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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May 15. 2024

미련의 애도

대화의 단서

저녁이 되어가는 시간, 비가 와준 덕분에 작게 열린 창문 틈으로 빗소리를 듣고 있다. 비가 그쳤다면 밖으로 나가 한 시간쯤 뛰고 왔을지도 모르겠다. 계속해서 내리는 비 덕분에 얌전히 빗소리를 들으며 앉아있다. 오랜만에 여백의 환한 화면창을 마주하며 마음도 환해지길 기다리면서 말이다.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는 지금,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빗소리를 듣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강아지와 안동에 있는 친구는 산책하며 들었을까. 아빠는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창문을 열어뒀을까. 일하고 있을 엄마와 아무개들. 방으로 들어왔는데 갑갑해서, 비 오는 날을 좋아해서 그렇게 우연히 혹은 찾아 듣는 사람들의 이유가 셀 수도 없이 많겠지. 잠깐 사이에 날이 어두워지면서 부처님 오신 날이 가고 있다. 비에 바람까지 불어오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다. 괜히 끝난 관계가 아닌가 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을 상상하는 틈에 그 사람을 끼워본다. 그리워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그립고 싶어서, 외롭고 싶어서 말이다.     


살갗으로 바람을 언제부터 기억했다고 바람 불면 어쩌다 생각나는 얼굴이 생겼다. 남겨진 물건, 사진을 정리할 줄은 아는데 사계절 중에 여름 자연물 중에 바람 거기까진 정리할 생각을 차마 하지 못했다. 공구는 꽃잎들, 흔들리는 이파리의 그림자로 바람은 은은하게 두드리고 사라졌다.     


스산한 날씨에 술은 찾을 것도 없이 생각에 취했다. 입 밖으로 한 자도 내지 않고, 허공에 떨군 눈길로 나아가고 싶을 때까지 나아간다. 들리지 않는 분주함은 혼자서 한없이 애처롭다. 그때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힘들어서가 아니라, 좋은 기억이 많기 때문이란 것도 알았다.     


하나 잘 모르겠는 건 습관처럼 새겨지는 기억이다. 어쩌면 이리도 잘 기억하는지 신기할 정도다. 차라리 말하거나, 적어두고 기억을 못 하는 때가 있어 오늘은 일부로라도 써둔다. 오늘은 일찍 잠들지도 않을 거다. 기억세포가 활성화되지 못하게 차라리 며칠은 불면에 가까이 지내야지.     


과거에 모든 마음을 다 쏟아서 비워낼 수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다 말해버리고 그렇게 흘러가게 둬야지. 오늘은 오래도록 내려줄 비도 있으니 소리 내서 말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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