 끝이 없어서 뻗어나가는 욕심과 좇는 마음 사이로 긍긍하는 나 자신을 마주한다. 웃지 못하는 나는 예쁘지 않다.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생각을 끊어야 한다. 그러나 효과적인 방법을 몰라 생각 사이로 자꾸만 빠져든다. 블랙홀이란 게 이렇겠다.


과거에 의존해 좋아하던 걸 반복하면 좋을 확률은 높겠다. 그러나 십 대의 나와 삼 심대의 내가 달라서 숱 잔뜩 내린 앞머리가 잘 어울렸던 그때는 볼살이 빠져버린 지금의 에게 좋은 게 아니기도 하겠다. 늘 균형이란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를 두고 욕심내는 나를 어리석다 하려다 왜 좋은 걸 탐하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돈 많은 돈이 적은 돈 적은 돈보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처럼 좋다는건 그런건가???! 여러 물음표 뒤로 느낌표 하나가 뜬다. 생각인 건 여전하지만 말이다.


한국인답게, 나는 저체중임에도 늘 더 가벼워지고 싶었다. 한국인답게 나는 항상 부지런히 뭔가 이루고 싶었다. 오늘 숙고에 장고까지 참 길었는데, 마침내 느낌표가 뜬 생각에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올해는 뭔지도 모르는 행동 다이어트와 겁이 나지만 살을 조금 찌워봐야겠다고 말이다. 이 두 가지는 지금껏 해 본 적이 없는 목록이다. 그런데 늘어지던 물음표 중에 느낌표는 거기에만 있었다.     


무엇이 좋은 걸까. 새벽기상, 주 3회 운동, 마라톤, 영어회화, 좋은 사람과 연애, 부모님과 잦은 안부통화, 친구들 생일 챙기기, 혼자 있을 땐 글쓰기, 지하철 탈 땐 책 읽기. 근데 진짜라는 수식어까지 붙여가며 하는 취미는 로코 드라마보기랬던 나. 목록을 추가하기엔 시간도 힘도 버거워 올해는 반대로 해볼련다. 그럼 좋다는 이유가 아니여도 하는 게 남겠지. 바쁘게 움직이다 까먹어버린 먹어도 편안했던 마음을 발견하면 좋겠지. 어쩌다 목표가 세워졌다. 그래서 오늘은 어쩌다 새해결심이 되어버렸다!



* 첫 문장 바다는 고요한데 파도의 일렁임은,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 소설집에 수록된 '난주의 바다 앞에서'에 쓰인 한 장면이었습니다.

인용이 아님에도 출처를 굳이 밝힌 건 지난 한 주동안 재밌어서 단편집을 하나하나 아껴 읽은 책이여서입니다. 교보문고 2022년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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